[유지순의 살맛나는 세상]7년 만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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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의 살맛나는 세상]7년 만의 사랑
  • 중앙신문
  • 승인 2018.12.2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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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검은 고양이가 사랑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 실로 긴 세월인 7년여 만이다. 며칠 동안 보이지 않더니 새끼를 낳았는지 배가 홀쭉해져 밥을 먹으러 왔다.

고양이 이름은 ‘작은놈’이다. 암수 두 마리를 사왔는데 암놈인 흰점이 박힌 검은 고양이가 몸집이 작아 ‘작은놈’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처음 사왔을 때는 조막만한 것이 쳐다보기만 해도 식식거리고 할퀴려고 덤벼들어 만지기가 무서웠다. 아무리 친해지려고 맛있는 것을 주고 사랑을 보이려 해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공들인 것도 소용없이 몇 달 후 고양이 두 마리 다 어디론지 가 버렸다.

그 후 누렁 고양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 검은 고양이는 가끔 동네에서 만나면 임신을 해서 남산만한 배가 축 처진 채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그런지 얼마 후면 아비 어미를 닮은 새끼 고양이를 달고 다니는 것이 가끔 눈에 띄었다. 몸에 노랗고 까맣고 하얀 무늬가 있는 고양이가 태어난 것을 보면서 수놈이 어디에 살아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고양이는 1년에 서너 배의 새끼를 낳는다는데 그 새끼는 다 어디로 갔는지 가끔 한두 마리만이 눈에 띌 뿐이다. 고양이의 수명은 14~15년이라지만 먹을 것이 부족한 길고양이는 2~3년 밖에 못산다고 하니 새끼를 많이 낳아도 몇 마리 남지 않는 것 같다. 밥을 먹으러 오면서도 새끼를 달고 오는 법이 없다. 어디에서 어떻게 몸을 풀고 새끼를 기르는지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다. 가끔 새끼가 와서 밥을 먹으려고 하면 어미가 혼을 내며 쫓아버리고 저 혼자만 먹는다. 다른 맹수처럼 철저하게 새끼를 독립시켜 따로 살아가는 모습이다.

양봉장에는 달콤한 꿀 냄새가 항상 풍기고 있어 쥐가 꼬이기 때문에 고양이를 기르지 않을 수가 없다. 검은 고양이가 양봉장을 맴돌고 있어 그런지 쥐의 피해는 없다. 가끔 두더지를 잡아 잔디밭에 죽여 놓는 것을 보고 집 주변에 고양이가 살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뿐이다.

해마다 새끼를 몇 배씩 낳는 것 같더니 이제 저도 나이 들어서 먹을 것 찾기가 힘이 들었는지 1년 전부터 끼니때면 와서 밥그릇 앞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 밥을 주면 얼른 먹고 가버린다. 밥은 주로 남편이 주니 남편은 무서워하지 않는데 내가 옆에 가면 여전히 으르렁거리면서 밥을 먹다가도 도망을 가버린다. 남편이 없을 때 내가 몇 번 밥을 주었더니 저를 해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이제는 내가 옆에 가도 그대로 밥을 먹고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7년 전 장날 집고양이인지 들고양이인 줄도 모르고 사서 집에 데러온 것이 화근이었다. 집에 갖다 놓는 순간부터 할퀴고 물려고 덤비고 으르렁거려 도저히 만지거나 옆에 갈 수가 없었다. 새끼 고양이도 그렇게 무서운지 처음 알았다.

어미 배 속에서 나와서부터 얼마나 시달림을 받았으면 그렇게 사람만 보면 물거나 할퀴고 도망을 가는지 측은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우리가 데려온 고양이라 그런지 만나면 반갑고, 배고프다고 기다리고 있으면 하던 일 젖혀 놓고 밥을 준다.

지금은 고양이가 우리의 사랑이 진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우리가 옆에 가도 도망가지 않고 안심하는 표정으로 밥을 먹는다. 긴 세월 만에 사랑을 받아들인 몸짓이다,

사람도 세 살 전에 사랑을 많이 받으면 평생 좋은 모습으로 살지만,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거칠고, 힘들게 세상을 산다는 얘기를 들었다. 짐승도 그런데 사람이야 오죽하랴.

7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에야 우리 곁으로 돌아온 검은 고양이의 편안한 모습을 보면서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새삼 깨닫는다.

고양이를 들여다보고 앉아 있으니 이런저런 인생사가 가슴 속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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