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순의 살맛나는 세상]작은 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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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의 살맛나는 세상]작은 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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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2.1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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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영하를 밑도는 추위에 게발선인장이 줄기 끝마다 조롱조롱 봉오리를 달고 있다. 활짝 핀 꽃을 보고 싶은 마음이 조급하다.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따뜻한 햇볕이, 겨울을 편히 지내려고 쉬고 있는 게발선인장을 깨워 꽃 피울 준비를 시켰나보다.

우리 집 양지 바른 베란다에서 자라는 화초가 스물댓 가지다. 길게는 20여 년이 된 것도 있고, 짧게는 며칠 전에 합류한 것도 있다. 버려진 것이 아까워 들고 온 것과, 이웃에게서 얻은 것, 선물 받은 것, 겨울에만 피는 꽃을 즐기려고 구해온 것까지 가지각색이다.

우리와 20여 년을 함께한 관음죽은 실내에서 자라는 탓인지 관리하기에 딱 좋은 크기를 잘 유지하고 있다. 사철 꽃을 피우고 있는 색색의 제라늄과 다육식물 몇 종류도 있다. 돌절구와 유리그릇에서 자라고 있는 두어 종류의 수생식물과 서너 종류의 난, 이름이 어려워 외워지지 않는 외래종들이다. 거기에 봄까지 먹으려고 심어 놓은 대파도 싱싱하게 잎을 키우면서 보탬이 되고 있다.

이웃 사람들이 놀러 와서 우리 집 작은 꽃밭을 보고, 어떻게 관리를 했기에 추운 날씨에 이렇게 싱싱한 잎과 꽃을 피우고 있느냐고 놀란다. 내가 그것들에게 해 준 것이라고는 화분의 윗부분이 마른 듯하면 며칠에 한 번씩 물을 주는 것과 봄에 화분갈이를 하면서 비료를 조금씩 넣어 주는 것이다. 늦가을에 겨울을 건강히 나게 하려고 화분 가장자리에 비료를 조금씩 주고 꼭꼭 흙을 눌러 주는 것 밖에는 없다. 베란다가 아니고 밖에 있었다면 모두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얼어 죽을 식물들이다.

특별히 할 일이 없을 때 화분을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누렇게 변한 잎을 따내고, 시들어가는 꽃을 따 주는 것이 화초를 싱싱하게 보이게 하는 작업이다. 아름다웠던 꽃들이 힘없이 시들어 추해진 것을 만지면서, 살아온 날들과 앞으로 올 나의 모습을 생각하며, 자신을 잘 관리하고 다스려서 황혼의 삶이 추해지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각오와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을 아는 것 같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파란 잎과 울긋불긋한 꽃을 자랑하는 화초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한다.

어렸을 적부터 내 손에서 자라는 짐승이나 꽃들은 실하게 잘 자란다고 어른들한테 칭찬을 많이 들었었다. 짐승이나 꽃이나 사랑을 주면서, 어루만져 주고 끊임없이 대화를 하면 사는 것이 즐거운가 보다.

꽃의 수는 적고, 파란 잎이 훨씬 무성해 작은 꽃밭이 푸른 빛 일색이라, 며칠 전 겨울 화초인 여려 가지 색의 시클라멘을 보탰고, 크리스마스의 상징인 포인세티아 한 분을 구해다가 화분들 사이에 끼워 놓았더니 작은 꽃밭이 한결 생기가 나고 진초록 잎과 꽃들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다. 거기에 게발선인장까지 진분홍 꽃을 준비하고 있어 더 보기가 좋다.

식물도 생명이 있지만,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신경이 있는 것도 아닌데, 들이는 정성에 따라 그것들의 삶이 좌우된다.

사람을 키우는 일은 어떨 것인지. 화초를 보고 있으니 아이들 키울 때의 여러 가지 일들이 떠오른다. 온갖 정성을 들여 잘 키운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들을 보면 늘 미안하다. 모든 여건이 잘 조화를 이루어 잘 자라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작은 꽃밭 속의 게발선인장이 꽃을 활짝 피우면 꽃밭으로 눈이 많이 가게 되고 화초들과 정이 더 들 것이다. 겨울 추위속에서도 잘 자라서 마음을 흐뭇하게 해 주는 화초들이 오늘따라 한결 보기가 좋다. 그래서 이 겨울을 포근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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