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어디로 가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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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디로 가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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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8.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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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 (수필가,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산중턱에 자리한 집에서 내려다보면 날이 좋으면 멀리 치악산도 보이고 높고 낮은 산들이 눈을 시원하게 하면서 온 동네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네 끝자락에 작은 저수지가 있었다. 집 앞에 앉아 물이 찰랑거리며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수면을 보는 재미가 좋았다.

저수지에는 제법 많은 낚시꾼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기도 하고, 여름이면 텐트를 치고 지내는 가족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 저수지 가에 있는 야산의 큰 나무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백로와 왜가리가 진을 치고 살았다.

백로와 왜가리의 둥지가 마치 고층 아파트처럼 층층이 지어져 있고, 파란 숲을 하얗게 덮고 있는 새들이 눈이 온 듯 착각을 일으키게 할 만큼 눈부셨다. 저수지 옆을 지나다니면서 그 새들이 살고 있는 모습을 보는 구경거리가 좋았고, 몇 마리씩 날아오르는 백로의 비상은 장관이기도 했다.

작년 여름 심한 폭우로 저수지 둑이 무너지고, 저수지의 물이 다 빠져 바닥을 드러내면서 바짝 말랐다. 이웃동네의 소유였던 그 저수지를 다시 복구하지 않고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개인에게 팔았다. 이제는 백로와 왜가리를 불러 모았던 저수지가 있던 곳이 비닐하우스도 만들어져 있고, 논과 밭으로 변했다.

계절 따라 고향으로 먼 길을 갔다 돌아온 백로와 왜가리가 저수지가 없어진 것을 보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까. 저수지가 없어지니 숲에 살던 백로와 왜가리도 살기가 힘들었는지 어디론지 사라지고, 남은 몇 마리만 쓸쓸히 앉아있다.

그 덕에 새똥으로 맥을 못 추고 누렇게 변해 있던 숲이 정신을 차리고 진초록 색을 띠며 활기가 가득 찬 숲으로 변했다. 새가 없어져 슬픈데, 숲이 다시 살아나 아름답게 변한 것은 희비가 엇갈리는 자연의 조화다.

저수지가 있을 동안 문제가 없었던 우리 집 연못이 수난을 받기 시작했다. 그곳에 살고 있는 백로와 왜가리들이 댓 마리씩 우리 연못에 있는 잉어와 붕어, 미꾸라지들을 잡아먹기 위해 연못가에 몰려와서 진을 치고 있다. 사람이 다가가면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가 버린다. 그곳에 고기가 있는 것을 어떻게 알고 날아오는지 신기하다.

이렇게 자연 속에서 새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것도 시골에 사는 재미라고 위안을 해보지만 물고기를 먹어 치우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벌 때문에 농약을 치지 못하는 농장은 잡초와 벌레, 새, 산짐승의 낙원이다. 벌이 물을 날라다 새끼를 먹이느라 맑은 물이 필요하다. 마을 곳곳에 논이 많아 물은 지천이지만 농약을 뿌린 논의 물을 먹고 벌들이 죽어서 농장에 두어 개의 연못을 파 놓았다. 연못이 있으니 미꾸라지와 잉어, 붕어를 사다 넣고, 비단잉어도 수십 마리 기르고 있다.

봄이면 올챙이 수천 마리가 떼를 지어 맴을 돌고, 그 많은 올챙이가 다 개구리가 되면 농장이 온통 개구리 천지가 되겠다고 웃지만 정작 개구리는 몇마리 보이지 않는다. 뱀이 잡아먹고 뱀을 먹기 위해 산짐승이 내려온다. 이렇게 여러 생물들과 어우러져 함께 살고 있어 보기 좋던 백로와 왜가리가 몇 마리 남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

오늘 아침에도 새벽 동트기 전에 밖에 나가보니 벌써 왜가리 두 마리가 연못가 나무에 앉아 있다가 우리를 보고 날아가 버린다. 아침 요기를 하러온 새를 쫓아버린 것 같아 안쓰럽기는 하지만 먹고 먹혀야 되는 약육강식의 이치를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폭우로 사라진 저수지가 논과 밭으로 변한 옆을 지날 때마다 자연을 마구잡이로 훼손하는 사람의 손길에 분노가 일 때도 있다. 파헤쳐진 자연으로 인해 수많은 생명들이 사라지니 이런 결과들이 우리에게 언제 재앙으로 닥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난여름 폭우에 만신창이가 된 서울의 물난리가 인재도 작용을 했다니 자연에 손을 대는 일에 좀 더 신중하고 심각하게 생각하며 두려워 할 일이다.

인간에 의해 살 곳을 잃은 백로와 왜가리의 수난이 안쓰럽다. 자연과 공존하면서 살아야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마구잡이로 자연을 파헤치는 사람들이 어리석음을 언제 끝이 날지 암담하다.

터전을 잃고 사라져버린 백로와 왜가리는 어디로 가서 터를 잡고 살고 있을까. 더 힘찬 비상을 꿈꾸며 살 수 있는 그 새들의 터전이 좋은 곳에 마련되어 있기를 내 마음도 함께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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