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순의 살맛나는 세상]우리가 죄를 지은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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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의 살맛나는 세상]우리가 죄를 지은 것인가요
  • 중앙신문
  • 승인 2018.12.1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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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나는 서울 성북동의 잔디밭이 넓은 집 뜰에서, 눈이 소복하게 내린 한겨울에 태어났습니다. 세상 나온 지 2개월이 되었을 때 주인은 ‘순종 진돗개’ 분양한다는 글을 대문에 붙여 놓았습니다. 마침 그 집 앞을 지나던 어느 부부가 시골에 사시는 당신들의 부모님께 보내려고 제법 비싼 값을 주고 샀습니다.

나와 동생은 태어난 후 처음으로 차를 타고 산중턱인 이곳으로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낯선 곳이라 처음 와서는 부모와 남은 형제들이 그리워 참 많이도 슬펐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주시는 따뜻한 사랑을 받고 산으로 논밭으로 마음껏 뛰어놀며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농장에 오는 사람들이 귀여움을 듬뿍 받으면서 우리는 늠름한 성견으로 자랐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다 자란 우리를 보고 좋은 진돗개라고 우리 할아버지를 무척이나 부러워했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새끼를 낳으면 꼭 달라고 미리 간곡한 부탁을 하기도 했답니다.

벌을 기르고 있는 할아버지는 튼튼한 새끼를 얻기 위해 근친교배를 하지 않게 하려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여왕벌을 분양 받아 벌통에 넣어줍니다. 그러니 우리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나는 뜻밖에 수술을 받았답니다. 그저 왜 그래야 되는지 얼떨떨하기만 했지요, 아마 할아버지도 수술을 시키면서 마음이 언짢았을 거라 생각됩니다.

넓은 산야를 마음껏 뛰놀던 우리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마을로 내려가 닭 한 마리를 물고 온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닭을 빼앗어서 땅에 묻어주었지만 뉘 집 닭인지 많이 마음이 불편하셨나 봅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좁은 개장에 갇히는 슬픈 운명이 되었습니다. 동네사람들이 와서 보고 개장을 별장처럼 잘 지어주었다고 했지만 별장보다 밖이 더 좋은 우리는 답답하기만 합니다.

우리 둘이 힘을 합치면 소도 잡을 수 있는 데, 튼튼하게 만들어진 쇠 울타리는 아무리 흔들어도 부술 수가 없어 꼼짝없이 갇힌 신세가 되었습니다. 맛없는 인공사료보다 가끔 할머니가 해 주는 생선이나 고기가 든 음식을 먹는 즐거움으로 그나마 위안을 삼습니다.

개장에 갇혀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아는 사람이 오면 반가워 꼬리를 흔드는 행동과 할아버지가 양봉장에서 일하고 있을 때 모르는 사람이 오면 알려주기 위해 큰소리로 짖는 것뿐인 무력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목줄을 매어 산책을 시키기도 하고, 교대로 운동을 하도록 했습니다. 꼭 한 마리씩만 내놓는 할아버지가 야속하지만 혼자 나가면 멀리 가지 않고 오빠나 누이동생 때문에 근처를 떠나지 않으니 잡아넣기가 쉬워서일 것입니다.

며칠 전 할아버지는 우리가 불쌍했던지 한꺼번에 내보내 주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감옥 같았던 우리에서 풀려나 십여 분 동안 마음껏 뛰어다녔습니다. 그런데 늘 개장 앞에 얼씬거리며 약을 올리던 짐승 한 마리가 밭에서 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닭을 잡던 재미있던 일이 생각나기도 했고, 개장 안에 갇혀 있는 우리를 약을 올리듯 뛰어 다니던 그놈이 얄미워서 둘이 덤벼 목과 옆구리를 물고 늘어졌더니 비명소리가 하늘을 찔렀어요, 우리 앞으로 지나가는 놈을 볼 때면 목구멍에서는 나도 모르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무섭게 흘러나오고 이빨이 시큰거렸거든요. 원래 우리에게 본능적인 분노와 격정으로 상대방의 살에 이빨을 박는 것보다 더 큰 희열이란 없다고 합니다.

소란한 소리를 듣고 할아버지가 한달음에 뛰어 왔습니다. 할아버지는 꿩인 줄 알았더니 고라니를 잡았느냐고 놀라시면서 우리를 강제로 끌어다 다시 가두었답니다. 밀렵이 금지 되어있는 곳에서도 밀렵꾼이 데리고 있는 사냥개가 죽인 동물에 대해서는 죄를 묻지 않는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짐승 한 마리 죽였다고 오랜만에 놓여나왔는데 금방 갇혀야 되는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사냥개인 우리를 가두어 놓고 꼼짝도 못하게 하는 것이 죄이지 우리가 죄인가요.

우리의 온몸은 고라니의 피로 물들었고, 고라니는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누워 있었습니다. 그때 할아버지의 심정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곧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서 고라니를 치우도록 했습니다. 고라니를 가져간 사람은 보약이라고 희색이 만면했지요. 닭 한 마리 때문에 갇힌 신세가 되었는데 이제 고라니를 잡았으니 자유스러운 바깥세상 구경은 영영 틀린 것 같습니다.

인간의 잣대로 평가 되어, 진돗개의 자존심을 형편없이 구기고 있는 우리 남매의 신세가 참으로 고달프고, 긴 앞날을 어떻게 살아낼지 아늑하기만 합니다. 동네사람들은 심어놓은 작물들이 새싹만 나오면 고라니가 다 먹어 치운다고 걱정이 태산 같다고 합니다. 우리를 풀어 놓으면 고라니가 동네에 얼씬도 못할 텐데요. 고라니를 잡아 우리가 정말 죄를 지은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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