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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의 살맛나는 세상]대나무 이야기
  • 중앙신문
  • 승인 2018.12.02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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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뒷동산에 대나무 밭이 사철 푸르러 눈과 마음을 즐겁게 했다. 금년에는 봄이 무르익었는데도 잎이 모두 누렇게 변해서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파랗게 우거졌던 대나무가 혹한으로 얼어 죽어 푸른 잎은 자취를 감춘 채 힘없이 늘어져있다.

죽었다고 안타까워했더니 늦은 봄이 되어 가녀린 죽순이 솟아 나온다. 간신히 겨울 동안 버티고 있다가 종족보존을 위해 순을 내놓은 모양이다.

죽순이 올라오길 기다리는 마음이 이렇게 간절한 것은 집을 둘러싸고 있는 대나무가 보기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생명이 다시 깃들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대나무밭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도 좋고, 작은 새들이 조롱이나 말똥가리 같은 무서운 새를 피해 숨을 수 있는 피난처가 되어 좋다.

수십 년 전에 이곳에 살던 누군가가 심어 놓은 대나무가 그동안 많이 퍼져 숲을 이루어 늘 마음을 신선하게 해 주었다.

대나무는 죽순이 나와 자라기 시작하는데 아무런 방해물이 없어야 곧은 대가 된다. 같은 청죽이라도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는 대나무와 달리 이곳은 대나무가 자라기에 온도가 맞지 않는 탓인지 각양각색의 모양새다. 대나무가 튼실하게 자라지를 못하니 다른 종의 나무들이 비집고 들어와 곧게 자라지도 못하고 가늘어 남쪽에서 자라는 대나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빈약하다.

죽순이 올라온들 채취해서 먹을 생각도 없고 자라면 이용하려는 욕심도 없다. 그냥 푸르게 서 있는 대나무를 바라보는 것이 좋을 뿐이다. 가끔 동네사람들이 얻으러 오면 잘라 주기도 하고, 손자들이 다니러오면 낚싯대를 만들어 주는 게 고작이다.

앞뜰에 심어 놓은 오죽도 어렵게 구해다 심은 것인데 자리를 넓혀 가고 있었다. 당연히 그 자리에 잘 있고, 봄이 되면 새싹을 내어 다시 순환을 시작하는 자연에서 이루어지던 일들이다.

검은 빛을 띠고 있어 오죽이라 불리는 대가 바람에 살랑거린다. 검은 빛을 띠고 있어도 생각보다 아름다워 보는 재미가 좋았는데 추위에 이상이 왔는지 누런 잎만 달고 있다. 예측을 할 수가 없이 변하는 것이 자연의 힘이라고 체념하지만 마음이 어둡다. 많이 얼어 죽는 탓인지 그렇게 왕성하게 번져가던 것들이 존재하고 있는 자체도 힘들 정도로 힘겹게 지탱하는 모습이다.

한식에 다녀온 고향 진주는 대나무가 겨울을 끄떡없이 잘나고 싱싱한 대와 잎이 보기 좋았다. 오죽도 우리 집 것은 수년을 키웠어도 키가 작은데, 진주에서 자라는 오죽은 우리 집 것에 비해 키가 두 배는 더 크다. 국토가 좁다고 해도 남부지방과 중부지방의 온도차가 커서 이곳에서는 아직 나무에 잎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는데 진주는 완연한 봄빛이 온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었다.

여름이면 넓은 잎을 펼치고 탐스럽게 서 있던 파초도 작년에는 애지중지 싸주고 두껍게 덮어 주었는데도 뿌리가 얼었는지 간신히 몇 개의 싹이 나와 초라한 자태를 보이고 있다. 겨우내 추위에 시달리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나온 파초가 얼마나 크게 자라줄지 상상하기가 어렵다.

모든 나무에 푸른 잎이 자라고, 온갖 화초가 싹이 트고, 꽃을 피우며, 갖가지 잡초가 기승을 부리고 솟아나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는 대나무를 바라보는 마음을 안쓰럽기까지 하다.

생명을 가진 것을 주어진 환경에 따라 튼실하게 살기도 하고, 약하게 살기도 하며 목숨을 부지하기가 어렵기도 하다.

대밭을 보면서 산고(産苦)가 힘들더라도 죽순을 많이 내보내서 풍성한 대밭을 만들었으면 하는 염원을 담고, 푸르름으로 가득 찬 대밭을 마음속에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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