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들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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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들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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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9.0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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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 (수필가,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새벽에 나가니 살무사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문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비가 많이 와서 마른 곳을 찾아 온 모양이다. 개구리가 지천이니 뱀이 많다. 개구리는 양봉장의 벌과 벌레들을 포식하고 산다.

밭을 맬 때면 수년 째 농약과 화학비료를 주지 않은 밭에 지렁이를 비롯해 많은 벌레들이 꿈틀댄다. 그 모양도 색깔도 가지각색이다. 매끄럽게 생긴 것, 털을 단 징그럽게 생긴 것, 큰 것, 작은 것, 검은 것, 하얀 것, 초록색과 갈색인 것. 모든 곤충의 유충인 벌레는 하나 같이 아무리 부드럽게 생겼어도 징그럽다.

벌레 중에는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몸에 독이 든 물질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있어 함부로 만지거나 다루기가 어렵다. 털이 몸에 닿으면 두드러기가 난 듯 벌겋게 부어오르는 것도 있고, 꼬리에 독이 있어 쏘이면 심하게 따가운 것도 있다.

이 벌레들이 모두 성충을 자라 나비가 되어 하늘을 수놓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성충처럼 예쁜 애벌레였다면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함부로 죽이지는 않을 텐데 왜 이렇게 유충을 징그럽게 점지를 해놓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더 많이 눈에 띌 때마다 죽임을 당한다.

어렸을 때는 털 달린 송충이가 무섭고 싫었다. 지금도 송충이가 몸에 붙으면 몸서리가 처질 만큼 소름이 돋기도 하지만, 죽이려고 손일 가다가도 멈칫하게 된다. 유충을 보면서 익충인지 해충인지 구별을 할 수 없으니 꿈틀거리는 벌레들이 작물을 해 친다는 이유로 무차별로 죽이는 것은 미안한 일이다.

밭을 매다가 개미집을 파헤쳐 수많은 개미가 허둥지둥 알을 물고 헤매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편안히 잘 살고 있는 것을 잘못 건드려 집을 잃고 다시 터를 잡아 집을 지으려면 얼마나 고생을 할까 싶어 안쓰럽다. 불란서 소설가 베르나르가 쓴 ‘개미’를 읽은 후로는 개미집을 건드려 개미가 우왕좌왕하는 것을 보면 머릿속에 온갖 그림이 그려진다.

지구상에서 하루에 멸종되어 가는 생물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한다. 이렇게 매일 멸종되어 간다면 언젠가는 지구상에 남아있을 생명이 얼마나 될까. 내가 죽이고 있는 벌레가 멸종 되는 종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하지만 그냥 살려 두고 싶어도 심어놓은 작물에 뿌리를 갉아먹고, 줄기를 해치고 잎을 먹어 치우니 그냥 둘 수가 없다. 죽이는 일도 싫지만 죽이고 나서 마음은 영 찜찜하다. 그래서 벌레를 죽일 때마다 ‘미안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그래도 우리 집 밭에 사는 벌레들은 주인을 잘 만난 셈이다. 농약을 뿌리지 않으니 모두 전멸 되지 않고, 밭을 매다 작물에 해를 끼칠 것 같은 벌레만 죽이니 그것으로나마 위안을 삼아야 될는지. 농약을 주지 않아 수많은 벌레를 만난 수 있는 것이 오히려 다행일까. 흙을 들출 때마다 벌레가 나오면 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땅이 살아있구나 하는 느낌은 좋다.

몇 년 동안 고추를 심다가 포기를 했다. 균 때문에 고추가 죽지만 벌레가 생겨 열리는 것마다 파먹으니 고생해서 심어도 따 먹을 수가 없다.

봄에 열무나 청경채, 배추 같은 것들을 심어 놓고 약을 주지 않으면 벌레가 다 먹어치워 속을 태운다. 우리가 심지 못하고 사먹는 채소에 농약을 준 것이 있겠지만 눈으로 보이지 않았으니 그냥 먹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농약 없이는 심어먹기도 힘든 채소들을 유기농으로 키우는 사람들의 노고가 얼마나 클지 짐작이 간다.

농약전문가에 의하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에서 쓰는 농약은 대개 일주일이나 보름이면 그 약해가 없어져 깨끗이 씻어서 먹으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벌레가 많으니 개구리가 많고, 개구리를 잡아먹으려고 뱀도 돌아다닌다. 여러 종류의 나비와 새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고, 각양각색의 예쁜 새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어 즐겁다.

언제까지 농약 없이 사는 생활 할는지 모르지만 독한 화학약품으로 벌레를 죽어야 하는 일이 내 손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불교경전에 ‘모든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 항상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모든 중생을 구제해야 한다. 방자한 생각으로 살아 있는 목숨을 죽이면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죄가 된다’고 했다.

사람의 이기심 때문에 세상에 태어나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 벌레들에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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