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순의 살맛나는 세상]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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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의 살맛나는 세상]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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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0.04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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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아무리 좋은 별장에 살아도 갇혀 산다면 불행한 삶이다.

동네 사람들이 붙여준 우리 집 개 별장에서는 늠름한 진돗개 남매가 꼬리를 내리고 언제나 슬픈 눈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다. 운동부족에 걸리지 않도록 제법 넓게 지어준 개장이지만 산으로 들로 마음대로 뛰어놀던 기억이 있기에 개들에게는 숨 막히도록 좁은 공간일 것이다.

개를 가두어 놓기 위해 지어준 개장을 동네 사람들이 보고 별장 속에서 호강하고 산다고 했다. 잘 지어 준 우리에 살아도 자유를 잃었으니 무슨 소용일까.

시골에서 살고 있어 적적할 것이라고 아이들이 진돗개 남매를 구해다 준 지가 만 2년이 지났다. 지금 한창 날뛸 사춘기다. 처음 일 년은 산과 들로 마음대로 뛰어다니며 활개를 치고 살았다. 우리가 밭에서 일할 때면 옆에서 놀다가 어느 틈에 자취를 감추고 한참이 지나 어디 갔을 까 걱정을 할 즈음이면 온몸에 검불과 흙을 묻혀가지고 어김없이 집을 찾아왔다.

수놈은 편히 지낼 수 있는 집을 지어 주었는데도 뜨거운 햇볕이 내리쪼이는 날도,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엄동설한에도, 동생인 암놈 집 앞에 만들어 놓은 평상에서 지낸다. 억수 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눈을 다 맞으면서도 집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지내고 있어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산에서 내려오는 멧돼지나 고라니 같은 들짐승에게서 동생을 지켜 주려는 것인지 그 속을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밖에서 고생하는 것이 측은해서 편안한 집안으로 들어가 있으라고 아무리 일러도 말을 듣지 않는다.

친남매가 한 우리에 살고 있으니 새끼라도 생기면 도리가 아닐 것 같아 수놈을 수술을 시켰다. 동네 사람들은 잘생긴 놈들을 씨를 퍼트리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아까워했다.

1년여 동안 말썽 없이 잘 지내면서 제법 성견의 티가 나려는 시기에 마을에 내려가 닭을 물었다 목을 잘라 버린 사건이 생겼다. 죽은 닭은 잘 묻어 주었지만 그때부터 개들에게 불행이 시작되었다. 뉘 집 닭인지 동네에 내려가 닭을 기르는 집을 다니면서 물어볼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개장을 지어 가두었다.

우리가 집에 없을 때 동네 사람들이 와서 개장을 둘러보고 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개가 갇혀 있으니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돌아간 것 같다.

개 훈련소에 맡겨서 교육을 시키면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을까하는 희망으로 상담을 했다. 진돗개는 한 번 닭을 물어오면 그 버릇은 평생 고칠 수가 없다는 절망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개가 닭을 죽였으니 평생 감옥에 갇혀 지내게 된 기막힌 꼴이 되었다.

가끔씩 운동을 시키려고 한 마리씩 우리 밖으로 내 주면 처음에는 좋아서 펄펄 뛰어 돌아다니다 금방 돌아와 우리 안에 갇혀 있는 짝을 바라본다. 두 마리를 함께 내놓으면 다시 동네로 내려가 닭을 해칠까 걱정이 되어 함께 내놓지 못하는 것도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일이다.

개들의 예리한 감각으로 주인과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사람을 용하게도 알고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라도 짖지를 않고 반가워한다. 주인과 상관없어 보이는 낯선 사람이 오면 무섭게 짖어대는 폼이 우리 안에 갇히지 않았다면 금방 무슨 일이라도 낼 것처럼 겁난다.

집에 손님이 오는 날은 개들이 호강하는 날이다.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우리에 갇혀 있는 개가 불쌍해서인지 먹을 것을 잔뜩 준비해 와서 개를 품에 안고 쓰다듬어 주며 하루 종일 먹인다.

세상에는 사람 못지않게 머리도 좋고, 의리도 있는 똑똑한 개들이 많다. 우리 개들은 옆에서 주인과 함께 놀아주고 집이나 잘 지켜 주기를 바랐는데….

우리에 갇혀 있는 개들이나 보고 있는 우리나 답답하긴 똑같다.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를 죄의 대가가 이렇게 혹독하다.

무슨 일로 갇혀 있는지는 모르면서 좁은 우리 안을 맴돌고 있는 개들은 오늘도 화려했던 지난날을 생각하는지 슬픈 눈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다.

개들에게 우리 힘으로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으니 미안한 마음만 가득하다. 그나마 목이 묶이지 않고 별장 같은 개장에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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