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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의 살맛나는 세상]달랑 감 한 개 달고
  • 중앙신문
  • 승인 2018.10.2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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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가을이 깊어간다. 나무에 달랑 한 개 달린 감이 쓸쓸해 보인다.

심은 지 6, 7년 밖에 되지 않은 아직 어린 나무지만 감이 많이 열릴 때는 한 접도 딴 적이 있다. 많이 따서 이웃과 나누어 먹는 재미가 쏠쏠 했는데 작년과 금년 이태 동안 감 구경을 못했다. 작년에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제법 풍성하게 달렸던 꽃이 모두 떨어졌다.

금년에는 지난겨울 혹한에 얼지 않도록 잘 감싸 주었는데도 추위에 견디지 못하고 서너 그루가 다 얼어 죽었다.봄이 되어도 깨어나지를 못해 마음이 아팠다.

늦봄에 죽은 줄 알았던 단감나무에 연한 싹이 트기 시작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만세까지 불렀다. 동해를 많이 입었지만 죽지 말아 달라고 나무를 어루만지며 부탁을 했다.

그래도 꽃이 필 때가 되니 여기저기 가지에 꽃망울을 터트린다. 신통해서 매일 들여다보던 그 꽃도 긴 여름 장마에 모두 녹아 떨어져 버렸다. 금년에도 감이 한 개도 열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욕심은 일찍이 비웠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나무 맨 윗가지 끝에 감이 하나 보였다. 자손을 퍼트리기 위해 안간힘을 다 한 것 같다. 까치와 까마귀, 산비둘기, 꿩들이 오가다 건드릴까봐 늘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전에는 감나무가 추풍령 이북에서는 추위를 견디지를 못해 심고 싶어도 심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단감나무는 경남에서 밖에 겨울을 나지 못했는데 근래 이상 기온으로 감나무가 경기도까지 올라 온 것이다.

어렸을 적 뒤울안에 감나무를 갖게 해 달라고 아버지에게 졸랐지만 겨울에 얼어 죽기 때문에 심어주지 못한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때는 뜰에 자라던 포도난무도 추위가 오기 전에 땅에 묻어야 겨울을 났는데 지금은 땅에 묻지 않고 잘 살고 있다.

자연이 하기에 따라 나무가 실하게 잘 지내기도 하고 고생하면서 지내기도 하듯 가정을 꾸려 나가는 것도 똑같다. 한결같은 삶이 이어지지 못하고 평탄하게 살기도 하고 힘든 삶이 닥쳐오기도 하는 것이 꼭 감나무가 수난을 겪는 것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평생 월급쟁이 남편과 살면서, 아이들 넷 키우며 손톱 밑에 피가 나도록 알뜰한 살림을 해 왔다. 아이들의 단백질 보충을 위해 고기라도 제대로 먹이려고 마장동과 독산동 도살장을 내 집 드나들 듯이 하고,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생선을 사 가지고 이고 들고 무거워서 고생하며 다니던 생각이 아득한 옛일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식구가 많아도 어느 해는 애태우지 않고 편안히 지내기도 하고, 행사가 많은 해는 살림 꾸려나가기가 버거운 때도 있었다. 어떤 때는 병원비로 인해 허리가 휘기도 하고, 여럿 아이가 한꺼번에 입학을 해서 입학금 대느라 힘들게 산 일이 엊그제 같다. 이제 다 어른이 되어 일가를 이루고 사는 아이들을 보면서 잘 버티고 살아 왔다는 생각을 한다.

그 긴 세월을 어찌 지냈는지 나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고, 가족에게 더 정성을 쏟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지난겨울 추위에 죽었다 살아난 감나무를 보니 힘겹게 살아난 감나무가 내가 살아온 세월을 보는 것 같아 더 정이 간다.

오늘도 감을 보면서 까치밥으로 둘 것인지 귀하게 달린 열매이니 따서 먹을 것인지 갈등을 하고 있다. 감나무가 자손을 보존하려고 있는 힘을 다 쏟아 키웠을 감 한 개를 놓고 욕심을 버리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아직 단풍이 덜 들어 파란 잎 사이에 달랑 한 개 달린 감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빨간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 예쁘기도 하다.

중앙신문  webmaster@joongang.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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