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순의 살맛나는 세상]춤추는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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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의 살맛나는 세상]춤추는 불꽃
  • 중앙신문
  • 승인 2019.02.27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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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본다.

불꽃이 너울거리는 모습은 어느 무용수의 몸짓보다 현란하다. 홀로 피어나기도 하고, 군무(群舞)를 이루며 파도처럼 휘몰아치기도 하고, 붉은 정열을 속에 간직한 채 사그라지기도 한다. 수시로 변하는 불꽃의 모양은 들여다볼수록 새롭다. 소리도 없어도 수백 가지의 언어로 마음속에 새겨진다.

산에 오르다 보면 죽어 있는 나무들이 눈에 많이 띈다. 오래된 나무의 육중한 몸이 어린 나무들 위에 쓰러져 있다. 커다란 나무에 짓눌려 숨도 못 쉬고 있는 나무를 볼 때마다 어린 나무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죽은 나무를 치워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리지만 황홀하도록 예쁜 연두색의 새싹이 돋아나는 산 구경도 할 겸 나무를 하러 산을 오른다. 살아 있는 생명을 보살펴 준다는 마음으로 죽은 나무를 들어낸다. 난로 땔감으로 쓰려고 집으로 끌어 온 죽은 나무를 톱으로 자르고 도끼로 뻐갠다. 죽은 나무들 틈에서 곤충의 번데기와 벌레들이 기어 나오는 것을 본다.

나무껍질에는 새들이 부리로 쪼아댄 자국이 수도 없이 찍혀있다. 죽은 나무를 치우는 일이 산 나무의 숨통을 트여 줄 수 있지만, 벌레에게는 서식지를 없애고 새들에게는 먹이를 빼앗는 일이다. 벌레가 번식할 터전을 없애면 새들의 먹이도 그만큼 줄어든다.

산 나무와 죽은 나무 사이에 희비가 엇갈리는 일이니, 산 나무를 위해 죽은 나무를 해온다 해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나무가 생병을 다하여 쓰러지면 그대로 자연스럽게 썩도록 내버려주는 것이 생태계를 위해 더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10여 년 넘게 자란 밤나무도 여기저기 쓰러져 있다. 밤을 따려고 톱을 가지고 다니면서 밤나무를 자르는 사람들의 얘기는 들었지만, 톱자국이 난 밤나무를 보면 분노가 인다.

헐벗었던 산이, 연탄과 석유, 가스로 연료가 대체되면서 나무와 풀이 무성한 산으로 바뀌어 보기만 해도 마음이 풍성하지만, 불안한 서계정세로 다시 나무가 땔감으로 바뀌어 애써 가꾼 산이 다시 헐벗지 않을까 걱정이다.

몇몇 나라에서 생산되는 석유와 가스로 온 세계가 움직이고 있는데, 앞으로 몇 십 년이면 석유와 가스가 고갈된다니 에너지원이 다시 나무로 대체되지는 않을는지. 세계 도체에서 화전을 일구고 농경지를 만들며, 인간의 욕망을 위해 숲을 다 파헤치고, 나무를 땔감으로까지 쓴다면, 헐벗게 될 산이 우리에게 가져다 줄 재앙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이 앞선다.

살아 있는 나무에 움직이는 생명들이 활기차게 깃들고, 죽은 나무에도 의지하며 살아가는 여러 생명들이 둥지를 튼다. 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값진 혜택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산에서 나무를 하고 있으면 지나가던 동네 사람이 보고 “사다가 때면 시간과 품도 덜 들고 편할 텐데, 왜 고생을 하면서 나무를 하느냐”고 한마디씩 한다. 죽은 나무가 치워지면 산이 깨끗해지고, 땀 흘려 나무를 해다 때는 재미를 경험해 보지 않고 어떻게 이해를 할 것인가.

집안을 데우기 위해, 난로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즐기기 위해, 산 나무를 편안하게 해주고 산이 깨끗해진다는 핑계로 죽은 나무에 의지해서 살고 있는 생명들에게 대한 미안함을 마음속에 접어 두고 오늘도 죽은 나무를 끌어오려고 산을 오른다. 얼기설기 쌓아 놓은 장작더미에 힘 좋은 불쏘시개로 불을 붙이면 불길이 단번에 솟구쳐 오르지만, 시원치 않은 불쏘시개로 불을 붙이면 불꽃이 잘 일지 않는다. 시작과 바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난로에 불을 붙일 때마다 실감한다.

화력이 좋고 불이 오래가는 참나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타지만 불꽃이 많이 튀어 좋은 땔감이 못 되는 아까시나무, 향긋한 솔냄새를 풍기며 타지만 그을음이 많이 나는 소나무와 잣나무, 밤나무는 탈 때 머리가 아프니 소금을 뿌려준다. 나무의 종류가 다르니 타는 모양도 가지각색이다.

난로 앞에 앉아 수시로 변하는 불꽃의 연출을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심심하지가 않다. 불꽃은 추위를 몰아내어 따뜻함을 가져다주고, 밝음을 주기도 하지만 나무가 자신을 불사르며 내는 난무하는 불꽃은 수백 가지의 언어를 가슴속에 남기면서 살아 있음을 기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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