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향은 여전히 향을 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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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향은 여전히 향을 뿜고
  • 중앙신문
  • 승인 2018.08.0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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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 (수필가,칼럼위원)

향이 천리를 간다하여 ‘천리향’이라고 한다. 시부모님 가신지 20여 년이 흘렀어도 천리향에 담긴 애틋한 마음이 가시지를 않는다.

서울보다 따뜻한 고장인 진주에서 탐스럽게 자라던 천리향은 시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시고 어머님이 우리와 함께 살기위해 서울로 올라오실 때 용설란 화분과 이삿짐에 함께 묻어 왔다. 자라던 환경이 바뀌어도 아파트 베란다가 지내기에 쾌적했는지 따뜻한 햇빛을 받으면서 어머님을 흐뭇하게 해드릴 만큼 잘 자랐다.

용설란은 해마다 화분을 갈아주어 어른 키만 해졌고, 천리향은 짙은 향을 온 집안에 뿜어내면서 식구들의 사랑을 받고 살을 찌웠다. 어머니께서 기르던 것이라 더 애지중지 했다. 십 수 년 함께 살던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아파트에서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겨울 추위에 살지 못하는 용설란은 서울보다 따뜻한 부산 시동생네로 보내졌고, 천리향은 우리와 함께 이사를 했다. 오랫동안 매일 눈 마주치며 살던 용설란은 끝까지 데리고 있지 못하고 보내면서 어머님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었다. 다행히 천리향은 한겨울에만 보온을 해주면 되는 식물이라 부모님 뵙듯 품에 끼고 있었다.

잘 돌보아선지 천리행도 잘 크면서 꽃이 피면 그 좋은 향을 온 집안에 뿜어내어 부모님의 향기를 맡는 듯 식구들을 흐뭇하게 해주었다.

그 후, 시골에 내려오게 되어 천리향도 함께 왔다. 추위가 오기 전까지 땅에 심어 놓으면 땅 심도 받고 좋을 것 같아 묻어 주기로 했다. 남편은 추워지면 집안으로 옮겨야 될 것을 생각하고 파기 쉽게 화분 채 묻어주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땅에서는 화분 속이지만 마음대로 뿌리를 뻗고 잘 지낼 것 같던 천리향이 생각과는 달리 시난고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누렇게 변하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싶어 파보니 이미 뿌리가 썩어 회생 불능 상태가 되어 오랫동안 키운 아까운 나무를 죽였다. 부모님께 죄를 지은 것 같아 안타까웠다.

이듬 해 이른 봄 매화 꽃 보려 남녘에 갔을 때 마침 근처에서 천리향을 팔기에 한 그루 사가지고 와 심었다. 정성을 들인다고 과잉보호를 한 탓인지 그도 생명을 부지하지 못하고 죽이고 말았다. 원예전문가에게 물어보니 물을 너무 자주 준 것이 화근이라고 했다.

부모님을 그리는 마음 때문인지 천리향에 향한 마음을 지우지 못해 다시 한 그루를 구해다 심었다. 이번에는 튼튼하게 키우려고 땅에 심어 여름을 났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기를 피지 못하고 잘 자리지를 않아 다시 화분에 옮겨서 아파트베란다로 계획보다 빨리 이사를 시켰다. 매일 눈만 뜨면 사랑을 주어서 그런지 차츰 정신을 차리고 잘 자라기 시작했다.

천리향 꽃향이 코끝을 스치면 형언할 수 없는 생각들이 가슴을 스치면서 부모님을 떠오르게 한다. 부모님이 우리에게 맺어준 한 그루의 나무가 이렇게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면서 가슴 속에 박혀 있을 줄 누가 알았으랴.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천리향은 늘 함께 있을 것이다.

부모님을 가슴에서 떠나보내 드리지 못하듯 부모님의 추억이 스민 천리향도 그 향과 함께 우리 곁에서 떠나보낼 수 가 없을 것 같다. 한 나무를 지키면서 평생의 반려로 함께 산다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오늘도 천리향을 지켜보며 지나간 날들을 안개처럼 피워 올린다.

올해도 변함없이 천리향은 가을에 맺은 꽃봉오리를 피우려고 애를 쓰고 있으니 곧 우리에게 멋진 향을 선사할 것이다. 언제쯤 꽃이 필까 들여다보고 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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