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일 거드는 고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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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일 거드는 고라니
  • 중앙신문
  • 승인 2018.07.23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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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수필가,칼럼위원)

한낮에 고라니가 산에서 내려와 집 앞 밭에서 겅중겅중 뛰고 있다. 겉으로는 평화스러워 보이지만 우리만큼 고라니도 마음이 편치는 않을 것이다.

산중턱에 위치한 농장에 산토끼와 고라니, 멧돼지, 꿩, 까치, 여러 종류의 동물과 새들이 판을 치고 산다. 우리에 갇혀 있는 덩치 큰 진돗개 두 마리를 얕본 탓인지 낮에도 고라니가 내려와 온 밭을 헤집고 다닌다. 농사일을 거드는 것 같은 모습으로….

봄에 제일 먼저 올라오는 원추리 싹을 낫으로 벤 듯 가지런히 몽땅 잘라 먹었다. 상추 싹이 예쁘게 자라고 있는데 다 뜯어먹더니, 고구마 순이 간신히 정신 차리고 뿌리를 내리려고 하는데 모조리 먹어 치웠다.

그대로 두면 가을에 고구마 구경도 못할 것 같아 밭이 잘 내려다보이는 장소에 전깃불을 환하게 켜놓고 사람이 있는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라디오도 밤새 크게 틀어 놓고 고라니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동네 사람들은 울타리를 만들어 고라니나 멧돼지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지만 넓은 밭에 울타리를 치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산에 지천인 풀을 두고 사람을 무서워하면서도 집 앞에까지 내려와 먹는 것을 보면 산에 나는 풀보다 사람이 심어놓은 것들이 더 맛이 있는 모양이다.

다시 심은 고구마의 새순이 뿌리를 내리고 어느 정도 자랐기에 안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밤사이에 몇 마리의 고라니가 왔다 갔는지 두 번째의 수난으로 낫으로 벤 듯 잎사귀는 없고 줄기만 남았다.

아들은 고라니 발자국과 변, 뜯어 먹은 자리를 사진을 찍어 동회에 신고하면 고라니를 잡을 수 있는 허가를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무슨 재주로 고라니를 잡을 것인가. 아무리 잎을 다 잃어버렸어도 금방 새로운 싹을 내놓는 식물들이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머리 깎인 계집애 모양으로 있는 고구마 덩굴을 보면 웃음도 나온다. 힘들여 심어 놓은 고구마를 뜯어 먹었어도 고라니가 그리 밉지 않은 것은 자연의 섭리니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불가항력이라는 마음이 작용해서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사람들에게 받는 상처보다는 마음 속 깊이 크게 박히지 않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체념 때문일 것이다. 다시 전깃불을 켜고 라디오를 틀어놓았다. 동네에서 많이 떨어진 산중턱이라 마을까지 라디오소리가 내려가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고라니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콩잎이라고 한다. 몇 해 전부터 콩과 옥수수 심는 것은 포기했다. 콩은 심어 놓으면 까치와 까마귀, 꿩이 다 파먹고, 옥수수는 잘 자라서 열매를 맺으려고 하면 새들이 와서 쪼아 먹으니 우리 입에 들어 올 수 있는 것은 하나도 남지를 않는다. 가끔 뉴스에 멧돼지가 수확기의 옥수수밭을 다 망가트렸다고 망연자실하는 농민의 모습이 나온다.

스타인 백의 소설 ‘분노의 포도’는 적은 농토를 가지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농민들의 이야기다. 해마다 계속되는 가뭄 때문에 진 은행 빚으로 농토를 빼앗기고, 눈앞에서 트랙터가 땅을 파헤치고 집을 무너트린다. 자신들이 평생 일구어온 온갖 것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가슴 아파하던 농민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30여 만 명이나 되는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농민들이 유토피아를 찾아 서부로 이동하면서 먹을 것과 잠자리가 없어 고생하고, 가는 길에 가족이 죽고, 아들이 가족 곁을 떠나고, 일을 하고 싶어도 일거리가 없어 굶어야 한다. 농토를 빼앗기고 떠도는 사람들의 앞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과정을 그린 것이다. 농민의 삶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

요즘은 고수익 농작물을 심어 수입을 많이 올리는 농민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농민들은 주어진 여건에서 있는 힘들 다 쏟아 농사를 짓고 있다. 힘든 농사일에 찌들어 농촌의 노인들은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몸이 비틀어지고 등이 굽었고, 절뚝거린다. 여기에 야생동물까지 합세하여 괴롭히기 농촌에서 산다는 것은 참 힘이 든다.

계속 새싹이 나올 때마다 고라니의 피해를 입을 것이다. 고구마 밭을 보고 이제 욕심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농촌회귀로의 가슴 벅찼던 꿈은 사라져가고, 나이 들어가는 몸과 마음은 고달프다.

그래도 시원하게 부는 바람과 맑은 공기, 사철 변하는 아름다운 경치가 있고, 가족이 먹을 수 있는 꿀이 나오니 그만으로도 족하다고 마음을 달래며 오늘도 고구마 밭에 들어가 풀을 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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