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뾰족지붕은 지금도 그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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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뾰족지붕은 지금도 그곳에
  • 중앙신문
  • 승인 2018.07.16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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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수필가,칼럼위원)

그 집은 키 큰 나무들에 둘러싸여 길에서 보면 초록지붕이 보일락 말락 한다. 가끔 차를 타고 가다 숲 사이로 뾰족지붕이 보이면 반갑기 그지없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그 초록지붕만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노후에 꼭 시골생활을 해야겠다고 다짐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건이 되면 시골생활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40여 년 전, 우리나라가 살기 어려웠던 시절, 남편이 소속된 재단에서 미국원조자금으로 살기 어려운 마을을 택해 도와주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그중 한 곳이 지금 우리가 자리 잡은 여주의 한 마을이다.

다리를 놓아주고, 우체국을 유지해 오고, 전기와 전화도 설치하고, 농번기에 돌봄이 필요한 어린이를 위한 탁아소도 지었다. 새끼를 낳으면 다른 농가를 위해서 한 마리씩 내놓는 조건으로 소를 사주어서 농사에 도움을 주고, 표고 재배에 필요한 여러 가지 협조를 하기도 했다.

어촌에는 미역과 김 양식장 사업을 도와주고, 바람이 많은 제주도에는 방풍림을 위한 나무를 지원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사업을 했는데, 새마을운동의 효시가 아닐까 싶다. 그때는 우리나라가 외국의 도움을 받았지만 지금은 원조를 받았던 나라 중에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외국에 원조를 해주는 나라가 될 만큼 잘살고 있다. 40여 년 전 남편이 일하던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남편은 동네 발전을 위한 철저한 조사와 의견교환 등으로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친해졌다. 여러 가지 시설을 해주면서 빈번한 교류를 가지게 되었고, 자연히 한 동네사람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이런 연유로 우리는 시골에 자리 잡으면서 텃세를 겪지 않았다.

남편이 퇴직할 때쯤 마을 사람들의 권유도 있고 해서 시골에서 살아볼 마음을 굳혔다. 마침 마을에 빈집이 있어 우선 그곳에 살기로 한 것이 농촌에 자리를 잡게 된 계기가 되었다. 동네에서 ‘초록 뾰족집’이라고 불린 그 집은 벽을 돌로 감쌌는데, 아래층에 방 한 개와 부엌, 화장실이 있었고, 이층에 널따란 지붕 밑 방이 한 개 있었다. 아래층은 침실 겸 식당, 객실로 쓰고 이층 다락방은 서재와 작업실로 썼다.

도회지에서 친지들이 놀러오면 작고 불편한 집이라도 정말 좋아했다. 텃밭에서 나는 채소로 초라한 밥상을 차려도, 좁은 방에 끼어 자면서도 재미있어 하며 뾰족집에서 지내는 것을 즐겼다. 그 후로 차츰 서울 살림을 정리하고 아주 시골로 옮겨 앉았다. 집도 새로 짓고, 양봉장과 여러 가지 작물을 심을 수 있는 밭도 장만했다. 가족에게 무공해 작물을 먹이고 싶었던 바람도 이루어졌다.

남편은 중학교 다닐 때, 옆집에 사는 친구가 벌 몇 통을 기르는 것이 부러워서 그때부터 벌을 꼭 길러 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은퇴한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벌을 키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경험과 기술도 익힐 겸 서너 통 가지고 시작을 했는데,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지금은 벌들이 많이 늘어나서 식구들끼리 1년 동안 먹고도 남아 꿀을 찾는 가까운 이들과 나눌 만큼 채밀을 하고 있다.

호기심과 취미로 시작한 벌 기르기가 이제는 규모가 커져서 남편은 매일 새벽부터 저녁까지 벌에 매달려 산다. 그동안 쌓인 연륜은 남편을 양봉박사로 만들었다. 이 일은 철저히 혼자 하는 작업이다. 남편은 나이 들어서는 여러 사람과 어울려서하는 일보다 혼자 하는 일이 편하다고 한다. 벌에 쏘이는 것이 무서워 동네 사람들이 놀러 오기를 꺼려서 사람 만나기도 어렵다.

심심치 않게 가짜 꿀에 대한 뉴스가 기분을 언짢게 하는데, 오늘도 가짜 꿀을 만들어 많은 돈을 벌었다는 뉴스가 나와 안타깝다. 정칙한 사람들조차 의심 받는 듯하여 몇몇 가짜 꿀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 때문에 속도 상한다. 생산자와 전화번호, 생산지, 생산연도를 당당히 밝힐 수 있는 꿀을 만드는 남편이 한편으로는 자랑스럽다.

초록지붕에서 시작한 시골에서의 생활이 그동안 호사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남편과 뜻 맞추어 행복했던 세월을 만들어준 숲 사이로 보이는 지붕을 보면 어느 새 흘러간 십여 년의 시골 생활이 머릿속 가득 펼쳐진다. 남편과 내가 시골에서 뿌리박고 잘 헤쳐 나가고 있는 것은 초록 뾰족지붕이 맺어주었던 넉넉한 인정 덕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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