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희의 문화유산여행]보랏빛 노을 속 부암동을 산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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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희의 문화유산여행]보랏빛 노을 속 부암동을 산책하다
  • 중앙신문
  • 승인 2019.01.2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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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희 (궁궐문화원장)

햇살이 따스한 겨울, 잠시 혼자만의 산책을 즐기고 싶다면 가기 좋은 곳이 바로 부암동이다. 드라마 ‘커피프린스’가 아니었다면 부암동이 이렇게 유명해질 수 있었을까? 가끔은 의구심이 들면서도 꼭 드라마 촬영지가 아니었더라도 사람들은 부암동의 매력을 찾아냈을 것이라는 확신이 부암동을 찾을 때마다 생긴다. 부암동에는 예쁜 커피숍과 맛 집, 작은 디자인 숍들이 곳곳에 숨어있어 우리의 발걸음을 행복하게 한다. 오늘은 우리의 발길을 불러 세우는 부암동으로 문화유산 여행을 떠나보자.

부암동 여행은 늘 창의문에서 시작한다. 이 창의문을 경계로 도성 안쪽은 청운동, 도성 바깥쪽은 부암동이다. 창의문은 조선시대 서울 4소문 중 하나로, 자하(紫霞)문이라고도 부른다. 개인적으로는 창의문이라는 이름보다는 자하문이라는 이름을 더 좋아한다.

자하!, ‘보랏빛 노을’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신선이 사는 곳에 서리는 노을’이라는 의미도 있다. 그래서 일까? 부암동 여행을 시작한다는 것은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으로의 여행으로 느껴진다.

창의문은 인조반정시 반란군이 이곳 창의문을 통과해 반정을 성공시킨 일화가 있다. 훗날 영조는 이 거사를 기념해 창의문의 일대를 재정비하고 관련공신들의 이름을 현판에 새겨 걸어놓았다. 현판과 문루가 당시의 흔적이다.

창의문 주변에는 최규식 경무관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최규식 경무관은 종로경찰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북한 무장공비의 청와대 기습 공격을 막아내다 현장에서 순직하였다. 다행히 무장공비의 공격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 공로를 기리기 위해 이곳에 동상을 세웠다.

창의문에 얽힌 인조반정 이야기나 청와대를 습격한 무장공비의 이야기는 ‘자하문’이라는 이름과는 상반되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선과 악의 대비처럼 묘하게 어우러지는 느낌이 있다. 악이 있어 선이 더 부각되는, 그런 느낌이랄까.

창의문을 지나 ‘자하’라는 이름과 아주 잘 어울리는 무계원으로 향한다. 무계원은 ‘무계정사’가 위치해 있었던 곳이다. 무계정사는 세종대왕의 아들인 안평대군의 별장이다. 안평대군은 ‘<몽유도원도>의 무릉도원이 바로 여기’라 해서 이 곳에 정자를 지었다. 물론 그 당시의 무계정사는 사라지고 지금은 무계원으로 재탄생된 곳이지만 백악산과 인왕산이 연결되는 지역인 부암동의 아름다움을 상상해볼 수 있다.

다음은 현진건 집터 표석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현진건’하면 ‘운수좋은 날’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인력거꾼 김첨지의 하루 일상을 담은 이 작품은 가장 비극적인 날을 ‘운수좋은 날’로 포장함으로써 하층민들의 애환을 더 깊게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에서 느껴지듯이 현진건의 삶 또한 빈곤한 생활을 이어가다 결국에는 장결핵으로 세상을 뜬 비극적인 인물이다. 현진건 집터에서 현진건의 삶과 ‘운수좋은 날’의 작품을 함께 떠올려본다.

이젠 윤동주문학관으로 발길을 재촉해보자. 윤동주문학관은 창의문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2012년에 개관한 이곳은 청운동에 버려진 물탱크와 수도가압장 시설을 재건축하여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물탱크 내부는 윤동주 시인의 일대기를 감상할 수 있는 영상실로 꾸며졌다.

문학관 뒤편 인왕산 자락에는 성곽을 따라 ‘시인의 언덕’이 조성되어 있다. 윤동주는 서촌에서 하숙을 했었다. 서촌에서 하숙을 했던 윤동주는 종종 인왕산을 찾았고, 그가 찾았던 인왕산 자락에 이 ‘시인의 언덕’이 조성되어 있는 셈이다. 시인의 언덕에 올라 청운동과 청와대 일대를 바라보며 시 한편 읊어보는 것도 산책의 묘미이다.

부암동은 유난히 별장이 많은 곳이다. 안평대군의 별장 ‘무계정사’를 비롯해, 윤치호의 아버지 반계 윤웅렬의 별장인 ‘부암정’, 흥선대원군의 별장인 ‘석파정’까지, 부암동은 조선시대 양반들의 별장터로 사랑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혼자만의 여행을 즐기고 싶다면, 카메라 달랑 하나 메고 보랏빛 노을 속 부암동으로 산책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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