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희의 문화유산여행]여주 명성황후 생가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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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희의 문화유산여행]여주 명성황후 생가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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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5.1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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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희 (궁궐문화원장)

5월은 다양한 축제들로 인해 생동감 있는 시기이다. 가족과 함께 각종 축제도 즐기고 우리의 문화유산을 여행할 수 있는 여주로 떠나보자. 여주는 명성황후를 비롯해 숙종의 인현왕후, 영조의 정순왕후 등 조선시대의 왕비들을 7명이나 배출해 낸 유서 깊은 곳이다. 오늘은 조선시대의 왕비 명성황후를 찾아 그녀의 생가로 여행을 떠나보자.

명성황후는 지금의 여주 능현동에서 태어났다. 여주 톨게이트를 지나 이 곳 생가까지는 어렵지 않게 찾아올 수 있다. 명성황후 생가는 기념관과 감고당 등이 함께 자리해 생가 유적지로 관리되고 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먼저 명성황후 생가로 향한다.

명성황후의 생가는 명성황후가 태어나 8살까지 살았던 집이다.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별당, 행랑채로 구성되어있다. 안채를 제외한 사랑채와 별당, 행랑채는 1995년에 복원한 건물이다. 별당은 따로 떨어져 초가지붕으로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안채 마루에 앉아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명성황후 그녀를 잠시 떠올려본다. 처음 명성황후를 알게 된 것은 대부분 을미사변 때문일 것이다. 을미사변으로 인해 명성황후에 대한 이미지는 그저 일본 낭인에 의해 처참히 생을 마감해야 했던 비운의 황후 정도로만 기억되었다.

그러나 명성황후에 대한 이미지는 여러 가지이다. 미국의 어느 외교관은 명성황후를 시대를 앞 선 정치가로 표현하고 있으며, 여행가인 이사벨라 비숍 여사는 뛰어난 지성과 용모를 지닌 여성으로 명성황후를 묘사했다. 선교사 언더우드 부인은 진보적인 정책과 국민 복지를 추구한 황후로, 선교사이자 의사였던 알렌은 아시아의 위대한 인물로 명성황후를 기록했다. 또한 호기심이 많고 부드러움과 강함을 동시에 간직한 여성으로 표현되고 있다. 명성황후를 만난 당시 사람들의 표현을 보고 있자면 명성황후는 당시가 아닌 지금의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훨씬 더 잘 어울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가 안채를 떠나 명성황후탄강구리비로 발길을 돌린다. 이 탄강구리비가 세워진 장소는 명성황후가 어려서 공부를 하던 공부방이 있었던 곳이다. 비 앞면에 ‘명성황후탄강구리(明成皇后誕降舊里)’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광무팔년갑진오월일배수음체경서(光武八年甲辰五月日拜手飮涕敬書)’라고 새겨져 있다. ‘탄강(誕降)’은 왕이나 성인이 세상에 태어났음을 의미하고 ‘구리(舊里)’는 옛 마을이라는 뜻으로 ‘명성황후가 태어나신 옛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뒷면에 새겨진 글씨는 광무 8년, 즉 ‘1904년 오월 어느 날 엎드려 눈물을 머금고 공경히 쓰다’는 뜻이다. 이 글은 정확히 누가 썼는지는 밝혀지진 않았지만 명성황후의 아들 순종이 썼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탄강구리비 옆에는 민유중 선생의 신도비가 자리하고 있다. 민유중 선생은 명성황후의 6대조 할아버지로 숙종 임금의 장인이자 인현왕후의 아버지이다. 신도비에는 민유중 선생의 업적과 찬양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신기한 것은 신도비를 이루고 있는 몸통과 머리이다. 몸통은 거북이 모양이며 머리는 용 모양인데 머리 부분이 민유중 선생의 묘소를 향해 있다.

용머리가 향해있는 민유중 선생의 묘소로 자리를 이동해보자. 민유중 선생의 묘는 부인 이씨와 송씨 두 사람과 함께 합장한 묘로 망주석과 문석인까지 갖추고 있다. 명성황후 생가는 원래 인현왕후의 아버지인 민유중 선생의 묘막(墓幕)으로 지어진 집이었다. 훗날 명성황후의 아버지가 이 집에서 머물게 되면서 명성황후가 태어나게 되었다.

민유중 선생의 묘소를 떠나 명성황후 기념관으로 향한다. 기념관에는 명성황후의 친필 서찰을 비롯해 명성황후와 고종황제 관련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벽면 가득 장식하고 있는 명성황후와 고종황제의 초상화가 눈에 띈다. 명성황후 초상화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맑고 어린 명성황후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기념관 앞에는 명성황후 추모비가 자리하고 있다. 5월엔 명성황후를 찾아 8살의 어린 명성황후와 한 나라의 국모로서의 명성황후를 추모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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