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희의 문화유산여행]화성행궁에서 황제의 고향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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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희의 문화유산여행]화성행궁에서 황제의 고향을 만나다
  • 중앙신문
  • 승인 2017.10.25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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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희 (궁궐문화원장)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은 하나처럼 느껴진다. 정조의 이야기가 짙게 깔린 탓이리라. 지난번 다녀왔던 수원화성에 이어 오늘은 화성행궁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누구에게나 특별한 날이 있듯이, 1804년은 정조에게 있어 아주 특별한 해였다. 자신의 꿈이 실현되는 해로, 정조는 1804년을 선택했다. 왜 1804년이었을까?

1804년은 정조의 아들 순조가 15세가 되는 해로 스스로 국가운영을 해 나갈 수 있는 나이였다. 따라서 정조는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수원화성에서 노년을 보내고자 했다.

정조가 수원화성에서 노년을 살았다면 어디에서 살았을까.

바로 화성행궁이다. 정조는 수원화성을 자신의 새로운 고향으로 생각했다. 이를 알 수 있는 것이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新豊樓)’이다. ‘신풍루’라는 이름은 정조가 직접 지은 것으로 보통 ‘풍(豊)’은 풍년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이곳에서는 ‘황제의 고향’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풍’은 한나라 고조 유방의 고향인 ‘풍패’를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유방이 천하를 통일한 뒤부터는 ‘황제의 고향’이라는 의미로 통용되었다. 즉, 수원화성은 정조의 새로운 고향임을 화성행궁 정문에 표시한 것이다.

정조는 자신의 새로운 고향을 자주 방문했다. 임금이 궁궐 밖 나들이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정조는 유독 궁궐 밖 행차가 많았는데, 24년의 재위기간동안 무려 66회나 했으니 매년 2~3회의 나들이가 있었던 셈이다. 그 중에서 수원화성 방문은 13회나 되었으니 정조의 수원사랑은 지극했다 할 수 있겠다.

정조의 화성행차 중 가장 의미 있는 행차는 두말할 것도 없이 어머니 혜경궁을 모시고 온 을묘년 행차이다. 을묘년(1795년)에 어머니의 회갑을 맞아 한양에서 출발하여 수원화성에 도착,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을 참배하고, 어머니의 회갑잔치를 한 후 다시 한양 궁궐로 돌아가는 8일 간의 일정이다.

이 행차 때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을 모시고 머물던 곳이 화성행궁이다. 화성행궁의 장락당이 혜경궁의 처소였다. 혜경궁의 처소였던 장락당 바로 옆에 화성행궁의 가장 중요한 건물인 봉수당이 자리하고 있다. 봉수당은 을묘년 행차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어머니 혜경궁의 회갑잔치가 열린 곳이다. 어머니의 회갑잔치를 위해 어머니의 친척들을 초대하고 술잔을 올려 축하했다. ‘봉수당’이라는 이름도 어머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정조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봉수당에서 열린 잔치에서는 파격적인 특별행사가 진행되었다. 바로 남녀가 한 무대에서 공연한 것이다. 당시 왕실잔치에서 남녀가 한 무대에 선다는 것은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이날 잔치에서는 맹인 악궁과 여자 무용수가 함께 출연하여 한 무대에 오름으로써 권위와 형식을 뛰어넘었다.

어머니의 회갑을 축하하는 잔치는 백성들과도 함께 했는데 신풍루 앞에서는 수원화성 백성들에게 쌀을 나눠주고 낙남헌에서는 양로잔치도 베풀었다. 어머니의 회갑잔치는 수원화성 백성들과 함께 하는 잔치였던 셈이다.

정조가 이를 기념해 심었다는 느티나무 세 그루도 화성행궁 앞에 여전히 서있다. 은퇴 후 어머니 혜경궁을 모시고 살 꿈에 부풀었던 정조는 불과 4년을 앞두고 세상을 달리한다. 하지만 화성행궁에 가면 지금이라도 정조임금을 만날 수 있다. 바로 화성행궁의 화령전이다.

화령전은 정조의 어진을 모셔놓은 곳이다. 1800년 49살이라는 나이로 정조가 승하하자 신하들은 정조의 어진을 어디에 봉안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에 빠진다. 결국 선택한 곳이 수원화성이었다. 정조가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수원화성을 선택한 것은 당연한 결과이리라.

‘행궁’은 왕이 임시로 머물기 위한 장소이다. 하지만 화성행궁은 은퇴 후 정조가 노년을 보낼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져 궁궐에 비하면 규모는 아주 작지만 배치구조는 궁궐형식을 따르고 있다. 여행하기 좋은 계절, 화성행궁에서 정조의 새로운 고향을 만나 훈훈한 이야기를 가슴에 채워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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