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희의 문화유산여행]백성들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사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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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희의 문화유산여행]백성들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사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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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2.1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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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희 (궁궐문화원장)

| 중앙신문=중앙신문 | 매일같이 백악과 인왕, 사직단을 거쳐 일터로 향한다. 강의실에서는 인왕과 백악, 사직단이 한 눈에 들어온다. 백악에 기대어 앉은 청와대까지 들어오니 세상사 돌아가는 일들이 한눈에 펼쳐지는 셈이다. 가장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는 사직단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사직공원으로 더 알려진 곳이다. 오늘은 종묘와 함께 500년 조선왕조의 근간을 이루었던 서울 사직단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사직단은 땅의 신인 사신(社神)과 곡식신인 직신(稷神), 두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두 신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국가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다. 종묘가 조선왕조의 정체성을 뜻한다면 사직은 국토와 민생을 상징한다. 사직단이 종묘와 다른 점은 일반백성의 참여가 허락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묘가 서울에만 있다면, 사직단은 전국 곳곳에 위치해 있다. 수원화성의 축조과정을 담아낸 ‘화성성역의궤’에도 사직단이 나타나 있다.

서울의 사직단은 태조 4년에 세워졌으나 사직에 재실이 세워진 것은 태종임금 시기이다. 또한 임금이 친히 행차하여 제례를 행한 것도 태종임금 때이다. 태종임금이 이 곳에서 친히 행한 제례는 비가 오게 해달라는 기우제였다. 태종임금은 사직단의 제도도 정비했지만, 사직단을 지방의 군현에도 설치하도록 하였다.

단종을 몰아내고 왕권을 차지한 세조임금도 자신의 위상을 과시하기 위해 친제(親祭)를 거행하였다. 태종임금이 기우제를 지내면서 친제를 행했다면, 세조임금은 사직제를 친제로 행했다.

숙종임금 때는 사직단에서 기곡제를 거행하는데 기곡제는 황제가 정월초에 ‘하늘’에 지내는 제사이다. 따라서 사직단에는 두 신이 아닌 세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 되었다.

정조 임금 때는 사직단에서 지내는 제사가 무려 4번으로 늘어나게 된다. 특히 정조임금은 궁궐과 사직단을 오가는 행차 길을 백성들을 직접 만나는 시간으로 활용함으로써, 백성들의 고충을 듣고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때론 돈화문 앞에서, 때론 종로에서 행차를 멈추고 시민과 노인들을 불러 그들의 고충이 무엇이며, 폐단은 무엇인지를 묻기도 했다. 그리고 지방관의 근무 평가항목에 사직제의 시행여부를 포함시킴으로써 각 고을을 책임지고 있는 지방관들이 백성들의 안녕과 풍요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하였다.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민심’을 가까이 두고자 했던 애민군주 정조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의 국호가 ‘대한제국’으로 바뀌면서 환구단이 신설되고 사직단에서 거행되었던 기곡제는 환구단으로 옮겨가게 된다. 이로 인해 국가제례의 서열이 변화하게 되는데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던 사직제는 환구단, 종묘 다음 순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렇게 밀려난 사직제는 순종황제시기에는 2차례로 제례의 횟수가 줄어들었고 이는 1910년 한일병합과 함께 완전히 폐지하기에 이른다. 더 이상 제례가 행해지지 않는 사직단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주도로, 휴게소 등 사직공원이 조성되고 학교 부지로도 일부가 잘려나가 전체적으로 규모가 축소되었다. 해방 후에도 서울도시계획의 일환으로 정문이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988년 사직대제가 복원이 되어 매년 10월에 거행되고 있다.

많은 임금들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지만 현재의 사직단은 매우 심플한 구조이다. 땅과 곡식을 위한 신이다보니 네모난 단 두 개가 있고, 단을 중심으로 사방으로는 홍살문이 세워져 있다. 동쪽이 사단(社壇), 서쪽이 직단(稷壇)이다. 두 단은 비바람을 막는 지붕하나 없다. 이는 토지신과 곡식신이 자연신이기 때문이다.

사직단은 아직도 공원으로 산책하러 나온 사람들이 더 많은 곳이지만 백성들의 아버지인 국왕은 무엇을 최우선으로 두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곳이다. ‘민심’을 듣기 위해 궁궐 밖 행차를 즐겨했던 애민군주 정조임금처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백성들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해줄 국왕과 신하들은 과연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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