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희의 문화유산여행]조선왕실의 사당, 종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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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희의 문화유산여행]조선왕실의 사당, 종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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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3.12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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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희 (궁궐문화원장)

| 중앙신문=중앙신문 |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처럼 우리의 이름이 죽어서 후세에 전해진다면 가급적 좋은 이름으로 남기를 바랄 것이다. 이는 조선시대 국왕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오늘은 조선시대 27대 왕들의 이름을 만날 수 있는 곳, 종묘로 여행을 떠나보자.

종묘는 조선 왕실의 사당으로 역대 왕과 왕비들의 신위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조선시대 27대 왕들을 우리는 태조, 태종, 세종, 고종 등으로 알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이름들은 승하하시고 나서 종묘에 모시기 위해 지어진 이름이다. 이 이름들을 왕의 이름, 즉 ‘묘호’라고 한다.

묘호는 끝에 ‘조’ 또는 ‘종’이 붙는다. 이러한 조종의 묘호는 당시에는 황제국 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500년의 긴 역사동안 조종의 묘호를 계승해 왔다.

그런데 딱 한 사람, 조종의 묘호에서 제외된 사람이 있다. 바로 조선의 2대왕 정종이다. 정종은 ‘정종’이라는 묘호를 받기까지 3백년이라는 세월을 인내해야 했다. 정종이 처음 종묘에 모셔질 때에는 ‘공정왕’이라는 이름으로 모셔졌다. 공정왕은 중국에서 내린 시호인데, 그 시호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공정왕의 묘호를 제대로 써야 한다는 신하들의 제안도 있었고, 차별대우가 심하다는 후손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공정왕’에게 조종의 묘호는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숙종 대에 와서야 ‘정종’이라는 묘호를 받게 된다. 정종은 묘호를 받기까지 왜 3백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야만 했을까? 이는 바로 태종 이방원의 계략으로 보인다. 묘호는 나라를 건국한 첫 번째 왕의 경우 ‘태조’라는 묘호를 올린다. 그리고 ‘태조’의 정통성을 부여받아 왕위에 오른 두 번째 왕은 ‘태종’이라는 묘호를 받는다. 이는 당시 중국을 중심으로 주변국가에 인식되었던 하나의 원칙이었다. 원칙대로 하자면 ‘정종’은 ‘태종’이라는 묘호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종’이라는 묘호는 3대 왕인 이방원에게 올려졌다. 왕위를 형에게 먼저 양보했던 태종 이방원이었지만 묘호만은 빼앗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왕의 이름, 묘호를 두고 벌였던 정종과 태종 이방원은 지금 영녕전과 정전에 각각 잠들어 계신다. 정종과 태종을 비롯해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 83분의 신위가 모셔져 있는 곳이 바로 정전과 영녕전이다.

정문인 외대문을 지나 삼도를 따라 10여분정도 걷다보면 종묘의 메인 건물인 정전을 만나게 된다. 정전으로 들어가는 문은 모두 세 개인데 동문과 남문, 서문이다. 남문은 조상신이 들어가는 문으로 신문이라고도 한다. 동문은 종묘제례 시 왕과 왕세자를 비롯한 제관들이 들어가는 문이며, 서쪽에 있는 서문은 악공과 춤을 추는 무희들이 출입하는 문이다.

정전은 단층으로 된 건물로 19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종묘정전이 처음부터 이렇게 19칸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7칸으로 지어졌다가 다시 증축되어 11칸이었던 종묘정전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모두 소실되고 만다.

전쟁이 끝난 후 광해군은 어려운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11칸짜리 종묘를 짓게 되지만 정작 본인은 입성하지 못하는 아픔을 겪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마주하는 정전은 광해군 시기에 지어진 11칸에다가 영조와 헌종 때 각각 4칸씩 증축된 19칸짜리 건물이다.

세 번에 걸쳐서 증축이 되었지만 그 이음새는 매우 탁월하다. 이러한 건축물의 우수성은 종묘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게 한 이유 중 하나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묘는 매년 5월 첫 번째 일요일에 종묘대제가 공개적으로 거행된다. 수많은 내외국인 관광객들이 자리한 가운데 거행되는 종묘대제는 세계문화유산에서 세계무형유산 인 종묘제례악이 함께 울려 퍼지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다. 봄의 왈츠가 시작된 지금 종묘를 찾아, 우리에게 남겨질 이름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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