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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희의 문화유산여행]운현궁에서 만난 명성황후의 결혼식
  • 중앙신문
  • 승인 2017.06.14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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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희 (궁궐문화원 원장)

얼마 전 원빈과 이나영의 밀밭 결혼식이 화제였다. 이를 기점으로 소박하지만 의미 있는 결혼식을 올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스몰웨딩’ 바람이다. ‘스몰웨딩’에 이어 ‘셀프웨딩’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웨딩’에 있어서 사회 저명인사들의 ‘모범’이 더할 나위 없이 필요한 시기인 듯싶다.

하지만 오늘 여행할 곳은 ‘스몰웨딩’과는 거리가 한 참 먼 ‘조선왕실의 결혼식’이다. 오늘은 여주에서 나고 자란 명성황후의 결혼식이 거행되었던 운현궁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여주에서 나고 자란 명성황후는 조선 최고의 가문으로 시집을 간다. 그녀의 나이 16세, 신랑 고종황제의 나이는 15세로 요즘으로 치면 연하남과 연상녀 커플이다. 고종황제는 12살의 나이로 등극을 하지만 총각 임금이었다. 왕으로 등극하고 3년이 지나서 드디어 장가를 들게 되었다.

고종황제가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왕비를 선발해야만 한다. 이를 ‘간택’이라고 하고, 세 번의 절차에 걸쳐 진행되어 ‘삼간택’이라고 한다. 명성황후의 삼간택은 창덕궁 중희당에서 이루어졌다. 초간택에서는 5명의 후보가 선발되었고, 4일 뒤에 열린 재간택 절차에서는 3명의 후보로 압축되었다. 최종적으로 우리가 잘 아는 명성황후로 결정이 되었다.
최종 선발된 명성황후는 집으로 귀가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별궁으로 향한다. 별궁에서 왕비가 되기 위한 왕비 수업을 받게 되는데, 명성황후가 왕비 수업을 받았던 별궁이 바로 운현궁이다.

명성황후는 창덕궁 중희당에서 최종 간택이 끝난 후 운현궁으로 출발했다. 운현궁에 도착한 명성황후는 노락당에서 머물며 본격적인 왕비 수업을 받았다. 왕비 수업을 마친 명성황후는 머물던 노락당에서 결혼식을 거행하게 된다.
왕실의 결혼식은 일반적으로 6개의 절차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가 ‘납채’다. 납채는 명성황후가 머물고 있는 별궁으로 궁궐에서 사자를 보내 청혼을 하는 의식이다. 두 번째 절차는 ‘납징’이다. 납징은 혼인이 이루어지게 된 징표로 궁궐에서 별궁으로 예물을 보내는 의식이다. 세 번째 절차인 ‘고기’는 길일을 택해 결혼식 날을 정해서 별궁에 알려주는 의식이다. 네 번째 절차는 책비로, 책비는 왕비로 책봉받는 의식이다. 마지막으로 친영례와 동뢰연이 행해지면서 결혼식 절차는 마무리된다.

이 여섯 가지 절차가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결혼식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 해 1월 1일, 전국에 금혼령을 내리고, 1월 16일에는 운현궁을 별궁으로 지정을 한다.

결혼식 절차 중 가장 하이라이트는 ‘친영례’이다. ‘친영례’는 고종황제가 친히 별궁인 운현궁에 와서 결혼식을 올리고 다시 궁궐로 돌아오는 의식이다. 노락당 마당에서 명성황후와 고종황제는 결혼식을 거행한다. 명성황후와 고종황제의 결혼기념일은 3월 21일인 셈이다.
결혼식 때는 최고 의복인 구장복과 적의를 입는다. 왕이 입는 구장복은 9가지의 문양이 새겨진 의복이며, 왕비가 입는 적의는 꿩 문양이 새겨져 있다. 왕의 최고 의복인 구장복과 왕비의 적의는 운현궁 유물 전시관에 전시되어있다.

결혼식을 올린 고종황제는 창덕궁 중희당에서 ‘동뢰연’을 행한다. 동뢰연은 고종황제와 명성황후가 서로 절을 하고 술과 찬을 나누며 첫날밤을 치르는 의식이다.
고종황제는 운현궁을 방문하면 결혼식을 거행했던 노락당에서 주로 머물렀다. 그래서인지 노락당의 대들보에는 용이 그려져 있다. 안채였던 노락당을 고종황제가 쓰게 되면서 운현궁에는 새로운 안채가 필요해졌다. 운현궁의 새로운 안채는 이로당이다. 이로당은 두 노인을 위한 집이라는 의미이다. 안채에는 석빙고를 비롯해 무승대, 경송비 등을 만날 수 있다.

고종황제는 명성황후와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서 얼마를 사용했을까? 조선왕실의 결혼식 비용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대략 6~7억 정도 소요되었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금과 비교해도 ‘초호화판 결혼식’이라는 꼬리표를 떼기는 어려워 보인다.
화려한 결혼식을 올리고 조선 최고의 가문으로 시집을 갔던 연상녀 명성황후는 연하남 고종황제와 어떤 삶을 그리고 어떤 꿈을 꾸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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