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아 양심아
상태바
양심아 양심아
  • 중앙신문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18.07.03 17:3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국(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가짜 과속단속 카메라가 없어졌다.

출퇴근길, 도로에 단속 카메라를 탑재하던 철골구조물이 거짓과 허위로 점철된 일그러진 과거의 잔상으로 남았다. 볼 때마다 울화가 끓는 건 거금을 들여 가짜 측정기를 세웠다 쉽게 허무는 몰염치다.

단속 카메라의 대부분이 작동되지 않거나 가짜가 많다는 말을 들었지만 속아 온 날들이 억울하다. 작년가을, 카메라 앞 5,600m에서부터 60Km 속도로 고정시켜 달리다, 지나치면서 가속 페달을 밟아 또 다른 카메라에 찍혀 범칙금을 낸 적이 있다.

과태료를 물면서도 몰래 카메라엔 걸렸지만 세워진 단속 카메라 앞에선 정직했노라 자위했건만, 그 카메라마저 가짜였다니 체면이 말씀이 아니다.

가짜 단속 카메라 앞에 양심을 자랑한 것도 속상한데, 몰래 카메라까지 양심의 이면을 들춰냈으니 중인환시 속 발가벗긴 느낌이다.

양심, 정의, 의리에 회의를 느낀 적이 있다. 친목회 총무를 보는데, 매년 가을이면 대 운동회 때마다 체육복을 한 벌씩 입힌다.

회원이 많아 100여 벌을 웃도니 스포츠 웨어 상인들이 눈독을 들인다. 우리 동네에도 스포츠 웨어 상점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집안 동생이라 도움을 주고 싶지만 언제나 외면당하고 약삭빠른 나머지 상점이 독점 한다.

총무를 맡던 해, 동생과 영악한 상점 주인을 불러 반반씩 나눠주고 이후로도 똑같이 나누어 주문 받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발바닥 넓고 수완 좋은 영민한 상점이 내가 그 자리를 뜨자마자 독점했다. 내 생각이 모자랐는지, 동생의 장사 수완이 젬병인지. 요는 양심인지 기급인지 따질 것이 아니라 몽땅 동생에게 넘겨주었어야 우회되고 나발이고 없었을 텐데.

요즘 집권당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오늘도 색깔론이니 연정이니 아우성인데, 꼬장꼬장한 노인 한 분나서서 그래도 구태의연하게 돈 받아먹기에 혈안이었던 ○○당이 집권했더라면 더 큰 부정부패의 늪에서 허덕이지 않겠느냐는 한 마디에 숙연해졌다.

그러나 큰돈 먹는 높은 분들의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온 천하에 까발려 필부필부는 물론 어린애들까지 알아 버렸으니 소시민에 남아 있던 양심의 싹마저 뭉개버린 것 아니냐. 그들이 덜 먹었을 뿐이지 순수한 사람들은 아니지 않느냐 하는 젊은 친구 반박에 노인장 머리 끄덕이며 그럴 수도 있군 한다.

이 추악한 세상에서 기러기 아빠가 사망한 지 1주일 만에 발견되고, 고학력 젊은이들이 직장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며 주체하지 못하는 돈은 해외로 유출되고 중국산 김치와 생선으로 인한 외교 마찰…. 올곧은 정책 하나 뽑아들어 기똥차게 정치를 했더라면 차떼기 당으로 만신창이 된 야당으로 인한 반대급부 ― 참신성으로 국민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을 텐데.

그래도 이 정부가 처음 출범했을 때, 디지털이니 컴퓨터, 인터넷으로 세상이 투명해질 것이란 기대가 컸다. 대통령의 아들이 정치에 끼어들어 농락하거나 고관대작이 치사하게 땅이나 집을 사서 돈 벌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심은 디지털을 능멸하는지 검사의 아들 시험 답안지 대필해 주는 교사가 생겨나고, 장·차관과 대통령 비서관이 땅을 사서 지을 농사는 짓지 않고 차익을 노려 몇 년째 방치하고 빨갱인지 회색분자인지 분간이 안 가는 사람들과 과거를 들쑤시다 뒤죽박죽인 현실 앞에 법마저 빛을 잃었다.

드러나지 않은 죄로 도태되지 않은 인간들을 보이지 않는 죄에 가책은커녕 드러날 때까지 이전투구하는 것은 아닌지. 나 또한 돈을 위하여 드러난 죄 없음에 오늘이 편하니 양심은 뒷전이다.

다시 카메라 구조물 앞에 선다. 거짓과 기만, 허위고발과 위협의 상징물―가짜 카메라의 철거가 양심 쪽으로 한 발 전진했으니 축하해야 할 일이다.

양심아 양심아 너 어디 가느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단독] 3년차 의정부시청 여성 공무원 숨진 채 발견
  • 박정 후보 유세장에 배우 유동근氏 지원...‘몰빵’으로 꼭 3선에 당선시켜 달라 ‘간청’
  • 감사원 감사 유보, 3년 만에 김포한강시네폴리스 산단 공급
  • 김포시청 공직자 또 숨져
  • [오늘 날씨] 경기·인천(20일, 토)...낮부터 밤 사이 ‘비’
  • [오늘 날씨] 경기·인천(24일, 수)...돌풍·천둥·번개 동반 비, 최대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