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 에세이]화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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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에세이]화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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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1.07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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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수필가,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화석 전시장 앞, 커다란 퇴적암에 박힌 3마리의 갑오징어와 40여 개의 앵무조개는 화석의 압권이다. 4억 년 전 지구에 생존해 꿈틀거리다 사라진 생명체들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니.

자신을 남기고자 하는 욕망은 생명체의 본능이다. 따라서 수많은 종류의 생물들이 종족 번식의 방법으로 자손을 퍼뜨려 지구를 지배하다 사라지고, 새로운 종류의 생명체가 창궐하곤 한다. 시조새와 삼엽충, 공룡….

이제 지구는 인류가 지배한다. 서기 원년에 3억이던 세계 인구가 농업의 발전과 의학의 발달로 폭발적인 증가로 60억으로 늘었으며, 종족 번식 외에도 복제라는 방법까지 개발하여, 돌리는 양을 복사하는가 하면, 우리나라에서도 한우(韓牛)를 복사했다고 떠들썩하다. 더 나아가 인간까지 복사할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라오가 죽으면 영생불멸을 기원하며 미라를 만들기도 했는데,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지에는 목욕하는 두 사람의 미라가 있다. 하나는 등을 밀고 하나는 등을 내맡기고. 목욕중인 석고상이려니 했는데, 깨어진 뒤통수에 사람의 골수(骨髓)가 보이지 않는가.

갑자기 폭발한 베수비오 화산재로 폼페이 시가지는 순식간에 사라지는데, 목욕탕도 화산재에 뒤덮이고 목욕하던 사람들도 묻혀 버린다. 그리고 수천 년이 지나 인간 화석으로 변해 발굴된 것이다.

올 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묘를 이장(移葬)했다. 둘째는 이혼으로, 막내는 관절염으로 10여 년 간 고생을 해서인지, 묘자리가 좋지 않다고 조르니 장손된 도리로 어쩔 수 없이 이장을 했다.

할머니의 묘를 파니, 관은 온통 흙으로 채워져 있다. 우기(雨期)에 물이 고였다는 증거다. 아버지의 묘를 여니 망사(網紗)가 유골을 휘감고 있다. 지관의 말을 믿지도 않았지만 “어떻습니까. 이장하자는 의지가 믿어지지요.” 이장을 결행하기까지 언젠가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지, 조상님의 시신을 정면으로 대할 용기가 없어,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었다.

새 자리에 모시기 전에, 우리 형제들은 유골을 소주(燒酒)로 닦았다. 잡물(雜物)을 씻어내는 데는 물보다 휘발성이 강한 소주가 좋다고 한다.

조상을 잘못 모신 죄의식도,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우리 형제들과 어린애들로 이어지는 유대감도 접어둔 채 생각 없이 닦아냈다. 아니, 나만 그랬는지 모른다. 종손으로 이룬 것도 없으며 조상을 위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는 슬픔이 밀려와, 줄곧 술만 퍼마셨기 때문일까.

이장한 지 한 달이 되는 날, 어머니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커다란 바다를 건너는 꿈을 꾸시고, 수시로 맑은 물을 보신다고 한다. 지관에게 전하니 좋은 꿈이란다.

자손들이 넓은 세상으로 진출할 것이며, 맑은 물은 생명의 근원이니 얼마나 좋으냐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좋은 자리로 모신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볍다.

그 후 막내 동생이 중국으로 유학을 가고, 둘째가 태국 현장 소장으로 떠났으니 어머니의 꿈이 맞는 것도 같다.

아버지를 새 자리로 모시던 날, 유골을 정성스럽게 닦는다고 닦았는데 아버지의 성에 차셨는지. 아버지의 두개골은 생물 도본(圖本)이나 TV에서 보던 것과 별 차이 없다. 땅 속 깊이, 아주 깊이 모시는 정성으로 흙 한 삽 뿌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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