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 에세이]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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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에세이]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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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0.0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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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계장일 때와 직원일 때가 달라요.” 아끼는 후배를 추천하니 정중한 거절이다. 말인즉 윗사람이 시키면 안 되는 일이라도 해보다가, 그래도 안 되면 이유를 달아 거부할 것이지 처음부터 사사건건 안 된다는 것이다.

개그맨 전유성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는 읽은 지 20여 년이 되었지만 지금도 생생하다.

유랑극단 시절, 공무원에 발을 디딘 연예인이 있었다. 관청은 예나 지금이나 자기의 일에만 집착하는 버릇이 있다. 극단에서 하듯 궂은 일 마다 않고 일찍 출근해 청소는 물론, 유리창이 깨어지면 갈아 끼우고, 책상다리가 부러지면 고치고, 서랍이 고장나면 수리하고, 허접스러운 일들을 하다 보니 한 달도 못 가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 찾느니 이 사람뿐이다.

젊어서, 따지기를 좋아해 원칙에 어긋나거나 정도가 아니면 반기를 들고 입바른 소리만 했으니 누가 좋아할까. 아니나 다를까, 서열 맨 꼴찌로 진급한다.

다스리는 입장이 되어 졸병시절을 반추하며 바쁜 직원 내근을 시키고 힘든 외근 자청해 산이고 들이고 뛰어다니며, 게으른 사람들의 몫까지 대신한다. 뛰다보니 요직으로 옮겨지고,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하다 지치면 한직으로 바뀐다. 한직에선 못 다 본 책을 한꺼번에 서너 권씩 읽어야 하고, 컴퓨터를 두드리며 모자라는 부분을 충전해야 한다.

참이 되면 윗사람과의 대화로 끈을 잇든지, 편함에 길들여졌는지 집중력을 잃는 사람은 안타깝다.

장교 할 일 따로 있고 졸병 할 일 따로 있다고 하지만, 제대로 된 사람은 개의치 않는다. 시골 초등학교 교장을 찾았더니, 교장실로 안내하고 커피를 내어 주는데 늙은 남자 교감 선생이다. 얼마 후 근황을 물으니 교장이 되었다며, 간사한 사람이라고 사족을 붙이는데, 사족 붙이는 쪽이 더 졸렬해 보이니 어인 심사일까.

요직에 앉아 진급하고 싶지만, 인간사 쉽게 되지 않는 법. 한직에서도 찾다 보면 눈에 띄고, 요직에서도 요령만 부리면 눈 밖에 난다. 일찍 출근하는 사람이 지각하면 적발되고, 놀다가도 높은 분 눈에 맞추면 부각되는 것을 일시적 행불행이다.

카인의 돌에 맞아 죽은 아벨, 아버지 승전의 대가로 번제물이 된 입다의 딸, 죽은 욥의 아내 ― 선한 자의 죽음이 수수께끼로 혼란스럽다. 인간사 권선징악으로 귀결되는 것도 아니고, 인생이란 결과가 있어야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사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일 뿐.

선배가 이끈다. 강한 성격에 인상마저 험해 직원들이 거리를 두는 것도 모르고, 잘못에는 눈물이 나도록 나무라니, “적을 만들면 안돼요. 직원들 감싸주어요.” 사무관이 될 순서이니 주의를 기울이라는 말로 듣고 참고 견뎌 진급하고 나서 생각하니 인생사는 방법이다.

열심히 해도 뒤처지고, 요령만 부려도 진급을 한다. 뒤집어보면 자기 일은 칼같이 해도 대인관계를 등한히 한 잘못이고, 요령으로 진급을 했다지만, 과오 없었으니 대인관계로 점수를 따 진급한 것이라 생각해야 옳을 것이다.

극진히 모셨지만 출세의 다리가 되어 주지 않아 야속한 어른. 돌이켜 생각하니 그 분 따르다 인생에 전력투구하는 법을 배웠다. 징검다리 안 내어 준다고 보챘는데 이미 돌다리에 서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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