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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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물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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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7.24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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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수필가,칼럼위원)

아내가 결혼할 때 가지고 온 경대가 낡아서 버리고, 경대에 붙어 있던 대형 거울을 10여 년 쓰다보니 칙칙하게 변해, 내다 버렸다.

경대가 없어지자 장식장 겸 화장대를 들여놓았다. 화장대를 따라온 거울은 반원형의 상반신용이다.

대형 거울을 사용하다 작은 것을 들여다보기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큰 거울에 배인 습관이 작은 거울 앞에서 불만만 쌓일 수밖에. 그 때마다 아내에게 대형거울을 장만하자고 하지만 무슨 생각인지, 대답만 하고 사올 생각을 않는다.

큰 거울을 찾는 것은 군대생활을 할 때, 공군 규정에 바지 길이를 복숭아 뼈에 맞도록 입게 되어 있어, 6년 내낸 그렇게 입었기 때문이다.

제대 후에도 꼭 그렇게 입는 줄로 알았는데, 세월이 변해 젊은 애들이 바지를 질질 끌고 다니더니, 이젠 어른도 구두굽이 보이지 않게 입는 게 유행이다. 아내와 아이들이 짧게 입으면 촌스럽다고 잔소리를 해, 주문대로 길게 입으면 바지가 밟혀 신경이 여간 쓰이는 게 아니다. 대형 거울을 들여다보고 밟히지 않을 만큼만 입으려 해도 거울이 없으니.

대형 거울만 보아도 부럽다. 동생이 새 아파트를 장만해 찾아가니, 눈에 띄는 것이 거울이다. 화장실에도 거실에도, 아이들 방에도, 현관에도, 한 개 떼어 오고 싶다.

거울을 볼 때마다 잔소리하는 것도 지쳤다. 며칠 전 아내가 친구 회사에서 쓸모없는 거울이라 버린다는 것을 장정 2명을 붙여 화물차에 싣고 왔다. 덩치만 컸지 구형이라 마음에 들지 않고, 거울에 비해 방이 좁아 어울리지도 않을 뿐더러, 못도 제대로 박질 못해 불안하기 짝이 없다.

20년 전 회사 개업식 때, 선물로 들어온 벽시계가 많아 처치 곤란인 것을 상사들이 굳이 가져가라 떠 맡겨, 대청마루에 걸어 놓은 적이 있다. 어울리긴 하지만 어딘가 꺼림칙하고 불안하기만 하다. 직원들이 온다면 시계가 걱정이다. 생각다 못해 고물상에 버릴까 생각해 보았지만 값나가는 물건에, 아직 쓸만한 것을 버린다는 게 더 큰 죄를 짓는 것 같아 그도 못할 짓이다. 인적 드문 계곡에라도 버릴까 차에 싣고 다니다, 마침 고물하치장 근처에 협력 회사가 있어, 벽에 걸고 왔다.

격에 맞지 않는 것은 어울리지도 않고 마음에 풍파만 일으킨다. 애물단지가 사라지니 후련하다.

거울이 애물단지가 됐다. 누가 보아도 어울리지 않는다. 새 아파트를 산 제수씨가 보면 깔깔거리고 웃을 일이다.

거울 값이 도대체 얼마기에. 샤프하고 세련된 디자인이 얼마든지 있건만. 사다 걸어. 이건 어쩌고. 버리자니 아깝고. 걸어두자니 그렇고.

새 거울을 걸면, 애물단지는 깨어 없애지도 못할 것이며, 누굴 주자니 가져갈 사람도 없어. 집안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몇 년을 버틸 것이다. 거울을 보낸 친구가 온다면, 말은 안 해도 한 쪽 구석에 쳐 박혀 천대받는 것을 보고 얼마나 서운해할까. 옮겨올 때 두 장정과 힘겹게 집까지 싣고 온 후배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버리기도 어렵다.

작은 거울에 익숙해졌으니 큰 거울을 찾지도 않고, 긴 바지에 익숙해졌으니 하반신 매무새를 보아야 할 이유도 없다.

애물단지가 시계와 거울 뿐이랴. 인간이 애물단지이면 속수무책이다.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는다. 능력 모자라는 사람이 나가 주었으면 좋으련만, 인정하려 들지 않고, 늙은이들이 나가 주기를 바라는데 노하우를 핑계로 젊은이들의 경망을 탓한다. 징계 맞고 불명예스런 사람이 나가주기를 바라지만 긍정하지 않는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명퇴한 선배들을 생각하면 슬프다. 그래도 들어 올 사람 있고, 나갈 사람은 있다. 눈물자국도 말랐다. 다음 차례 점치며, 애물단지를 만든다.

혹시 내가 애물단지는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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