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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8.2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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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수필가,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할머니가 워드로 수필을 쓰고 자동차 운전을 한다면 특별한 일이다.

60대 노인들이 컴퓨터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이유는 생필품을 스스로 만들어 고치면서 살아온 손재주가 좋은 사람들이라, 작동원리나 부품 하나하나, 조작 방법까지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컴퓨터 기술을 모두 마스터해야만 칠 수 있다는 고정관념으로 겁을 먹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 기술까지는 아니라도 꼭 필요한 몇 가지 기능만 익혀도 범상치 않은 노인으로 존경받는다.

평생 남편이 시장을 보아다 주는 찬거리로 음식을 장만하던 여인이 부부동반 모임에서 말로만 듣던 냉장고가 남의 집엔 모두 있는데 자기 집엔 없다는 사실에 놀라 몸져누운 사건은 20여 년 전 일이다. 부엌이 안방으로, 화장실이 윗방으로 들어오는 초고속 생활패턴이 바뀌는 1960년대부터 1970대 어느 시점에서 기술에 삶을 위탁한다.

도구는 전문화되어 기술자가 아니면 손댈 수 없는 세상이지만 현대와 같이 편리한 시절이 있었던가. 그러나 인간에게 불을 전수한 죄로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프로메테우스처럼 기술은 대가를 치른다. 해방감을 만끽하게 하는 자동차는 매연과 공해, 치명적 사고를 유발하고, 지구 곳곳을 샅샅이 비추며 통치 방법을 일반수준으로 끌어내려 잘못된 관행을 씻어내는 TV와 컴퓨터, 인터넷은 향락과 안일, 저질문화를 양산하며 일을 덜어 주기는커녕 더욱 늘려 새로운 감독자로 군림한다.

주 5일 근무제는 2개 이상의 직업을 강요하여, 고급 기능인들에겐 다종(多種) 직업인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직업이 없어지는 불운을 면치 못하게 할 것이다. 60이 넘어 퇴직하던 일꾼들이 40대에 퇴출당하는 시대. ―카프카가 ‘변신’에서 가정을 이끌어 가던 주인공이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해 죽어 가는 과정을 쓴 것이 바로 오늘을 예감하고 쓴 글은 아닐 런지….

문명의 발달로 사람이 움직이지 않아도 살아지는 세상에서 비만은 절대 악이 되었다. 시도 때도 없이 공원에서 달리는 외국인들을 보고 별 희한한 놈들 다 보겠다던 우리도 어느 새 새벽 공기를 가르며 달리는 게 보편화되었다. 가까스로 컴퓨터를 장만하고 여유를 부리다가도, 몇 년 못 가 새로운 기종을 구입한다. AT에서 펜티엄까지. 2~30만원이면 족하련만 값은 내릴 줄 모르고, 기계마다 업그레이드해야 되니 소비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도 바쁘다.

인터넷이 쏟아놓은 글들을 읽고 나면 하루 종일 쓰레기 더미 뒤적인 기분으로 칼날 같던 판단력마저 무뎌지고, 미분화되는 전문가 동호회는 인류 공통 관심사를 조각내 사회에 파편화한다.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오면서,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넌다. 악마와 거래하는 괴테의 파우스트와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는 신을 외면하고 과학과 손잡는 순간을 예견한 것 같다.

새로운 것은 현재를 파괴하는 것. 미래 ― 새로움을 찾는 끊임없는 파괴는 진보라는 이름으로 치장한 악마와의 계약이행일지도 모른다.

데이비드 셍크는 ‘데이터 스모그’에서 정보를 여과할 것, 직접 편집할 것, 단순화할 것을 강조하고, 싫증난 인간들은 교회를 다시 찾고, 2분법적 물질문명의 팽배로 등한시했던 조화와 융합을 찾아 동양학을 정독하기 시작한다.

고층건물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은 장관이다. 하늘의 별을 따다 지상에 꽃아 놓은 듯하다. 수많은 아파트 군은 은하이며,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투영된 도시는 천국인 양 황홀하다. 성냥갑만한 자동차들이 다리를 건너, 고가도로를 돌아, 인터체인지에서 사방으로 흩어진다. 누가 벌과 개미의 질서를 자랑하랴. 헤드라이트와 미등을 깜빡이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밤새워 달리는 자동차 군단을 보면 기술 유토피아 만세다.

“우리는 기술주의자들이 인류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삶을 편리하게 만들고 있다는 매우 그럴 듯한 이유로 그들의 손에 우리의 삶을 맡기고 있다. 궁극적으로 그들이 우리를 실패로 몰고 갈 것인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백과사전 브래태니커 편집장 챨스 반 도렌이 ‘지식의 역사’에서 한 말이다.

믿어보자. 그러나 문명의 이기에 몰입(沒入)만 할 것이 아니라 한없이 축소되는 자기 시간의 확보가 더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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