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㉚ 화평동 인천의 대표식품 냉면집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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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㉚ 화평동 인천의 대표식품 냉면집 골목
  • 남용우 선임기자  nyw18@naver.com
  • 승인 2023.08.16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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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용우 선임기자
남용우 선임기자

| 중앙신문=남용우 선임기자 | 화평동(化平洞)에는 값싸고 양 많기로 소문난 냉면집 골목이 있다. 지금은 철도변가의 도로를 확장해 왕복 2차선의 버젓한 도로가 됐지만, 1900년대까지 이곳은 골목길이었다. 화평동은 구한말까지 인근의 화수동과 함께 인천부 다소면 고잔리에 속해 있던 마을이다. 전국적으로 행정구역 개편이 있었던 1914년에는 인근 화촌동의 일부가 합해지면서 화평리가 됐다. 그 후 화평리는 광복 직후인 1946년 ‘리’가 ‘동’으로 바뀌면서 화평동이 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화평동에는 일제강점기에 가도라는 이름의 일본인이 운영하는 전당포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화평리 조막손’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는데, 이는 그의 왼손에 손가락이 모두 없고, 오른손에도 손가락이 두 개만 있어서 붙은 별명이다. 손가락이 그렇게 된 것은 당시 만국공원(지금의 자유공원)이 있던 응봉산의 오대포에서 당한 사고 때문이다.

오대포는 1908년 무렵부터 응봉산의 산 허리에 낡은 대포를 하나 걸어놓고, 매일 낮 12시가 되면 실탄 없이 화약으로 소리만 크게 나도록 한방씩 쏘아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던 곳이다. 가도는 이곳 오대포에서 대포를 쏘는 오포수였는데, 한 번은 이 대포에 이상이 생겨 줄을 잡아당겨도 쏘아지질 않았다. 빨리 시간을 알려야 했던 그는 급한 나머지 꼬챙이로 대포 구멍을 쑤셔보기도 하고, 대포를 두들겨 보기도 했는데 그때 갑자기 대포가 터져 손을 온통 다치게 된 것이다.

1964년 확장된 화평교 전경. (사진제겅= 동구청)
1964년 확장된 화평교 전경. (사진제공= 동구청)

그 뒤 가도는 정부로부터 받은 보상금으로 화평동에 전당포를 차려 놓고, 한국인을 상대로 고리대금업을 했다. 당시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시내 곳곳의 전당포가 그랬듯이 돈을 미끼로 가난하고 순박했던 우리 영세민들의 집이나 땅을 많이 빼앗아 원성을 샀던 것으로 전해온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화평동은 값싸고 양 많기로 소문난 냉면으로 유명하다. 현재 10여 곳의 냉면집이 들어서 있지만 2000년 초반에 3~40곳의 냉면집이 들어서 성업을 이루었다. 인천의 특색골목으로 지정받은 이곳 냉면집들은 서로 자기네가 원조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냉면집) 사이에 나설 일은 아니지만, 1970년대 초 필자가 이곳을 찾을 때는 철로다리 밑을 지나 화평병원 옆에 조그맣게 차려놓은 냉면집이 있었다. 이 집 할머니는 세숫대야 같은 냉면 그릇에 무한정 퍼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무한정식 ‘리필’인 것이다.

특히, 이곳은 판자촌 동네로 노무자들이 많아 먹는 양도 만만치 않았다. 이웃집에서 냉면을 배달해 먹으면 둘이 먹어도 양이 넉넉했다. 지금 각 지역마다 ‘화평동 냉면’ 또는 ‘세숫대야 냉면’이라는 간판이 붙은 것은 다 이곳을 모방해 만든 것이다.

냉면은 원래 북한 음식으로 유명하다. 냉면이 인천에 뿌리내린 것은 1920년대 지금의 중구 용동 마루턱에 ‘평양관’이라는 음식점이 자리를 잡으면서부터라고 전해진다. 또 그 근처에 있던 ‘경인면옥’과 금곡동의 ‘복원루’, 답동성당 옆에 있던 ‘사정옥’도 유명했다. 당시 인천은 중국인 마을의 청요리와 함께 이들 냉면의 맛으로 서울까지 알려져 그 맛을 보러 원정을 오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서울 명동에서 장거리 전화로 인천의 냉면을 주문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였다니 상상하기조차도 힘들다. 고일 선생의 ‘인천석금’에 있는 이런 내용이 당시 상황을 잘 보여준다. ‘사정옥’과 ‘평양관’ 등에는 손님보다 오히려 주문배달이 많았다고 한다.

2000년대 화평동냉면거리. (사진제공= 동구청)
2000년대 화평동냉면거리. (사진제공= 동구청)

서울 등 멀리서 주문하면 자전거에 냉면 목판을 싣고 배달한 시절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냉면집 간 경쟁으로 이어져 마치 배달원들이 자전거 경주대회를 여는 듯했다.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어떤 때는 기차를 이용한 대량 주문배달도 함께 이뤄졌다고 한다. 냉면을 먹을 때 사람들은 겨자와 계란, 그리고 식초를 넣어 무김치와 곁들여 먹는데, 이는 선조 때부터 내려오는 방식으로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를 엿보게 한다.

겨자는 열이 많아 찬 음식이 들어간 속을 편하게 해 주며 계란은 설사를 방지해 주는 효과가 있다. 또 식초는 숙취에 좋아 전날 과음한 사람들에게 더없이 좋다고 한다. 또 무는 냉면 원료인 메밀에는 살리실아민과 벤질아민이라는 유해성분이 있어 사람의 얼굴을 붓게 하는 특성이 있는데 무가 함유한 비타민C와 효소가 이런 성분을 해독해 준다.

이 같이 조상님들의 지혜가 담긴 인천 냉면의 역사가 화평동 냉면골목으로 이어지며, 내 고장 대표 식품으로 떠올랐다. 특히 백령면옥, 사곶냉면, 황해냉면 등 메밀로 만드는 냉면집이 타 지역에 비해 인천에 유독 많다. 이들 냉면집 대부분이 여름철에는 어김없이 입구에 길게 늘어서 대기하는 손님들을 볼 수가 있다. 어름에 가득 찬 시원한 냉면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식당에서 나누어진 대기표를 받고 기다리는 것이다. 올해는 폭염이 2주가 넘게 이어지며 메밀 냉면집의 인기를 더욱 실감 나게 보여준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남용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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