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㉙ 바닷물 넘실대던 곳마을 화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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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㉙ 바닷물 넘실대던 곳마을 화수동
  • 남용우 선임기자  nyw18@naver.com
  • 승인 2023.08.0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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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용우 선임기자
남용우 선임기자

| 중앙신문=남용우 선임기자 | 화수동(化水洞)은 구한말 인천부 다소면 고잔리에 속해있던 작은 마을이다. 1914년 인천부가 부제를 시행하면서 화동과 수유동을 합쳐 화수정이라 불리었으며 광복 뒤인 1946년 그대로 화수동이 됐다. 수유동은 한자로 풀이하면 물이 넘친다는 뜻으로 오래전 바닷물이 이곳까지 넘쳐 들어와 생긴 이름이다.

화수동 화수부두는 연안부두나 인천항에 가려 부두와 어항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이 줄어들면서 사양길에 접어든 지 오래되었지만, 이곳에 대한 인천시민들의 추억은 각별하다. 화수포구 끝자락에 자리 잡은 S식당은 화수부두의 자존심으로 40년이 넘도록 한자리에서 장사를 하며 인천의 대표 식당임을 내세우고 있다.

1980년대 화수어항.
1980년대 화수어항. (사진제공=동구청)

유독 서울 손님이 많이 찾는 이곳 식당은 장맛으로 유명하다. 4~5년 넘게 숙성시킨 된장 맛은 이곳을 찾는 손님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발길을 이어주고 있다. 시어머니한테 전수받은 며느리(필자의 친구)2대째 장사를 이어오며 맛을 이어가고 있다. 된장을 풀어 끓인 서대와 복 찌게 그리고 민어 매운탕, 3가지 메뉴가 전부인 이 식당의 손님 층은 50대 이상으로 교통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멀리서 맛을 찾아오는 것이다.

서울서 자주 온다는 단골손님이 하루는 돈을 얼마든지 줄 터이니 된장을 팔라고 졸랐으나 끝내 거절을 했다고 한다. 식당 2층 장독대에 올라가면 된장을 담근 항아리 10여 개가 즐비하게 늘어서 위용을 자랑하는 것도 이 집 만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화도고개. 우뚝 솟은 건물이 화평의원으로 당시 화수동에서 제일 큰 건물이었다.
화도고개. 우뚝 솟은 건물이 화평의원으로 당시 화수동에서 제일 큰 건물이었다. (사진제공=동구청)

6·25 동란 때 북에서 월남한 실향민들이 흘러들어 갯가에 생존을 의탁하면서 번창한 이곳에는 고성 이씨와 소성 이씨가 여러 대에 걸쳐 살아가고 있다. 조선조 말에 이르면 나무를 땔감으로 쓰는 우리 온돌 문화의 영향으로 산마다 나무가 많이 없어져 곳곳에 민둥산이 생겼는데, 이곳은 이들 집안이 터를 지켜 산에 나무가 온건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한 지금의 화수2동 일대에는 조선 인조 때 반란을 일으켰던 이괄의 선조인 정숙공 이즉의 묘가 있었다고 한다. 이괄의 난이 진압된 뒤 인조는 이곳에 있던 이즉의 묘까지도 모두 파내라고 지시했는데 이곳이 명당인지라 관원들이 묘를 찾으러 왔지만 때마침 안개가 자욱해 끝내 찾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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