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㉘ 우각리(쇠뿔고개)
상태바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㉘ 우각리(쇠뿔고개)
  • 남용우 선임기자  nyw18@naver.com
  • 승인 2023.07.26 11: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용우 선임기자
남용우 선임기자

| 중앙신문=남용우 선임기자 | 동구 창영동(昌榮洞)은 1985년 인구감소로 인해 금곡동과 합쳐 행정동이 금창동으로 바뀌며 지역에서 점점 잊혀가고 있다. 창영동의 옛 이름은 우각리다.

지금 인천세무서가 있는 언덕을 흔히 쇠뿔고개라고 불렀는데, 이를 한자로 옮긴 것이 ‘우각리’라고 하니, 원래 이름이 ‘쇠뿔고개’인 셈이다. 이곳 쇠뿔고개는 옛날 인천에서 서울로 갈 때 거쳐 가던 길목으로 고개의 위에는 미국인 앨런의 별장이 있었는데 별장의 위치는 예전에 박태선 장로의 인천 전도관이 있던 곳이다. 모 방송국의 월·화 드라마로 인기를 끌었던 ‘제중원’의 초대원장인 앨런이 바로 이 사람이다. 한국식 이름이 안련인 앨런은 갑신정변 때 칼을 맞고 크게 다친 민영익을 치료해 살려준 뒤로 황실과 친분을 쌓게 된다. 그 인연으로 고종에게 청해 이듬해인 1885년 2월 서울 제동에 왕립 광혜원을 세웠다.

한국 최초의 서양식 국립의료기관인 이 병원이 나중에 제중원으로 바뀌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인 세브란스 의전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역사를 간직한 쇠뿔고개는 그 무엇보다도 1897년 3월 경인철도 기공식이 열린 곳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갓을 쓰고 흰 도포를 입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서양인들과 함께 찍은 당시의 기공식 사진은 지금도 여러 잡지 등에서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1897년 우각리에서 열린 경인철도 기공식 광경. (사진제공=동구청)
1897년 우각리에서 열린 경인철도 기공식 광경. (사진제공=동구청)

1899년 9월 18일 인천 노량진 간 32.8Km의 철도가 우리나라 최초로 개통되고 이날은 오늘날 ‘철도의 날’로 기념되고 있다. 개통 당시 경인철도는 인천, 축현, 우각, 부평, 소사, 오류동, 노량진 등 7개의 역사를 갖고 있었는데, 그 뒤 한강철교가 완공됨에 따라 1900년 7월 인천 서대문 간 경인철도 전 구간이 개통됐다. 특히, 창영동에 있는 창영초등학교는 인천 최초의 공립 보통학교로 인천을 만학의 길로 만든 곳도 바로 창영동이다.

‘창영동 헌책방 골목’이 바로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배다리와 동구청 사이에 자리를 잡은 이 헌책방 골목은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거리에 리어카와 노점상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형성됐다. 필자의 고등학교 시절인 60년대 말에는 40여 곳의 헌 책방들이 밀집해 전성기를 이루기도 했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빛바랜 헌 책방보다 새 책을 선호하는 시류에 밀려 이제는 5~6여 곳만이 남아 골목을 지키고 있다. 필자도 60년대 말 헌 책방 골목을 자주 이용했다. 데이트 비용 등 갑자기 용돈이 필요할 때 수학책과 영어책 등을 들고 이곳을 찾았다. 자장면 한 그릇에 30원 정도 할 때 영어책과 수학책 등 헌책을 이곳에서 150원 정도에 팔았다. 물론 다시 살 때는 200원 정도를 지불해야 했지만 말이다.

1960년대 창영동과 도원동사이를 가로놓인 철도건널목. (사진제공=동구청)
1960년대 창영동과 도원동사이를 가로놓인 철도건널목. (사진제공=동구청)

당시 교내에서 큰 도난사고는 없었지만, 가끔 가방 속에 들어있던 멀쩡한 책이 없어지는 경우가 있었는데 창영동 헌 책방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또 창영동 책방골목 위쪽에 유명한 꿀꿀이죽 집이 50년대 초에 들어서 인천 사람들의 인기를 모았다. 꿀꿀이 죽은 소고기 덩어리에 밥을 넣고 끓인 죽을 말하는데, 당시에 소고기는 서민들이 추석이나 설날 등 명절 때 조상님 제사에 올린 후에나 맛을 볼 수 있었던 귀한 음식이었다.

꿀꿀이죽에 들어가는 소고기는 미군부대 식당에서 근무하던 한국인 노무자들이 주방에서 몰래 빼낸 것으로 사용되었다. 몰래 빼낸 소고기를 여러 번 포장한 뒤 잔반통에 버리면 청소부들이 수거하고, 이 수거한 소고기를 창영동 꿀꿀이 집에 넘겨야 비로소 서민들 식탁에 오를 수 있었다. 이처럼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꿀꿀이죽 집은 60년대 중반 위생상의 문제 등으로 사라졌지만, 아련하게 인천시민들의 향수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남용우 선임기자
남용우 선임기자 다른기사 보기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단독] 3년차 의정부시청 여성 공무원 숨진 채 발견
  • 양평 대표축제 '제14회 양평 용문산 산나물축제' 개막
  • 박정 후보 유세장에 배우 유동근氏 지원...‘몰빵’으로 꼭 3선에 당선시켜 달라 ‘간청’
  • 감사원 감사 유보, 3년 만에 김포한강시네폴리스 산단 공급
  • 김포시청 공직자 또 숨져
  • [오늘 날씨] 경기·인천(20일, 토)...낮부터 밤 사이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