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㉔ 피난민의 정착지 ‘괭이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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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㉔ 피난민의 정착지 ‘괭이부리’
  • 남용우 선임기자  nyw18@naver.com
  • 승인 2023.06.28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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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용우 선임기자
남용우 선임기자

| 중앙신문=남용우 선임기자 | 인천시 동구 만석동 47번지 일대를 인천 사람들은 ‘똥마당’ 혹은 ‘괭이부리’라고 불렀다. 그곳 주민들에게는 극히 자존심 상하는 이름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고가도로가 생기고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옛날 풍경을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이곳 똥마당은 피난민들의 애환이 진하게 묻어나던 삶의 터전이었다.

한국전쟁 후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은 바닷가인 이곳에 모여들었다.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한 이들은 어느덧 동네를 형성했고 낯선 땅에서 새로움 삶에 적응해 나갔다. 피난민들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주거지로 이들은 도로포장에 사용하는 콜타르를 기름종이에 입힌 루핑으로 지붕을 올리고 4~5평의 판잣집을 지었다. 이런 판잣집 400여 채가 다닥다닥 들어서면서 피난민 정착지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마을은 크게 형성됐지만, 하수 시설은 물론 화장실이 없어 용변처리에 골머리를 앓았다. 결국 용변 처리는 바닷물이 들고나는 자연 수세식의 몫이었다. 요강이나 깡통에 처리한 용변은 그대로 갯벌에 내버려져 바다의 청소를 기다리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물론 어린아이들은 노천에서 용변을 보았다. 그런 용변이 여기저기 널린 풍경 때문에 이곳이 ‘똥마당’이 된 것이다.

괭이부리 주민들의 생계수단이었던 대성목재 저목장. (사진제공=동구청)
괭이부리 주민들의 생계수단이었던 대성목재 저목장. (사진제공=동구청)

공동화장실이 생긴 것은 훨씬 세월이 지난 후의 일이지만, 그나마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아침마다 화장실 앞에 길게 늘어서 순번을 기다렸다고 한다. 이러한 사연을 뒤로한 채 자존심이 강한 이곳 사람들은 ‘똥마당’이라는 이름을 거부하고 ‘괭이부리’라고 불렀다. 조선시대 이곳에 해안부대 방어를 위해 포대를 세우자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는 괭이갈매기가 많이 찾아와 붙여진 이름으로 인천이 고향인 사람들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곳 피난민들로 구성된 ‘괭이부리’ 주민들의 삶도 특이했다. 만석동에는 인천의 대표적인 향토기업인 대성목재가 있었는데 이 회사와 주민들 관계는 여러 가지 면에서 공생관계처럼 각별했다. 이 회사는 인근 앞바다에서 저목장을 운영했다. 저목장에는 지름 1.5~2m, 길이 15~20m가량의 수입원목들을 띄어놓고 있었다. 전쟁 통에 모든 것을 잃고 고통을 겪던 피난민들에게 이 목장은 생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장소였다. 그 무렵은 땔감이 귀하던 시절로 주민들은 저 목장에서 나무껍질을 벗겨내 햇빛에 말린 뒤 이를 내다 팔거나 연료로 사용했다.

당시 많은 가정이 이곳에서 나무껍질을 공급받아 이를 내다 팔고 회사는 원목의 목피 제거 공정을 줄일 수 있어 주민들을 제재하지 않았다. 이렇듯 나무껍질을 벗겨내는 일이 주민들 사이에서 생업으로 자리 잡자 경쟁 또한 치열했다. 그 무렵만 해도 인천항 도크를 확장하던 중이어서 원목을 실은 대형 선박이 몇 km 떨어진 외항에서 원목을 풀어놓았다. 그러면 다른 배가 원목을 견인하는 식으로 원목을 반입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원목을 실은 배 위에서 나무껍질을 벗겨내기 위해 배를 타고 외항에까지 나갔다.

북성부두 일대의 모습. (사진제공=동구청)
북성부두 일대의 모습. (사진제공=동구청)

대성목장의 저목장은 이처럼 주민들의 생계에 큰 보탬을 주는 장소이기도 했지만 인명을 앗아가는 무서운 곳이기도 했다. 저목장에 띄어놓은 통나무 위에서 놀거나 작업을 하다가 원목이 밀려나면서 그 밑에 잠기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원목 아래로 빨려 들어가 그 무거운 통나무를 헤쳐 나오지 못하고 끝내 숨을 거두는 끔찍한 일이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실제 필자의 부인인 김정환 씨(70)도 만석동 32번지에서 태어난 인천 토박이로 60년대 말 오빠들을 따라 저목장에 원목을 타러 놀러 갔다가 원목 사이로 빠지는 사고가 났다. 이를 본 오빠들과 주위 사람들이 모여들어 원목을 양발로 밀어내자 두 손이 원목 사이를 비집고 올라오는 순간 가로채 간신히 구조했다고 한다. 오빠들이 보는 앞에서 빠졌기에 망정이지 보는 사람 없이 뒤에서 빠졌으면 소리 한번 못 지르고 저 세상으로 가야 했다. 이때 당한 사고로 집사람은 물에 대한 공포증이 남달라 아직도 수영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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