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㉕ ‘수문통’ 화수동에서 배다리까지 이어진 갯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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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㉕ ‘수문통’ 화수동에서 배다리까지 이어진 갯골
  • 남용우 선임기자  nyw18@naver.com
  • 승인 2023.07.05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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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용우 선임기자
남용우 선임기자

| 중앙신문=남용우 선임기자 | 지금은 복개되어 도로로 이용하고 있는 동구 송현동 일대의 수문통은 원래 바닷물이 드나들던 소로로 넓은 갯벌과 갈대밭이 무성한 지대였다. 제물포항 서북쪽 동구 만석동에서 북쪽 지역인 송현·송림동까지 해안이 이어져 만석동 괭이부리에서 지금은 육지가 된 인천교까지 넓은 갯골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곳 갯골에는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수구문(水口門)이 있어 수문통(修門通)이라 불렀다. 수문통은 화수·화평동, 송현·금창동 등 인천의 시가지 중심부로 깊숙이 이어져 있었다. 옛(화도진도)를 보면 지금의 화수동과 송현동 사이로 여러 갈래의 꾸불꾸불한 작은 실개천이 한 줄기로 모여 흐르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당시 수문통은 배다리 철교까지 이어져 1930년대까지만 해도 해산물을 비롯한 다양한 물건을 실은 배들이 드나들었던 곳이다. 지금은 복개된 아스팔트 위로 차들이 달리고 있어 이곳이 작은 배들이 다니던 갯골이었다는 이야기가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화평파출소 인근에 ‘송현교’라고 쓰인 화강암 교각 두 개가 당시 바닷물이 드나들었던 곳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1960년대 수문통갯골의 만조 때 광경. (사진제공=동구청)
1960년대 수문통갯골의 만조 때 광경. (사진제공=동구청)

수문통 일대에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살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초로 알려졌다. 고일선생의 ‘인천석금’에 따르면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난 후 일본군들이 중구 전동 근처에 주둔하면서 그곳 주민들을 송현동으로 내쫓았다.

이로 인해 수도국산 자락에 자리 잡은 이주민들은 빨래하면서 생긴 양잿물을 아래 논바닥으로 계속 흘려보냈다. 게다가 걸핏하면 바닷물까지 넘쳐 이 일대 논이 망가지면서 결국 황량한 갈대밭으로 변했다. 이후 일제는 인천에 도로와 항만, 공장부지, 주택 등 도시개발 확장을 하면서 많은 땅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매립사업이다. 인천 지역 해안은 굴곡이 심하고 해면이 낮은 데다 조수간만의 차가 커 간조 때면 수천 ㎡에 이르는 갯벌이 드러나 바다를 매립하기 쉬운 편이었다.

1905년부터 60년 동안의 동구 지역 매립사업 가운데 1905년~6년 사이에 처음 시작된 곳은 만석동과 화수동 북쪽 해안 일대(괭이부리~현 인천전기)로 23만 2600여㎡에 이른다. 인천경제를 주도했던 동일방직과 대성목재도 이곳 매립지에 공장을 세운데 이어 한국유리, 동국제강, 인천제철 등이 들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수문통 갯골은 당시 상공회의소 회장이었던 일본인 요시다가 1939년부터 1943년까지 약 10만㎡를 매립하면서 화평동에서 배다리까지 ‘ㄱ’ 자로 꺾이는 하수로를 뚫고 하류에 수위를 조절하는 수문을 설치해 바닷물을 막은 것이다. 요시다는 이 일대를 매립해 번 돈으로 지금의 송현초등학교를 설립했다.

이 수문통은 배다리 철교까지 연결돼 해방 전까지만 해도 해산물과 생필품을 실어 나르는 쪽배가 다녔으며 개천가에 들어선 야시장이 당시엔 큰 상권 중 하나로 지금의 포목점 상가의 시초였다. 그러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수문통 개천을 복개한 후 상권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수문통 주변에는 피란민들의 판자촌이 들어섰고 양키시장(현 중앙시장)·순대시장 등의 서민 상권도 형성됐다.

수문통 복개지에 아파트를 비롯, 대형 건물이 자라잡고 있다. (사진제공=동구청)
수문통 복개지에 아파트를 비롯, 대형 건물이 자라잡고 있다. (사진제공=동구청)

1980년대 말 이후 도로로 복개되기 전까지만 해도 바닷물이 드나들고 갯벌과 갈대밭을 중심으로 한 생태계가 살아 있었다. 지금은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근처에 대형 백화점까지 자리를 잡았다. 1970년대 당시 인천의 중심 생활권으로 불편함이 별로 없는 곳이었지만 어찌 보면 그 옛날 발을 걷어붙인 채, 갯고랑을 건너 이웃 동네로 놀러 다녔을 거라는 생각에 세월의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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