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⑫ 웃터골 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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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⑫ 웃터골 운동장
  • 남용우 선임기자  nyw18@naver.com
  • 승인 2023.03.2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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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용우 선임기자
남용우 선임기자

| 중앙신문=남용우 선임기자 | 웃터골 운동장은 현재 제물포고등학교(1945년 개교)가 들어선 자리에 있다. 본래의 원형을 많이 잃어버렸지만 예전에는 인천 체육의 중심지로 공설운동장 역할을 해온 곳이다. 이곳은 국내 근대 체육경기를 처음 시작한 곳으로, 자유공원에서 기상대 방향으로 돌아가는 응봉산 분지 솔밭 골짜기에 위치한 삼태기 모양의 천혜의 체육시설이다.

자세히 보면 그리스의 고대극장이나 로마의 원형 경기장처럼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장점을 갖추고 있다. 천연운동장인 분지에 완만하게 경사진3면 기슭이 천연 스탠드 역할을 하고 있어 이곳에서는 축구 경기와 야구 경기가 많이 열렸다.

우리나라에서 축구가 처음 시작된 것은 인천에서 외국 선원들이 축구를 한 후 두고 간 가죽 공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와 함께 야구 또한 인천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기록이 남아있다.

영화 ‘YMCA야구단에서는 야구가 1905년 서울에서 시작된 것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은 인천에서 맨 처음 야구를 했다. 1889년 영화초등학교에 다니던 일본인 학생의 일기장에서 야구를 했다는 기록이 발견돼 야구 역시 인천에서부터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제시대 때 축구경기는 한편의 코미디를 연상케 했다고 한다. 팀의 인원은 제한 없이 양쪽 선수의 숫자가 같기만 하면 되는데 보통 15명이 뛰었다고 하며, 골포스트가 없어서 공이 골키퍼 머리 위를 지나가면 득점으로 인정, 롱슛보다 하이 슛이 인기를 끌었다.

경기 시간도 지금처럼 정해지지 않고 제한이 없어, 어느 한쪽이 모두 지쳐 백기를 들면 끝났다고 한다. 당시의 우리나라 선수들은 경기장에 입장할 때 모두 갓을 벗고 상투머리가 흐트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망건을 쓰고 경기를 했다.

특히 저고리 앞자락이 나풀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조끼나 배자를 입었으며 큰 경기에서 양 팀을 구별하기 위해서 조끼의 빛깔을 다르게 했다고 한다. 3.1운동 이후 일제가 문화정치를 피며 스포츠도 발전하기 시작했다. 외국 선교사나 무역상사에서 클럽을 만들고 스포츠 붐이 일게 됐다.

야구단. (사진제공-중구청)

당연히 웃터골 운동장을 사용하는 클럽들이 늘면서 1926년 운동장도 약 2로 넓혀 축구와 야구, 육상경기 등 각종 경기가 열렸다. 특히 인천의 기차통학생들이 주축이 된 한용단 야구팀과 미두취인소 소속 미신(米信)팀의 라이벌 야구 경기 때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한용단이 나온다는 소문만 돌면 시내의 상점이 철시를 하다시피 하고 야구의 자도 모르는 사람들까지 열병에 들뜬 것처럼 웃터골에 모여들었다. 어른들은 빈 석유통을 두드리며 응원하고 아이들은 째지는 목청으로 마음껏 소리쳐서 그 함성에 귀가 먹먹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뜨거운 여름날에 지게를 세워놓고 구경을 하다가 생선과 조갯살이 상했다고 하니 그 열기를 짐작할 만하다. 이렇듯 1920년부터 울려 퍼졌던 웃터골 운동장의 함성은 1934년 이곳에 인천공립중학교가 들어서면서 사라지게 됐다. 한편 인천 스포츠의 산실이었던 웃터골은 60년대 들어 당시 야당도시로 명성을 떨치던 인천의 정치1번지로 변했다.

대통령 선거를 비롯해 국회의원 선거 당시 유세장으로써 이만한 곳이 없었던 것이다. 유세가 있는 날이면 각 당 후보들의 연설을 청취하기 위해 10만 명이 넘는 관중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운동장 3면에 걸친 천연 스탠드는 물론 자유공원을 꽉 메웠다.

각 당에서 무료로 내놓은 막걸리와 빈대떡 등 푸짐한 안주가 도로 이곳저곳에 펼쳐져 유권자는 물론 학생에 이어 어린이들까지 몰려와 큰 잔치판을 벌렸다. 지금은 출근길과 퇴근길 등을 이용한 길거리 연설로 대신 하지만, 당시만 해도 유세 현장에 몰려드는 관중 수로 대세를 가늠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필자도 동네 형들을 따라 자유공원(유세현장)에 올라가면 왜 그렇게 신이 났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만 날 뿐이다.

남용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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