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⑮ 용동 큰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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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⑮ 용동 큰 우물
  • 남용우 선임기자  nyw18@naver.com
  • 승인 2023.04.19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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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용우 선임기자
남용우 선임기자

| 중앙신문=남용우 선임기자 | 용동(龍洞)은 지금도 흔히 큰 우물이라는 이름으로 통한다. 개항 이후 생긴 이 마을은 경동 사거리와 동인천 사이의 우측 방향의 용처럼 생긴 고개 주변에 있다고 해서 용리, 용운정 등으로 불려오다 1946년 용동이 됐다.

현재 동인천 길병원 뒷골목에 있는 용동 큰 우물1881년에 만든 것으로 자연 우물을 현대식 우물로 바꾼 것이다. 이 우물은 맛이 좋고 가뭄이 들어도 물이 줄지 않아 수돗물이 보급되기 전까지 많은 시민들이 길어다 식수로 썼다.

또 이 물로 술을 빚어야 맛이 난다고 해서 인천에서 한창 번성했던 양조장들마다 물을 길어다 썼다는 이야기도 있다. 1910년대를 전후해 이 우물 주변에는 요릿집과 기생집이 줄줄이 들어섰는데 시생을 관리하는 권번 중 용동권번은 꽤 유명했다.

권번에서는 인물과 가무 솜씨 등을 보아 기생을 뽑고 기생 후보도 키웠으며 매일 초일기라는 기생 명단을 요릿집에 보내 손님의 부름이나 예약을 기다렸다. ‘어머님 전상서’, ‘화류춘몽등의 노래로 정상의 인기를 누리다 요절한 이화자, 일본 기생보다 일본 소리를 더 잘한다고 해서 이름이 높았던 이화중선 등이 이곳 용동권번을 거쳐 갔다고 한다.

지금도 신신예식장 뒤편 내리막길 층계에는 용동권번이라 새겨진 돌계단이 남아있어 그 시절을 기억하게 해준다. 그러나 1940년대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쌀 배급제가 시작되고, 나중에는 술까지 배급제가 되자 이들 기생집과 요릿집은 차례로 문을 닫았다.

용동 큰우물. (사진제공=중구청)
용동 큰우물. (사진제공=중구청)

이 같은 기생집이나 요릿집은 돈이나 권력이 있어야 드나들던 곳이고, 서민들은 값이 싼 선술집 등을 이용했다. 온돌 부뚜막 위에 나무로 만든 긴 탁자를 걸어놓고 따뜻하게 데운 약주와 함께 주로 인천 앞바다에서 잡아온 생선과 찌개를 안주로 먹던 이 선술집들은 부뚜막과 나무탁자가 있다고 해서 목로집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목로주점처럼 자주 쓰이는 말인데 인천에서 처음 생긴 뒤 서울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당시 이곳 용동에서 영업을 한 안흥관청대문집등 목로집들은 광복 뒤까지도 한동안 술꾼들이 많이 찾았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용동 큰우물. (사진제공=중구청)
용동 큰우물. (사진제공=중구청)

1970년대 들어 용동 큰 우물 옆으로 낙지볶음으로 유명했던 주촌집과 용동 큰 우물 노가리집, 신한은행(옛 한일은행)뒷골목 대폿집(두부부침), 청과시장 뒷골목의 목로주점(한잔 집)등이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특히 큰 우물에서 신신예식장으로 올라가는 골목길에 자리 잡은 튀김골목은 젊음의 낭만을 불태우는 장소였다. 대낮부터 골목길에서 흘러나오는 이장희의 한잔의 술과 함께 연인들의 꿈과 희망과 그리고 사랑을 키워가는 최고의 메카로 떠올랐다.

당시 군인들이 휴가나 외출 등을 나오면 의례적으로 거쳐 가는 길이기도 했다. 해가 지기 전부터 골목길에는 인천 전 지역에서 몰려온 젊은이들의 발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튀김 골목은 80년대 들어서면서 칼국수(용동 할머니)골목으로 변신하며 한 시대의 막을 내렸다.

한편 용동은 한국 미술사의 개척자로 우리나라 미학과 고고학 분야에 큰 발자취를 남긴 우현 고유섭 선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초대 개성박물관장을 지낸 그는 40년의 짧은 일생을 한국 미학의 기초를 세우는데 바쳐 세상을 떠날 때까지 150여 편의 글을 남겼으며, ‘한국 탑파의 연구’ ‘한국미술문학사론등의 유고집이 남아있다. 향토사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지금의 동인천 길병원 자리가 바로 선생의 생가가 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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