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신문=남용우 선임기자 | 고잔동(古棧洞)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교통편이 불편해 이곳 학생들은 고등학교를 다니기가 쉽지 않던 곳이었다. 고잔동에서 인천 시내에 있는 학교를 다니면 유학 갔다고 표현했을 정도니 얼마나 어려웠으면 그러했을까 싶다. 당시 버스가 있기는 있었으나, 시내까지 1시간 30분이 걸리는 데다 그나마 제때 시간을 맞추지 못해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인선을 이용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새벽밥을 먹고 6시에 집에서 출발해도 학교에는 항상 30분 늦게 등교해 벌을 받기 일쑤였다.
그러던 이곳이 2000년대 들어서 급격한 개발에 따라 토지가 크게 급등하면서 큰돈을 손에 쥐는 부자들이 탄생했다. 이러한 친구를 보고 주변에서는 개천에서 용이 나왔다고 했다.
인천 제일 끝자락에 있는 바닷가의 한가했던 어촌 마을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1952년 한국화약이 들어서면서부터다. 일자리를 찾아 많은 근로자들이 한국화약에 입사하면서 한적하던 어촌마을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1990년 12월 31일 오후 5시, 고잔에서 시흥시(당시 시흥군)에 이르는 바다 앞을 매립하는 허가를 한국화약이 정부로부터 취득했다. 1991년부터는 환경피해 등을 이유로 바다 매립을 불허한다는 안이 국회를 통과한 상태에서 불과 종료 한 시간을 남겨두고 허가를 받은 것이다.
당시 시흥군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매립 허가가 이루어진 것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잘 안 가는 부분이다. 이때 1986년 막사이사이상 수상자인 고 제정구(14대 국회의원)씨가 매립에 반대하며 강하게 투쟁했으나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이러한 사연을 간직한 고잔동이 논현지구로 탈바꿈하며 4만여 세대의 고층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 한마디로 한가했던 어촌마을이 하루아침에 천지개벽한 것이다. 이곳은 구한말까지 인천부 남촌면 고잔리였던 곳으로 이름은 우리말 ‘곶’에서 나왔다. ‘고지’ 또는 ‘곶’은 바다나 호수 쪽으로 뾰족하게 내민 육지의 끝을 나타내는 말로 한자의 관(串)이나 갑(岬)에 해당한다. 이 ‘곶의 안쪽’ ‘곧안’이 고잔으로 바뀐 것이다.
지금은 바닷가 상당 부분이 매립돼 옛 모습을 알기 어렵지만 1910년대에 나온 지형만 봐도 이 동네는 지형이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삐죽이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고잔이라고 불린 것인데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는 당연히 이와 똑같은 땅이름이 곳곳에 많이 있다.
인천만 해도 옛날 인천도호부 시절 지금의 중구 중앙동·선린동·항동 일대가 다소면 고잔리였고, 이곳 남동구 고잔은 조동면 고잔리였다. 또 지금의 서구 석남동 일대나 경서동 일대도 모두 고잔이라 불렀다. 이 고잔은 한자로古棧, 高棧, 古盞 등 여러 가지로 쓴다.
하지만 어떻게 쓰든 모두 한자의 소리만을 빌려 우리말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오래된 잔교’ ‘높은 잔교’하는 식으로 한자의 뜻을 해석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고잔은 또 같은 뜻이면서도 소리의 변천 과정에서 지역마다 그 발음이 조금씩 달라져 우리나라 곳곳에 꽃안, 고단, 고잠, 고안 등 뿌리는 같지만 모양은 다른 땅이름을 많이 남기고 있다.
그런데 이 곶 계열의 이름들이 한자로 바뀌는 과정에서 그 뜻을 잘못 알거나, 뜻을 알더라도 이름을 더 예쁜 뜻으로 나타내기 위해 전혀 다른 뜻의 글자를 쓴 경우가 많이 있다. 이를테면 ‘꽃 화’ 자의 경우 꽃의 중세어가 ‘곶’이었기에 곶(串) 대신 많이 쓰였고, 때로는 아름다울 화(華)로 나타낸 경우도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동구의 화도진이나 강화도의 불온면과 선온면 경계의 화도 등이며 그 밖에도 여러 곳이 있다. 물론 이때의 화(化)나 화(華)는 우리말 곶을 나타낸 것이니 한자를 해석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렇듯 세 곳이나 됐던 인천의 고잔은 그 뒤 두 곳이 다른 이름으로 바뀌고 지금은 남동구 고잔동만이 옛 이름 그대로 남아있다.
때로는 이곳을 어떤 장소를 나타내는 ‘곳’으로 잘못 알고 쓰는 경우도 있다. 인천 서구의 서곶을 서곳으로 잘못 알아 근처에 생긴 초등학교에 서곳 초등학교라는 이름을 붙였던 일화 등이 그 예다.
한편 곶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뾰족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 우리말 다른 단어에도 많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 곶과 관련해 우리나라를 한반도 대신 한 곶으로 부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도 있다.
‘곶’과‘ 반도’는 주로 일본인들이 우리나라를 얕잡아서 쓰는 말로 자신들을 ‘본도인’ 또는 ‘내지인’이라 하고 우리나라는 ‘반도인’이라 부른 데서 비롯된 말이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곶이 반도보다 작은 것이 문제가 된다면 반도는 결국 ‘큰 곶’을 말하는 것이고 우리말에서 큰 것을 나타내는 접두사가 ‘한’이니 ‘한곶’이라 불러 문제 될 일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