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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칼럼]인연으로 다져진 우정
  • 중앙신문
  • 승인 2019.03.26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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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과음으로 인해 잠자리에서 제때 일어나지 못하고 몸을 뒤척이고 있던 중에 거실에 놓아둔 핸드폰이 자명종처럼 요란스럽게 울렸다. 눈을 비비며 시계를 보니 시계는 아침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군대 기상나팔 같은 전화 벨소리에 짜증도 나고 전화받기가 귀찮았으나 안 받을 수도 없어,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고 핸드폰을 찾아서 통화버튼을 누르자 아-여보세요 니-영택이 맞지 나 일우다 거-참 전화 한번 통하기 힘들다.

핸드폰을 통하여 억센 경상도 사투리가 바람처럼 들렸다.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당황스러 우면서도 무척 반가웠다. 푸념섞인 말투로 전화를 한 사람은 분명 여름철 휴가때 부산에서 만난 친구 일우였기 때문이다.

안면 부지인 부산에서 일우를 만나 친구가 된 동기는 부산의 송정리 해변가 민박집에서 일어난 해프닝 으로부터 시작된다.

지난해 7월이었다. 죽세가 맞은 친구 네 명이서 부인을 동반하여 부산으로 1박 2일의 휴가를 떠났다. 장마가 끝나지 않은 7월 중순은 휴가를 보내기에는 어정쩡한 날씨였지만, 다행히도 남쪽 지방은 장마가 끝나 다소 안심이 되었다. 예매된 고속버스에 승차하여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려 나가자 차창밖을 스치는 녹색풍경이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며 여유롭게 다가온다.

몇 년 전만 해도 중부지방에서 부산과 목포 같은 남쪽 지방을 여행하기 까지는 마이카나 관광버스가 아니면 당일치기 여행은 극히 어려웠다. 그러던 것이 전국이 1일 생활권으로 바뀌다 보니 이젠 웬만한 소 도시에서도 남쪽 지방을 오가는 버스들이 생겨났다.

한때는 도로 사정이 안좋아, 우보 천리길 같던 남쪽 여행길이 고속도로와 날렵하게 만들어진 차들 덕택에 힘 안 들이고 목적지에 이르는 것을 보면 세상 참 좋아졌구나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몇 시간을 달려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역 대합실에는 경상도 사투리가 몸에 배어 부산사람이 다된 초등학교 동창이 미리 연락을 받고 마중을 나와 있었다. 반가움에 굳은 악수를 나눈 일행은 못다 한 이야기는 숙소에서 나누기로 하고 예약된 민박집으로 향했다. 일행이 시내를 벗어나서 숙소에 도착하자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미리 정해논 장소에 난데없이 다른 일행이 선점하여 방 정리를 끝내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앞에 벌어진 황당한 사태에 언성이 높아지고 한동안 시끄러웠으나, 자초지종을 알고 보니 돌발적인 상황은 추진과정이 잘못되어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우리 일행 중 Y라는 친구가 부산에서 고등학교 동창들과의 만남을 갖기로 했는데 일이 잘못되어 겹쳐진 사고였다.

방 문제로 인해 옥신각신 하다 보니 피서 분위기는 사라지고 감정은 꼬여만 갔다. 그러나 부산까지 와서 그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민박집주인에게 사정을 해서 다락방같이 좁아 보이는 작은방을 구해 동행한 부인들을 쉬게 했다.

이에 난처해진 사람은 Y였다. 애써 추진한 일들이 불신을 받는 상황에 이르게 되자 그는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했다. 시간이 흐르고 우여곡절 끝에 일행은 Y의 고등학교 동창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악수를 나누고 서로 간의 통성명을 나눴지만 아무래도 처음 대하는 자리는 낯설고 어색했다. 한동안 불편하고 서먹서먹한 분위기였으나 분위기를 바로 수습한 것은 역시 술 문화였다.

먼저 와서 자리를 잡은 다른 일행에 의해 만들어진 술자리는 알코올의 힘으로 서로 간의 벽이 사라지고 화합의 분위기로 무르익어갔다. 주거니 받거니 한 술잔은 오랜 친구를 만난 듯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늦은 시간까지 벌어진 술판은 이내 나를 알코올 속에 빠지게 했고 몸을 제대로 가누질 못하게 했다.

세상에 술자랑 하는 것처럼 바보는 없다 했지만 취기가 오른 나로서는 그들과의 술대작에서 밀리기 싫었고, 안주감으로 차려진 싱싱한 회에 대한 욕심으로 술잔을 더욱 놓질 못했다. 결국은 과음으로 인해 인사불성 사태에 이르렀고 술좌석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는가 하면 그것도 모자라서 볼성 사나운 행동까지 저질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가 저지른 추태는 험악한 사태로 번지지 않았고 코미디 인양 웃음으로 받아 넘겨졌다. 나중에 알았지만 내 술주정을 모두 받아주고 주변 정리를 해준 사람이 Y의 고등학교 동창 일우였다.

술에 떨어져서 정신을 겨우 차린 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속이 쓰리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뭔가로 속을 달래야만 했는데 모두가 취침상태라 그들을 깨우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태가 되었다.

그때 잠에서 깨어난 일우가 구세주였다. 물병을 찾아 건네주고 술을 깨는 데는 뭐니 뭐니 해도 바닷가의 아침 공기가 최고라면서 나를 송정리 해변으로 이끌었다. 숙소에서 도보로 50M 안팎인 송정리 해변은 밤새도록 시끌벅적했고 피서객이 넘쳐났으나 아침이 되자 썰물처럼 피서객들이 빠져나가고 잔잔한 파도만이 해변의 모래밭을 토닥거리며 혼자만의 유희를 즐기고 있었다.

해변에 도착하자 일우는 시원한 바닷물에 발을 담그게 하고 해풍을 쐬게 하여 컨디숀을 원상회복하는 데에 조력을 아끼지 않았다. 일우의 말대로 분홍빛 아침 해변에서 해풍에 몸을 맡기고 있노라니 지끈거리던 두통도 가라앉았고 울렁거리던 뱃속도 편안해졌다. 원기를 회복한 나는 일우를 앞세워 인근의 소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람이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는데 어느새 일우와 나는 하룻밤 사이에 몇 십년지기 친구로 변해있었다.

아침을 먹고 난 후 일행은 각기 다른 스케줄로 인해 헤어져야만 했다. 헤어짐에 앞서 전화 좀 자주 나누자는 일우의 당부를 뒤로하고 항구도시 부산을 둘러보기 위해 투어관광에 나섰다. 먼저 바다를 배경으로 아름답기로 유명한 광안대교를 시작으로 용두산과 태종대를 관광하다 보니 시간은 계속 흘러만 갔고 1박 2일의 낭만여행을 아쉬움 속에 마쳐야만 했다.

피서를 마치자 다시 나는 평범한 일상생활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부산에서 있었던 일은 생활 속에 쫓겨 까맣게 잊었다. 일우한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은 부산을 다녀온 지 꼭 일주일이 되는 토요일 아침이었다.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는 내게 안부를 확인한 일우는 집에서 짠 참기름과 된장을 택배로 보낸다고 했고 좋은 친구가 되자 라는 말을 덧붙였다. 일우와의 전화 통화가 끝나자 한동안 민구스러워졌고 부끄럽기만 했다. 계면쩍어 머리를 끍적이는 나를 향해 아내는 '그런 친구 일찍 못 만나서 한이죠' 라며 익살스럽게 한마디를 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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