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08.25 일 09:19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김영택 칼럼
[김영택 칼럼]창가의 사색(思索) (1)
  • 중앙신문
  • 승인 2019.02.26 17:22
  • 댓글 0
김영택 (칼럼위원)

어릴 때 막연한 생각이었지만 해가 지고 뜨는 먼산을 바라보다가 문득 저 산 아래는 누가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질 못했고 강가에 앉아서 흐르는 강물을 보면 물안개 핀 저 수평선 끝에는 무엇이 존재할까 하는 의문을 가슴에 품고 답답하게 살았다.

그 궁금증의 실마리가 풀려나가고 답을 얻기 시작한 것은 공상의 꿈을 꾸었던 소년의 시절을 뱀의 허물처럼 벗고 나서부터였다. 지금은 전국의 도로망이 사통팔달로 연결되어있고 마이카 시대로 마음만 먹으면 그 어느 곳이든지 쉽게 달려갈 수가 있지만 불행하게도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했던 지난날에는 지금처럼 날렵하고 멋진 자가용을 찾아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의 취약했던 교통시설은 6.25 전쟁의 상흔 속에 부산물로 남겨진 군용 폐차들을 변형시켜 만들어낸 버스와 시발택시가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이었고 편의시설이었다. 그나마도 시발택시는 서울과 도시에서만 운행되었을 뿐 시골 변두리까지의 택시 운행은 꿈도 못 꾸던 시대였다. 포플러 나무 가로수가 그늘막이 되어 한낮의 뙤약 빛을 가려주고 도로의 약한 지반을 다지고자 불규칙하게 자갈이 깔렸던 시골길 신작로는 비포장 길로 인해 흙먼지가 황사처럼 사방으로 날렸고 농촌의 부족한 교통량은 우마차와 달구지가 유일한 대체 교통수단이었다.

이제는 멀리 가버린 추억이 되었지만 가난에 고통받던 어린 시절의 먼산은 우주처럼 다가갈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고 끝없이 흘러가는 강물은 태평양과 같은 드넓은 바다로 생각되어 공상과 상상 속에 오랫동안 맴돌았다. 세월이 흘러 성년이 되자 어려서 생각한 공상의 세계와 현실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비록 그 생각이 한참 잘못된 것이라 할지라도 예전의 공상을 산산이 깨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암흑과 같았던 지난시절 광활한 세상을 끝없이 동경했던 목마른 갈증은 가난이라는 오명과 취약한 교통사정으로 어디론가 훌쩍 떠날 수가 없었지만 문명이 발달된 오늘날에는 생활 속에 동반자가 되어버린 자동차로 인해 1일 생활권으로 묶어진 전국을 자유롭게 찾아다니며 국토의 아름다운 장면을 연일 눈 속에 담는데 바빠졌다.

자동차 문화가 생활 속에 자리 잡고 보편화되자 이를 통해 꽃피는 봄에는 시인이 되어 길을 떠나고 싶어 졌고 흰 눈이 펑펑 내리는 계절에는 소설가가 되어 옛 추억을 두루두루 담아보고 싶어 졌다. 그러나 내 생각과는 반대로 조급한 마음은 봄을 기다리지 못하고 남녘의 초록 바닷가로 달려가 봄과의 해후를 즐기는데 급급했고, 오지랖이 넓게도 목마른 산하에 봄소식을 전해주는 배달부의 역할을 자청하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겨울 어둠속에 짙은 안개로 드리워져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리움을 찾기 위해 세월의 강다리 위에서 안개 숲을 헤치고 꿈결같이 밀려오는 고독의 여파를 침묵으로 맞아 드리는 몽환적인 시간 속에 빠져들기도 했다.

인생이란 삶을 재 조명해보니, 어리석게도 산다는 것은 오늘이 있으면 내일이 있고 내일 가면 그다음 날을 기다릴 줄 아는 여유를 뒤늦게 알았고, 하늘이 내려준 축복에 감사할 줄 알고 만족해야 함을 노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깨닫게 되었다. 아침에 떠오른 해가 산머리로 향하는 저녁 무렵이 되면 황혼의 태양빛은 난로 불처럼 활활 타오르고 장작불처럼 붉은 불씨를 남긴다. 황혼에 비치는 오후의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리 없다. 까까머리 소년 시절 황혼에 대한 아픈 기억을 되새겨본다. 초등학교 시절 창가에서 바라다본 노을 진 황혼의 풍경은 밀레의 만종처럼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 황혼의 모습 에이 끌려 어린 마음을 원고지에 옮기고 찬미했다.

그러나 어린 학생의 시상을 시원스레 판단하지 못한 선생님의 생각은 판이하게 달랐다. 중년의 선생님에게 황혼은 떨어지는 낙엽처럼 메말라가는 인생살이로 받아들여졌고 고단한 인생으로 풀이됐다. 결국 선생님의 무심한 평가는 어린 가슴을 멍들게 했고 당혹스럽게 했다. <계속>

중앙신문

<저작권자 © 중앙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Tag

중앙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인기기사
[인터뷰] “현장서 답을 찾다” 김미경 연천군의회 의원오늘날 우리는 지방자치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지방자치시대에서 지방의회는 핵심적인 ...
파주 운정 S마을 9단지 ‘택배차량 출입 안 돼’… 기사 부인 靑 '국민청원'에 글 올려 ‘하소연’파주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 드나드는 택배차량이 단지 내 안전을 이유로 출입이 차단...
내달 21일 평택시 오산비행장 에어쇼 개최…막바지 준비 총력평택시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평택시 오산비행장 에어쇼’ 막바지 준비에 총력을...
김포한강신도시 현안 해결 위해 머리 맞대김재수 도시국장 주재로 ‘한강신도시 현안문제 해결을 위한 테스크포스(T/F)팀’ ...
고양시 대단지 아파트 앞 전용도로… 도로인가? 주차장인가?대단위 아파트 단지 앞 전용도로가 주차장으로 둔갑해 입주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
개인정보 유출자 가려낸다···김포시, 수사의뢰키로김포시가 개인정보 누출을 포함, 잇단 시정 관련 내부정보 유출에 대해 강력하게 대...
파주시, ‘경기행복주택’ 이달 입주파주시는 19일 이달 중 경기도시공사가 시행하는 청년층의 주거안정을 위한 경기행복...
평택시, 2020년도 예산 긴축 편성 추진평택시가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한 거래 감소 및 삼성전자의 영업실적 저조로 인한 ...
도심 속에서 펼쳐지는 거리예술 향연 ‘제23회 과천축제’오는 9월 26~29일 4일간 과천시민들은 물론 외지 인들까지 온통 잔치 분위기에...
파주시, 장애물 없는 무장애 숲길 ‘헤이리 노을숲길’ 준공식 열어파주시는 지난 21일 헤이리 예술마을 노을공원(탄현면 법흥리 1652-585번지)...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