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택 칼럼]창가의 사색(思索)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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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칼럼]창가의 사색(思索)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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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2.26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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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어릴 때 막연한 생각이었지만 해가 지고 뜨는 먼산을 바라보다가 문득 저 산 아래는 누가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질 못했고 강가에 앉아서 흐르는 강물을 보면 물안개 핀 저 수평선 끝에는 무엇이 존재할까 하는 의문을 가슴에 품고 답답하게 살았다.

그 궁금증의 실마리가 풀려나가고 답을 얻기 시작한 것은 공상의 꿈을 꾸었던 소년의 시절을 뱀의 허물처럼 벗고 나서부터였다. 지금은 전국의 도로망이 사통팔달로 연결되어있고 마이카 시대로 마음만 먹으면 그 어느 곳이든지 쉽게 달려갈 수가 있지만 불행하게도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했던 지난날에는 지금처럼 날렵하고 멋진 자가용을 찾아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의 취약했던 교통시설은 6.25 전쟁의 상흔 속에 부산물로 남겨진 군용 폐차들을 변형시켜 만들어낸 버스와 시발택시가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이었고 편의시설이었다. 그나마도 시발택시는 서울과 도시에서만 운행되었을 뿐 시골 변두리까지의 택시 운행은 꿈도 못 꾸던 시대였다. 포플러 나무 가로수가 그늘막이 되어 한낮의 뙤약 빛을 가려주고 도로의 약한 지반을 다지고자 불규칙하게 자갈이 깔렸던 시골길 신작로는 비포장 길로 인해 흙먼지가 황사처럼 사방으로 날렸고 농촌의 부족한 교통량은 우마차와 달구지가 유일한 대체 교통수단이었다.

이제는 멀리 가버린 추억이 되었지만 가난에 고통받던 어린 시절의 먼산은 우주처럼 다가갈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고 끝없이 흘러가는 강물은 태평양과 같은 드넓은 바다로 생각되어 공상과 상상 속에 오랫동안 맴돌았다. 세월이 흘러 성년이 되자 어려서 생각한 공상의 세계와 현실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비록 그 생각이 한참 잘못된 것이라 할지라도 예전의 공상을 산산이 깨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암흑과 같았던 지난시절 광활한 세상을 끝없이 동경했던 목마른 갈증은 가난이라는 오명과 취약한 교통사정으로 어디론가 훌쩍 떠날 수가 없었지만 문명이 발달된 오늘날에는 생활 속에 동반자가 되어버린 자동차로 인해 1일 생활권으로 묶어진 전국을 자유롭게 찾아다니며 국토의 아름다운 장면을 연일 눈 속에 담는데 바빠졌다.

자동차 문화가 생활 속에 자리 잡고 보편화되자 이를 통해 꽃피는 봄에는 시인이 되어 길을 떠나고 싶어 졌고 흰 눈이 펑펑 내리는 계절에는 소설가가 되어 옛 추억을 두루두루 담아보고 싶어 졌다. 그러나 내 생각과는 반대로 조급한 마음은 봄을 기다리지 못하고 남녘의 초록 바닷가로 달려가 봄과의 해후를 즐기는데 급급했고, 오지랖이 넓게도 목마른 산하에 봄소식을 전해주는 배달부의 역할을 자청하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겨울 어둠속에 짙은 안개로 드리워져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리움을 찾기 위해 세월의 강다리 위에서 안개 숲을 헤치고 꿈결같이 밀려오는 고독의 여파를 침묵으로 맞아 드리는 몽환적인 시간 속에 빠져들기도 했다.

인생이란 삶을 재 조명해보니, 어리석게도 산다는 것은 오늘이 있으면 내일이 있고 내일 가면 그다음 날을 기다릴 줄 아는 여유를 뒤늦게 알았고, 하늘이 내려준 축복에 감사할 줄 알고 만족해야 함을 노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깨닫게 되었다. 아침에 떠오른 해가 산머리로 향하는 저녁 무렵이 되면 황혼의 태양빛은 난로 불처럼 활활 타오르고 장작불처럼 붉은 불씨를 남긴다. 황혼에 비치는 오후의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리 없다. 까까머리 소년 시절 황혼에 대한 아픈 기억을 되새겨본다. 초등학교 시절 창가에서 바라다본 노을 진 황혼의 풍경은 밀레의 만종처럼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 황혼의 모습 에이 끌려 어린 마음을 원고지에 옮기고 찬미했다.

그러나 어린 학생의 시상을 시원스레 판단하지 못한 선생님의 생각은 판이하게 달랐다. 중년의 선생님에게 황혼은 떨어지는 낙엽처럼 메말라가는 인생살이로 받아들여졌고 고단한 인생으로 풀이됐다. 결국 선생님의 무심한 평가는 어린 가슴을 멍들게 했고 당혹스럽게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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