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이야기만큼 더 좋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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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이야기만큼 더 좋은 이야기
  • 중앙신문
  • 승인 2019.10.24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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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수필가, 칼럼위원)

돈이 신의 자리에 올랐다.

물신주의, 물신사상, 돈밖에 모르는 놈, 사람 사는 데 돈이 전부가 아니야, 돈에 관한 부정적인 말들이 모두 폐기처분되었다. 돈의 위력에 의하여 이 모든 것이 말소되고 말았다.

돈에 관한 이야기가 금기시된 시대가 있었다. 돈벌이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상것들이나 하는 이야기며, 천박한 사람들이나 하는 이야기라고, 완전 무시되기도 했다.

‘88만 원, 그래도 기죽지 않는다.’

이 말이 2007년에 뽑힌 최고의 문장이었다. 하지만 돈 이야기만큼 더 좋은 이야기가 있을까.

88만 원으로 살던 그 청춘들이 정말로 기죽지 않고 살았을까.

세상의 많은 기업체의 사장들은 직원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땀을 짜낼 수 있고 수고의 대가를 얼마나 최소화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아주 오래된 발상이며 생산의 원초적 투쟁―마르크스 자본론의 기본 사상에 깔려 있는 핵심 문제이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대척점에 선동인動因의 제1 요소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실업 대란이 마라톤 경기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실업률을 줄이자고 현황판을 청와대에 설치하고 진두지휘한다지만 역부족인 모양이다. 도대체 답은 없는가? 젊은이들이 대기업에만 들어가려는 것을 욕하지만 대기업의 반 토막짜리 급료를 받고 중소기업에 들어갈 성인군자가 어디 있을까?

태국 여행을 했을 때, 가이드가 특별한 곳이라고 보여준 곳이 있다. 전깃줄이 마구잡이로 꼬이고 뭉치고, 뭉쳐져 전깃줄로 만든 농구공만 한 실타래가 허공에 떠있는 것이다. 아마 현대의 ‘고르디우스 매듭’일 것이다.

그것을 푸는 자만이 아시아를 제패할 수 있다고 한 매듭. 아무도 풀지 못한, 오로지 알렉산더만이 단칼에 베어버린 복잡성에 복잡성을 더한 혼돈의 매듭. 그 매듭이 우리나라 청소년 취업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중소기업의 급료를 대기업의 급료만큼 올려준다면 그 자원을 중소기업 사장은 어찌 구할 것이며, 국가가 지원해 준다 해도 언제까지 얼마를 지원할 것인가. 국민세금을 짜내는 것도 한계가 있을 터.

구세대는 젊은이들을 보고 “우리는 사과 궤짝 하나 놓고 살림을 시작했다. 너희는 왜 안 되니?” 한다. 할 줄 모르나, 요즘 호텔, 모텔이 옛날 여인숙이나 여관이 아니다. 옛날 셋방은 원룸으로 바뀌었다. 원룸에 화장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은 기본. 그런 곳에 살자면 보증금 몇백만 원에 월 몇 십만 원, 이정도면 흙수저들에게 만만한 돈이 아니다. 그렇다고 남들 다 그렇게 사는데, 나만 후진 여인숙을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옛날처럼 살라고 하면 그대로 살 수야 없겠느냐만 세상이 바뀐 것을 어쩌랴.

‘한 끼 2,500원… 이 청춘이 스튜핏인가요’라는 제하의 기사가 신문에 떴다. 한 끼 2,500원짜리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고 남들 한 달에 한 번씩 자르는 머리를 네 달에 한 번 자른다. 그것도 주위에서 너무 길어 1970년대 장발족 같다고 해서. 월급은 180만 원, 지출은 은행대출 상환액 40만 원을 더해 163만 원. 떡볶이, 치킨이라도 사먹는 날이면 적자다. 이런 신문기사가 심심치 않게 뜬다. 그때마다 열불이 난다.

이 나라는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나라다. 태국에서 본 엉킨 전깃줄 정도가 아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보다도 더 얽히고 설킨 나라.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어느 공연장에서 지지대가 붕괴되어 수많은 사람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그때 우리나라는 뭔가 잘못된 거라고 직감했다. 어디서 어떻게 풀 수도 없이 엉킨 나라라고 생각했다.

나라를 바로잡으려면 전 국민을 다른 공간으로 이주시켜 대한민국을 텅텅 빈 공간으로 만들고, 도로 항만 전기 전화 인터넷 고층빌딩 몽땅 규정대로, 설계도대로 다시 파고, 닦고, 다져, 짓고, 쌓아, 완전무결하게 리모델링을 해 놓고, 국민들에게 불의에 물들지 않게 원칙의 삶을 세뇌 교육해서 옮겨 놓아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 시절 어느 바닷가 야영지에 불이나 많은 학생이 죽었다. 그 학생들 중 한 어머니가 이 나라에서 도저히 못 살겠다. 국적을 바꿔 외국으로 떠나면서 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딱 한 번만 만나보고 가자고 몇 번을 찾아 갔지만 만나주지 않았다. 국가의 치부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떠나면서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던 여인도 엉망진창으로 망가지는 나라를 위해 한마디하고 싶었을 것이었을 텐데. 그 충정조차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왜였을까?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복권으로 돈 버는 사람들을 마땅치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먼저 복권을 산다. 일생동안 돈을 벌었지만 아들들에게 상속재산 벌어놓지 못한 죄를 씻자고.

복권이 당첨되려면 일단 돼지꿈이나, 똥꿈은 꾸어 놓고 봐야 한다. 그 흔하디흔한 똥꿈, 돼지꿈은 다 어디로 갔는지 1년 내내 단 한 번도 꾸어보지 못했다. 꿈을 기다리다 지쳐, 꿈 없이 복권방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복권 수십 장을 사 놓고 한 장, 한 장 꼼꼼히 뒤적이며 한자, 한 자 정성을 다해 기록하는 것을 보고 그 지극정성에 놀랐다. 가끔 지나가면서 자동으로 두어 장 사 들고 혹여 누가 볼세라 금세 나오고 말았는데, 이런 나에게 억대의 복권이 맞는다면 그들이 너무 억울할 것 같아 손을 떼었다.

전 국민이 돈벌이에 혈안이 되었다. 얼마 전 가상화폐를 국가에서 규제한다고 나섰을 때, 흙수저의 돈 벌 기회를 박탈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는데 기실 알고 보니 돈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고 한다.

세상은 어디를 가도 돈 이야기로 분분하다. 정부의 규제가 있거나 말거나 아파트 시세 차액, 역세권 재개발, 경매정보, 돈 이야기가 아니면 이야깃거리가 못 된다. 요즘처럼 돈 이야기만큼 더 좋은 이야기가 어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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