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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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전히
  • 중앙신문
  • 승인 2019.10.1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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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수필가, 칼럼위원)

난 여전히 목욕을 하다가 겨드랑이 털을 과감히 밀어 버렸다.

몇 년 전까지는 여름철에 성인의 겨드랑이에서 털을 본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 집에서도 겨드랑이 털을 보이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아들이 셋이어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이 민소매 티셔츠나 러닝셔츠를 입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늘 민소매 러닝셔츠에 팬티 차림은 바로 나다. 내 집이니 당연하다고 여겼다. 누가 온다면 마지못해 반바지를 입었다. 아이들이 아버지의 그것이라도 얼마나 역겨웠을까. 내가 봐도 그렇다.

여성의 콧속 털을 본다든가 겨드랑이 털을 보게 되면 아무리 용모가 아름답다 하더라도 역겨워 피해 가고 싶은 법이다. 남자여서 괜찮다고 버틸 일이 아니다.

보기 흉한 건 흉한 거다. 흉한 건 없애는 게 좋다. 내가 삽시간에 겨드랑이 털을 민 건 백번 잘한 일이다.

현대 여성들이 겨드랑이 털을 깨끗이 밀어낸 지 오래다. 작년 베트남 어느 공연장에서 십여 명의 여자들이 노래 부르고 춤추는 공연을 보았다. 연기는 좋은데 겨드랑이의 털을 미는 것은 몰랐던 모양이다. ‘저런! 쯧쯧’ 혀를 찼다.

겨드랑이 털은 아무리 인체의 일부라 해도 보기 민망하다. 보여지는 것이 창피한 것은 당연하다. 그런 걸 밀어버릴 줄 안 사람은 누굴까. 그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겨드랑이 털을 밀어내고 보면 보는 사람이나 보여지는 사람이나 편해진다는 걸 왜 몰랐을까.

인간은 동물이다. 따라서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털을 가지고 있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털 가진 인간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점점 탈모 인간으로 변화하면서 마지막 남은 것이 겨드랑이 털. 이것은 새끼가 부모에게서 떨어지지 않을 유일한 생명줄이다. 원숭이가 그렇듯 동물 인간의 새끼들도 부모의 어딘가 죽기 살기로 잡고 늘 난 여전히 늘어지던 게 겨드랑이 털이었으니 다른 털은 다 버려도 이 털은 분명 인간에게 필요 불가결한 털이었을 터. 따라서 여태껏 남아 있는 것이 겨드랑이 털이라는 말씀. 꽤 믿을 만한 매스컴에서 보고 알았다. 지금도 그 해석에 반대할 생각은 없다.

최근 들어 남자의 겨드랑이 털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상의를 벗고 뛰는 경기에서도 선수들의 겨드랑이 털은 보지 못했다. 수영에서, 권투에서, 보디빌딩에서 어디에서도 겨드랑이 털은 없었다. 그동안 나만 밀지 않고 다닌 건 아닌지 모르겠다.

서울 올림픽에서, 선수촌을 청소하던 아줌마들이 선수들 떠난 침실에서 다리의 털까지 깎아놓은 것을 보고 기겁을 하지 않았다던가. 다리털이 물의 저항을 받기 때문에 밀었다니. 얼마나 정밀하고 세심한지.

그러나 모든 것이 시대를 앞지르거나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

이 시대에도 겨드랑이 제모를 하지 않는 여인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보고 호기심으로 시작한 연애가 결혼까지 갔다는 말도 있다. 겨드랑이 털을 밀고 안 밀고는 당사자 호불호의 차이일 뿐이다.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없는 것이 있는 것보다는 낫다. 남성미로 돋보이는 것도 아니고 없는 야성미가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있어 봤자 목욕 자주 못하는 날엔 고약한 냄새에 찌들어 더 수모를 당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젠 남자도 앉아서 소변을 보는 세상이다. TV 토크쇼 ‘혼자 사는 남자들의 이야기’ 보고 있었는데, 누군가 “소변을 앉아서 보는 사람?” 하고 묻자 여기저기 거의 모든 남자들이 손을 들었다. 왜? 청소를 줄이기 위하여.

아내가 비데기 청소를 끝내고 주문을 하는데 우리 집 남자들이 서서 용변을 보기 때문에 비데기가 쉽게 망가지니 앉아서 용변을 보란다. 그 날부터 나는 화장실에선 여자다. 그런 걸 보면 남자가 제모를 했다고 흉이 될 것도 없다.

미투(me too)로 남자들 궁핍의 시대가 도래했다. 기죽어 살려 노력하지 않아도 시대는 남자의 여성화 재창조라는 질주가 시작된 지 오래다.

TV 면도기 광고를 보노라면 깨끗이 면도한 얼굴과 수염 덥수룩한 얼굴이 몹시 대조적이다. 아무리 보아도 면도한 얼굴이 깨끗하고 세련돼 보이고 수염 덥수룩한 얼굴에 야성미니 남성미를 붙여 당위성을 강조하더라도 흉하고 불결하게 보이는 건 사실이다.

어제 강릉을 다녀오다 휴게소에 들렀다. 20대 청년이 콧수염을 기르고 떡볶이를 먹는데 아무리 보아도 비위생적이고 더러워 보였다. 면도한 게 어느 모로 보나 좋다. 얼굴 면도는 물론 겨드랑이 털까지 밀자.

난 여전히 겨드랑이 털을 밀것이다. 맑고 산뜻한 내 모습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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