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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유감
  • 중앙신문
  • 승인 2019.09.24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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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수필가, 칼럼위원)

소설가나 시인들은 왜 자기들이 쓰는 수필은 수필이라 하지 않고 산문이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몇 차례 받은 적이 있다. 답이 궁해서 애매하게 웃고 말았다. 뭔가 답은 해야하는데 확실히 이거다 하고 내놓을 만한 답은 없었다.

그런데 ‘창작에세이’에서 노골적으로 들고 나섰다. 별 대단한 답이 나오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시큰둥한 시선으로 읽다가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 글 초두에 나온 김 훈 작가의 대답을 여기에 옮겨본다.

소설은 이 책에 나오는 글들보다는 분량 면에서 훨씬 길고 또한 여러 가지 사건들이 결합되어 우리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인 반면 수필은 대부분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작은 일들을 적어 나가는 신변잡기적인 성격을 갖는다. 이 책에 실린 산문들은 그러한 신변잡기적인 글들보다는 좀 더 질서 있고 다양한 가치판단을 적어 나가고 있는 것들에 주안점을 두어 선별하였다.

- ‘중학생을 위한 산문 50선’ 김 훈, 안도현

틀린 말은 아니다.

왜 시인, 소설가들이 수필을 써놓고도 자기 수필은수필이라 말하지 않고 산문이라고 말하는가 하는 말에 나는 나를 포함한 수필가들의 신변잡기식 글을 폭로하는 낯 뜨거운 말을 차마 하지 못하였던 것은 아닌지. 그

랬던 것 같다. 그런데 이미 ‘창작에세이’ 주간 이관희가말하고 김훈이 말한 신변잡기 운운의 수필론이 이미 거론 되었으니 감추고 숨길 것도 못 된다.

왜 우리는 이 언짢은 문단의 사시를 받아야 하는지. 언젠가 ‘월간문학’ 편집장이 이런 말을 했다.

“질 떨어지는 글은 싣지 마라. 책의 품격을 떨어뜨린다. 그렇게 아우성을 치던 작가의 글을 실으려고 보니 그의 글이 싣지 못할 질 떨어지는 글이더라.”

그때 항변한 작가들이 수필가들은 아니었는지.

혹시 우리 수필가들이 너무 쉽게 쓰고 참 잘 썼네, 내글이 제일 잘 쓴 글이라고 저 혼자 좋아하는 안일에 빠진 것은 아닌지. 수필 잡지들이 우후죽순 무분별하게 등단작을 쏟아 낸 것은 아닌지.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시나 소설을 공부하려면 문학사조-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모더니즘…들을 통달해야 하고 소설이라면 글쓰기의 오랜 노동을 감수해야 하며 세계 문학과 한국문학 전반을 섭렵해야한다. 4, 50대에 접어든 장년 또는 노년층에게는 쉬운일이 아니다. 생활의 오랜 경험 인생의 굽이굽이를 겪어 온 경험을 쉽게 쓸 수 있는 수필을 택하기를 바란다.

내가 수필 공부를 한참 열공熱工하던 시절이었다. 아주 언짢게 들렸다. 그리고 쉽게 잊었다. 그 말이 맞는 것도 같아 그냥 얼버무리고 말았다.

문학은 언제나 새로워야 하며 언제나 치열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비슷비슷하거나 똑같은 글을 쓰며 안일한 글쓰기에 목을 매고 있는 건 아닌지. 그의 글 ‘라면을 끓이면서’를 읽었다. 군에 입대해 훈련병으로 배가 고파서 쉬는 시간이면 먹는 이야기. 라면 이야기. 라면 끓이는 방법을 늘어지게 이야기하던 친구들의 말보다 더 감동적인 것도 지적인 것도 더 나은 게 도대체 뭐가 있는가. 도대체 작가가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갸우뚱했다. 아주 오래전 ‘자전거 여행’인가? 그 책 몇 페이지 읽다가 덮은 적이 있다.

그가 그의 글들을 수필 반열에 끼우지 않았길 천만다행이다.

꽤 많이 팔린 산문집이 수필가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같다. 찾아 읽었다. 순간적인 판단, 스쳐 지나가는 순간의 포착, 스냅 사진 같은 짧은 순간의 묘사. 요즘 인터넷카페, 블로그에서 흔히 쓰는 필법 같은 소묘가 돋보였다.

수필가들은 이렇게 쓰지 않는다. 오래오래 천착하고 묵히고 끓이고 녹여 한 편의 수필을 쓴다. 어찌 보면 이시대에 맞지 않는 작법인지도 모른다. 퀴퀴한 맛이 나는 된장찌개 같은 것. 거기에 비해 그는 발 빠른 행보로 시대에 어울리는 작법을 구사한다고 보아야 할까. 하여튼 최근 젊은이들의 호흡에, 입맛에 맞춘 글이다.

이것이 예술의 시발점, 참신성이다. 우리는 한참 뒤졌다. 최근 영국의 소설가 줄리언 반스의 ‘연애의 기억’에서 주인공보다 나이 스물아홉 살이 많은 파트너가 푸념한다. ‘나는 사그라진, 닳아버린 인생’이라고.

그녀와 같이 사그라진, 닳아버린 수필가로 끝날 것인가? 각성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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