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과 출세의 상징 '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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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과 출세의 상징 '밤나무'
  • 숲 해설가 원종태  mtgreen@hanmail.net
  • 승인 2023.10.11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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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태  숲 해설가
숲 해설가 원종태

| 중앙신문=숲 해설가 원종태 | 가을은 풍요의 계절이다. 넘실대는 황금물결이 그렇고 산야에 익어가는 열매가 마음을 더욱 넉넉하게 한다. 그중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있고 맛보기 쉬운 열매가 알밤이다. 밤이 익으면 가시 빗장이 서서히 열리고 애지중지 보호하던 갈색의 알맹이를 바깥세상으로 내보내며 가을이 왔음을 알린다.

밤나무는 큰 키에 넓은 잎을 지니고 낙엽이 지는 나무로 20m까지 자란다. 다른 나무들이 봄을 맞아 꽃도 피고 잎도 피우지만, 짐짓 모르는 체하다가 남 늦게 잎을 피워 양반 나무라는 별칭도 있다. 꽃은 특유의 진한 향기를 날리며 열매 맺기에 몰입한다. 개화로부터 열매를 맺고 알밤을 배출하는 속도가 다른 나무에 비해 빠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좌고우면 하지 않는 목표지향형 나무가 밤나무다.

가을이 되면 알밤이라는 성숙한 열매를 생산한다. 밤은 다른 나무에 비하면 매우 특이한 열매를 맺는다. 강한 가시로 둘러싸여 있어 범접하기 어렵다. 이렇게 중무장하고 자라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밤은 밤알 자체가 씨앗이기 때문이다. 다른 열매는 과육이나 껍질이 씨앗을 보호하고 있지만, 밤은 열매 자체가 씨앗으로 생육 과정부터 강력한 보호가 필요하다.

이러한 밤나무의 강인한 특질을 조상님들은 놓치지 않으셨다. 내 자손이 잘되는 것이 지상최대의 과제인 부모들은 밤송이처럼 엄중하게 자손을 보호하고 훈육한다. 때가 이르러 독립할 때까지 최고의 보살핌을 유지한다. 특별한 성질을 보유한 밤나무의 생멸에서 삶의 지혜를 터득한다. 그리고 그 지혜를 실천한다. 조선 대학자 율곡의 밤나무 사랑은 전설로 남아있다. 밤나무를 심고 가꾸고 숭배하며 길흉사를 막론하고 큰 행사에는 반드시 챙겨야 하는 과일이 된 데에는 사람이 배우고 실천하여야 할 덕목이 올곧이 스며있다.

밤은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진기한 열매다. 대부분 식물은 씨앗을 심으면 종자의 껍질을 밀고 올라와 싹이 튼다. 그러나 밤나무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인다. 종자의 껍질을 밀고 올라오지 않는다. 종자를 정점으로 하여 뿌리는 땅속으로 내려가고 싹은 위로 올라온다. 밤은 그 중심에 남아 튼튼한 뿌리와 건강한 싹이 잘 자라도록 마지막 순간까지 저장되어 있는 모든 양분을 후손에게 제공한다. 그리고 오랜 기간 그 중심에 열매의 흔적을 간직한다.

이러한 특징은 밤나무는 자신의 근본을 잊지 않는 성스러운 나무로 자리매김한다. 선조의 은혜를 잊지 않는 나무가 밤나무이다. 그뿐만 아니라 밤나무는 부귀의 상징으로도 중요시하는 나무다. 백성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벼슬을 암시한다. 밤송이 속의 밤알 세 톨은 각기 삼정승 배출을 염원하는 출세의 기원이 담겨있으며 조율시이[棗栗梨柿]로 불리는 것처럼 한국인 정서 속에 빼어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열매이자 교훈을 주는 나무다.

우리의 말에 신주를 모시듯 한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가장 귀하고 정성스럽게 모실 때 사용하는 대표성이 있는 용어다. 이때 신주를 만드는 나무가 밤나무였다. 조상님의 영혼을 담은 위패를 밤나무로 만드는 데에는 밤나무가 지닌 가시의 엄중함과 근본과 은덕을 잊지 않는 상징성이 내포되어 있다. 신은 언제나 공경스럽고 정성스럽게 모셔야 하는 대상이자 정성이 부족하면 가시에 찔릴 수 있음을 일깨운다.

밤나무는 우리나라 전역에 잘 자란다. 효의 상징으로, 출세의 염원을 담은 나무로, 인가 가까이 자라고 식용과 약용으로 귀한 쓰임을 받는다. '본초강목'이나 '동국여지승람', '춘추좌씨전', '삼국유사' 등 고전에도 밤나무는 자주 등장한다. 삼천리강산에 밤나무를 상징하는 밤밭, 밤나무골, 율곡, 밤섬, 율동, 과천, 등이 밤나무와 연관된 지명이며 한국인의 정서가 듬뿍 담긴 나무다.

10일 오전 9시30분께 여주시 금사면 이포리에 있는 밤나무에, 길게 늘어진 벼이삭처럼 생긴 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사진=김광섭 기자)
만개한 밤꽃 특유의 향기를 내보내며 다량의 꿀을 벌에게 제공한다. (사진=중앙신문DB)

 

숲 해설가 원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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