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 에세이]‘나무 맛있게 먹는 풀코스 법’ 읽기
상태바
[이상국 에세이]‘나무 맛있게 먹는 풀코스 법’ 읽기
  • 중앙신문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19.02.12 14:1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이상국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나무를 먹다니. 인간이 나무를 먹다니. 나무가 아무리 작다해도 새순에서 뿌리까지 몽땅 먹어 치울 수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어느 문맥에도 감을 잡을 구석은 없다. 형식뿐인 시(詩)인가. 내용이 없다는 말인가. 먼저 읽은 시인에게 물었다. 도대체 뭐라고 쓴거냐고. 아마 스치로폼이나 플라스틱처럼 과학화된 일상에서 생을 찾는 절규 아니겠냐고 답한다.

맞는 말이다.

전광석화처럼 스치는 그림 하나 - 마그리트의 ‘자연의 은총’. 나뭇잎 유선형이 새(鳥)로 변하는 그림. 보르헤스는 ‘아베로에스의 추적’에서 “잎사귀에서 새로 옮겨가는 것은 장미에서 글자를 옮겨가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지요”라고 말했던가.

이쯤에서 혼란스럽다. ‘나무를 맛있게 먹는 풀코스 법’은 도용이냐. 창작이냐, 도용은 아니다. 그럼 어떤 것일까.

누구의 말이던가. ‘모든 새로운 것은 망각일 뿐…’. ― 솔로몬의 격언을 프랜시스 베이컨이 인용한 것을 보르헤스가 인용한 것을 다시 인용한다.

따라서 모든 것은 반복 순환하는 영겁회귀의 거대한 수레바퀴. 잊혀진 것을 새롭게 재조립하고, 새롭게 만들어진 것은 어느 틈에 사라지고. 사라진 것을 다시 창조라는 이름으로 모방하는 것.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 같은 것. 기껏 기를 쓰고 시 한 편 써 놓고 보면 이미 누군가의 시 끝자락 같은 것.

김빠지는 소리지만 읽기의 힘은 그렇지 않다. 300년의 격차를 두고 똑같이 써진 글을 후대에 더욱 다양해지고 중첩되고, 풍요로워져 새롭게 반짝이니까. 요는 대를 거듭할수록 생각과 의견과 말과 느낌이 확장되기 때문이다(돈키호테의 저자 삐에르 메나르- 보르헤스).

에셔는 그의 그림 ‘종합’에서 삼림에서 한 토막의 장작을, 유전에서 기름 한 통을, 광산에서 석탁 한 조각을 플라스크 병에 담아 새로운 물질 하나를 산출한다. 이 과정을 그는 예술가의 작업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수많은 보기, 읽기, 듣기, 느낌들이 한데 어우러져 한 편의 시가 되는 것.

천재는 쉴새없이 읽고, 쓰고, 보고, 듣고, 체험하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라 나는 믿는다. 살리에리는 모짤트를 분석하고 재 분해하면서 자신에게 천부적 재능이 없음을 한탄한다. 그러나 모짤트는 살리에리의 게으름을 탓했다고 하는데.

천재성은 양적인 것을 질적인 것으로 착각한 것이란 진중권의 말을 굳게 믿는다. 질적인 것으로 믿는다면 그 순간 나는 즉시 파멸해야 하니까.

결정된 재능 앞에 천재성의 발현은 얼마나 부지런한 가가 문제이다. 양의 확대. “수천 권의 책을 읽어 에너지를 충전한 뒤, 펜을 잡는 순간부터 끝 간 데 없이 줄달음치는 글쓰기. ― 권터 그라스”

기왕에 시작한 시인이요, 수필가라면 끝장을 내야한다.

여주라는 좁은 시골 바닥을 탓하고 싶은가. 위의 시 ‘나무는 맛있게 먹는 풀코스 법’을 쓴 시인이 이천 출신이다. 왜 여주는 안 되는가. 나이 많음에 핑계를 대고 싶은가. 조선일보 2006 신춘문예 소설부분 당선자가 46년생, 나이가 60세다. 폴투갈의 소설가 주제 사라마구는 나이 60에 시작해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엄살떨기엔 아직 이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단독] 3년차 의정부시청 여성 공무원 숨진 채 발견
  • 박정 후보 유세장에 배우 유동근氏 지원...‘몰빵’으로 꼭 3선에 당선시켜 달라 ‘간청’
  • 감사원 감사 유보, 3년 만에 김포한강시네폴리스 산단 공급
  • 김포시청 공직자 또 숨져
  • [오늘 날씨] 경기·인천(20일, 토)...낮부터 밤 사이 ‘비’
  • [오늘 날씨] 경기·인천(24일, 수)...돌풍·천둥·번개 동반 비, 최대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