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 에세이]원칙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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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에세이]원칙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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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1.22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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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높은 분들이 가는 길이라 배웅할 양으로 떠나는 자리에 섰다가 권에 못 이겨 차에 올라 수인사를 한다. 각자의 인사는 판문점의 역사와 뼈아픈 조국의 이야기들이다.

차례가 되어, “6년 전 유럽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스위스에서 오스트리아로 넘어오는 국경선에 장막이나 철조망은 없었습니다. 파출소 경찰병력에 비할 군인 몇 명이 한담 중이고 검문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통화하듯 지나치며 우리들은 울었습니다.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감포의 대왕암 바닷가 풍광을 설명하면서 철조망을 이야기합니다. 동해, 서해, 남해…. 전 국토에 가시 철망을 쳐 놓은 국가가 어디에 있는가” 하고 말을 마쳤다.

점심을 먹으며 판문점에 들어갈지 못 들어갈지도 모르는데 먹는 거나 잘 먹으라는 팀장의 말을 건성으로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교육장에서 일등병 계급장이 경직된 자세로 해당자와 아닌 자를 구분하며 규정 지키기를 강조한다. 나는 아니다. 남의 이름 빌려 관광하기보다 포기하는 것이 낫다 싶어 내 이름을 적고 밀려난다. 머리 위에 독수린지 까마귀인지 검은 날개가 창공을 맴돈다. 을씨년스런 미루나무, 낙엽진 나무등걸마저 처량맞다.

JSA(공동경비구역). 1년 전 상영된 영화다. 남한과 북한 병사들의 우정(友情) 넘나듦이 발각되어 총질이오가고 몇이 죽고 정치사건으로 비화되어 진실은 묻혀 진 채 주인공이 자살로 끝나는 내용이다. 철천지원수에서 동포로, 한 민족, 형제로 시각은 변한다.

일행이 돌아 와 한 마디씩 한다. 이북 병사는 한 사람밖에 보지 못했다. 지난번하고 딴판이다. 관광지를 돌고 온 기분이다. 대통령의 햇볕정책의 효과인가. 클린턴에서 부시로 바뀌어 경직되는 대미관계…. 정작 당사자인 우리는 어쩌란 말이냐. 우리는 도대체 뭐냐. 일본인들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이 무슨 생각을 할까. 찢어진 아픔을 동감할까. 약소국의 설움을 감지할까.

나의 JSA 관광 좌절에 대한 의견도 각각이다. 원칙대로 승복해 고맙다는 의견, 그냥 결성한 사람 이름을 빌려도 될 것을 그랬다. 몇 년 전에도 대신 왔다가, 남의 주민등록 번호를 외우지 못해 도중하차한 사람의 말을 인용해 ‘잘 했다’로 귀결난다. 거짓으로 들어갔다가 발각되어 나로 인해 벌 받을 병사들을 생각하면 더 더욱 못할 짓이다.

임진강 오리 떼가 한가하다. 철조망으로 보이는 임진강은 무심히 흐른다. 6‧25 사변에도 그렇게 흘렀고, 둘째 아들이 군복무로 여기서 근무할 때도 이렇게 흘렀다. 황혼의 강물 위로 솟아난 늘어진 검은 갯벌, 갯벌 위로 세월처럼 무늬 진 물결의 흔적과 물새떼 발자국이 정겹기만 한데 철조망을 보면 한기를 느낀다. 냉전으로 긴장하던 시절, 걸핏하면 좌익으로 몰아 고문하던 상처가 아픈데, 햇볕 정책으로 동토의 땅을 데우다 숯덩이처럼 타 버려야 통일이 될까.

풀리지 않은 매듭. 프에블로호, 도끼 만행, 김신조, KAL납북, 아웅산, 동백림, 제3국으로의 탈출, 눈물의 이산가족…. 수많은 사건으로 점철되고, 이승만에서 김대중으로 이어지는 대통령의 수도 많건만 매듭은 풀리지 않고 얽히기만 한다. 엉킨 실타래는 단칼에 베어 낼 양이 아니면 원칙과 순서에 따라 풀어야 한다. 이놈저놈 고집대로 당기고 밀어 풀리기는커녕 엉키고 매듭만 더한다.

원칙을 무시한 사건들이 게이트 빅 쓰리로 터져 전국이 아우성이다. 원칙대로 차근차근 통일의 매듭을 풀어야 할 일이다.

판문점에서 원칙을 보고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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