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 에세이]자화상(自畵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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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에세이]자화상(自畵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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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1.30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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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아내 간호로 병원 생활 1주일 째다.
이웃 병실에서 목소리는 늙은이인데 우는 소리는 세 살 어린애처럼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린다. 희한한 일이다. 가관이다. 눈물, 콧물, 침 질질 흘리며 몰상식하고 천박하며 앞뒤 구분 못하는 꼴이 애늙은이다.
70대 늙은이, 저 나이 먹도록 무얼 했을까. 애로 태어나 애로 크고, 애로 자라, 애로 늙고, 애로 병들어, 여기까지 왔을까.
아니다. 늙은이 옆에 단정하면서도 쭉쭉 빵빵한 딸이 있고, 건장한 아들과 손자가 있다.

저 양반 무엇이 두려워, 왜 저 지경이 된 걸까. 어느 한 순간 생의 끈을 놓아버린 것은 아닐까.나, 죽는 날까지 저 꼴 되지 말아야지.

아내 문병 온 손님 헤아려보지 처갓집 식구, 동서들…. 모두 왔다 갔는데 내 형제만 쏙 빠졌다. 입원하기 전 동생이 찾아오겠다는 걸 그만 두라고 했다. 그래도 그렇지.
홧김에 전화를 건다. “야 오지 말랬다고 정말 안 오냐(여기서 나는 생의 긴장을 놓쳐 버렸다).” - 그 늙은이에 한 발 다가선다.

다음 날 동생들이 모였다. 눈치가 심상치 않다. 예전 같지 않다.

3년 전 공직에서 퇴직했다. 공무원만 그만둔 게 아니다. 돈벌이를 잃었으니, 보이지 않는 힘의 균형이 비켜갔고, 어쩌다 마주치는 후배들이 인사 빼먹는 것도 존경의 대상에서 끝났다는 뜻이며, ‘영양가 없는 분’이란 농담도 별 볼일 없는 사람이란 뜻이다. 사회적, 심리적, 인격적, 정신적, 삶 전체가 한꺼번에 굴러 떨어진 거다. 그 날, 퇴직하던 날. 내 모든 것이 끝났다(이제야 나를 제대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 그 늙은이에 두 발 다가선다.

내가 쓴 이 글 누가 읽고 감동할까. 역겨운 내 글 읽고 잘 썼다 격려해 주신 여러분께 눈물 머금고 감사의 큰절 올린다. 요즘 100여 편의 글을 정리하면서 유치하고 졸렬해보여 참담할 뿐인데. ― 늙은이에 세 발 다가선다.

지금 읽는 이 책, 언제 어떻게 소화되고, 유로(流露)되어 자양분이 될까. 헛된 꿈이다. ― 네 발째 다가선다.

다 왔다. 늙은이의 눈물, 콧물, 타액 속에 젊은 날들이 한 줄기 영상이 되어 떠오른다.
나의 젊은 날이 젊은 그의 날이 되었다가, 그의 젊은 날이 젊은 나의 날이 되어 DNA 나선형 사슬처럼 엉키고 있다.

어느 틈에 그의 침상에 내가 앉아 있고, 그가 내가 되어 연민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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