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 에세이]기쁨보다 슬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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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에세이]기쁨보다 슬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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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1.3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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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수필가, 칼럼위원)

승진 인사를 다닌다. 축하를 하지만 누락된 직원들을 볼라치면 미안하기 짝이 없다. 그들의 타는 속에 오죽하랴. 이번에 안 되면 나도 그만둔다고 했는데.

진급을 실감으로 느끼지 못한다. 새벽에 정종 한 병, 포 한 개, 배 2개를 들고 할아버님, 할머니, 아버님의 산소에 들렀다. 사무관이 되었습니다. 아버님께서 생전에 원하시던 집안의 경사를 이루었습니다. 기뻐하소서.

산소 주변은 새벽 안개 자욱하고, 원시의 정적이 감돈다. 음복을 하면서도 덤덤하기만 하다. 주기가 올라 가슴이 조금 트인 것밖에.
인생역정, 그것은 가시밭길이다. 피라미드 구조 속에 살아남는다는 것은 시련이다. 더구나 진급을 한다는 것은 엄동설한에 매화를 보는 심사다.

진급을 위하여 역량을 쏟아 붓는다. 남보다 더 많이, 더 열심히. 그러나 표 나지 않게, 단 한 사람의 가슴에도 못질을 말아라. 그러나 내 진급이 남의 가슴에 박히는 못이로구나.

IMF가 불어 닥칠 때, 남들은 아우성을 쳤건만 나는 미련한 곰처럼 책이나 읽고 있었다. 수십 권의 책을 읽고 일어서니, 젊은 직원들의 눈총과 밀어내기의 대안에선 연장자는 버티는 힘도 한계가 있을 줄은. 동료들이 떠났다. 진급의 가망성은 보이지 않고, 버텨봐야 몇 년이나 버티겠느냐며. 남아 있는 우리들보다 역량 있고 정직하며 더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남아 있어야 할 자가 떠나고 쭉정이들끼리 모여 쑥덕이는 꼴이다.

진급의 기회를 놓쳐버린 아쉬움과 원망은 주체할 길 없다. 방구석에서 징징거리면, 아내가 “어디 한 번 가서 따져 봐요.” 용기가 없어 그것도 못한다니, ‘이 불쌍한 양반아’ 하는 표정이다. 부끄러움과 구겨진 자존심이 엉켜 울음을 터뜨린다.

구조조정 위원으로 선정되어 회의에 참석해 인간 즐기기 작업에 들어간다. 기준 ― 잣대를 만들려니, 음주운전자, 징계 받은 자, 사생활 문란자, 지탄 받는 자등을 가려 보지만, 양심이 흔들린다.

젊은 직원들은 나이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도 못 치고 인터넷도 못하니…. “그러면 좋다. 나도 컴퓨터를 치고, 인터넷을 한다. 한 번 시합이라도 하자” 하고 항변하고 싶지만 내 자랑에 불과하고, 동년배들 괄호 속의 반란일 뿐.

해마다, 주기적으로 구조조정은 끈일 줄 모른다. 연금법 개정이 또 한 번 회오리바람을 일으킨다. 퇴직금이 턱없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더욱 공무원을 슬프게 하는 것은 조국 근대화의 일꾼이라는 긍지마저 사라졌기 때문이다. 직업 공무원제란 빛 좋은 개살구가 되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주어 박히는 동네북에, 이젠 주민들 눈에 감시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대우 받지 못하고, 진급의 가능성이 희박해지면 떠난다. “마음이 편해” 하며 돌아서는 모습이 왜 허전해 보이기만 할까.

나도 떠난다면 말린다. 다 된 밥상인데 왜 떠나느냐. 당신의 자리는 어차피 승진 케이스지 않느냐. 봐라. 우리들을 보는 남아 있는 자들의 시선을.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멸시와 수모를…. 그래도 남아 있던 날들이 좋았다.

누락된 사람이 찾아와 다짜고짜 “얼마나 잘해서 진급을 했느냐.” 따지는데, 격차가 있었던가. 용기가 가상해 보인다. 이 사무실 저 사무실 화풀이하는 그가 부럽다. 그리고 떠났다. 떠나는 심정인들 오죽하겠는가.

기쁨이 도대체 무엇인가. 슬픔이 앙금으로 쌓이는 것을.
누구의 시였던가.

‘알알이 쏟아져 멍든 복숭아/ 뱉은 씨처럼 직장에서 팽개쳐질 때/ 그리하여 몇 달을 거리에서 보낼 때 만난/ 어딘가에 부딪혀 짓무른 얼굴들’

그들을 사랑해야지. 떠나는 날과 남아 있는 날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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