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순의 살맛나는 세상]뱀의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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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의 살맛나는 세상]뱀의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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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1.3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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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에덴동산에서 뱀의 꼬임에 인류가 원죄를 짓게 되었다고 해서인지 많은 사람들에게 뱀은 혐오의 대상이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뱀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동물원에 가면 뱀의 우리에서 한참씩 떠나지를 못한다. TV에서 뱀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나오면 눈을 뗄 수가 없다. 징그러우면서도 재미있고, 흥미를 유발하니 이상한 일이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 가려면 개울에 놓인 큰 다리가 있었다. 다리 밑 돌무더기 사이에 뱀 수백 마리가 엉켜 있던 기억이 아직도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취미로 뱀을 기르는 사람들은 어떤 애완동물보다 더 예뻐하고 정을 주며, 자기 몸보다 더 길고 무거운 것을 목욕 시키고 입 맞추어 보는 사람에게 소름을 돋게 한다. 인도에서 방울뱀을 앞에 놓고 피리에 맞추어 춤을 추게 하고, 얼굴을 가까이 대는 것을 보면서 독을 빼낸 뱀일까하고 궁금해 한 적도 있다.

아침에 나가보니 개가 비단뱀 두 마리를 죽여 놓았다. 뱀을 보면 머리부터 발로 누르고 질식 시킨 다음 가지고 논다. 개도 본능적으로 뱀이 독이 있어 물리면 치명상을 입는 다는 것을 아는가 보다.

한 마리는 붉은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있는 것이고, 다른 한 마리는 녹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있는 2년 정도 자란 뱀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몸에 갖고 있는 무늬가 아름답다. 농작물을 뜯어 먹으려고 오는 고라니를 지키느라 밭가에 매어놓은 개가 있는 것을 모르고 옆으로 지나가다 변을 당한 것 같다. 두 마리 다 머리가 짓눌려서 죽었다.

양봉장 주변에는 많은 생명이 깃들어 살고 있다. 벌에게 신선하고 깨끗한 물을 먹이기 위해 만들어 놓은 연못에 수천마리의 올챙이가 맴을 돌고 있고, 각종 민물고기, 비단잉어가 헤엄치고 있다. 주변에 개구리가 지천이니 뱀도 많고, 왜가리와 백로가 진을 치고 있다. 이런 것들을 잡아먹으려고 산에서 오소리와 너구리, 멧돼지도 내려온다.

사람이 오염시키기 않은 자연에는 여러 생명이 마음 놓고 깃들며 자연의 이치에 따라 먹고 먹히는 고리가 형성되어 적당한 생태계를 유지하면서 순환되는 것 같다.

집 근처에서는 여러 종류의 뱀이 눈에 띈다. 검은 빛깔의 보호종인 먹구렁이, 비단뱀, 까만색의 머리가 삼각형인 독사와 살무사 등이다. 독이 있는 뱀은 위험해서 눈에 띄기만 하면 죽이지만, 다른 뱀들은 모두 편안히 살도록 놓아둔다. 설사 물린다 해도 독이 없는 뱀은 상관이 없으니 서로 편안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밭에 들어가거나 풀밭을 오고 갈 때면 꼭 목이 긴 장화를 신는다. 나물을 뜯으려고 산에 오르면 신경을 곤두세우고 뱀이 있는지 살피게 된다. 시골에 살고 있으니 산에 나물이나 버섯, 도토리 등을 주우러 갔다가 독사에 물려 고생한 사람들의 얘기를 가끔 듣는다.

뱀은 낮에는 사람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사람을 만나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해를 입히지 않는 것을 감지하면 뱀도 물지 않고 피해 간다. 개나 다른 산짐승과 왜가리나 백로의 눈에 띄면 가차 없이 죽임을 당하는 것은 속수무책이다. 산으로 올라가면 땅꾼들이 뱀을 잡기 위해 쳐놓은 그물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뱀이 집 근처에서 살고 있으면 그래도 걸 위험한데 산으로 올라가면 그물에 걸려 모조리 잡힐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모든 생명체가 겪어야 되는 자연의 순리는 어쩔 수 없이 부딪쳐야 하는 일이지만 사람에게 당하는 피해는 뱀에게는 가장 큰 재앙이다.

어쩌다 땅을 기어다니는 파충류가 되어 수난을 겪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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