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순의 살맛나는 세상]전원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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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의 살맛나는 세상]전원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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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3.20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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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상상 속에서의 세상은 현실의 세상과는 전혀 다르다. 농가주택에서 이루어지는 삶이나 주변 환경은 사진으로만 보면 환상적일 만큼 아름답다. 글이나 사진은 지저분하거나 힘든 것이 가려지고 아름다움만 표현되는 것 같다. 사진이나 글로 아름답게 표현된 전원주택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향수와 환상을 함께 불러다 준다.

“나이 들어 도시에서 할 일이 마땅치 않으니, 시골에 가서 전원주택을 마련해 놓고 농사나 짓고 살까.”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로부터 흔히 듣는 말이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밝은 햇빛, 한적한 생활, 아름다운 자연, 이런 것들은 누구나 즐기고 싶은 생활환경이다. 누구든 자식들을 다 키우고 열심히 살고 난 후의 말년은 전원에서 한가롭게 살고 싶은 것이 희망이다. ‘전원주택’이라는 단어에는 즐거움과 꿈, 여유가 담겨 있지만 산다는 것은 어디에서나 힘들기는 똑같다. 나이 들어 힘이 부칠 때 어떻게 시골에서 힘든 농사일을 하면서 살 것인지 경험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전원주택에 사는 일이 좋은 점도 많지만 생각과 현실은 언제나 같지 않다. 불편한 교통과 장보기, 문화의 혜택이 부족한 것,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노동, 끊임없이 돋아 나오는 잡풀 뽑기, 여름이면 극성을 부리는 곤충들, 그 외에 생각보다 많은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 살기가 힘들다.

뒷산으로 올라가는 산책길 옆에는 몇 년 전에 산을 깎아 돌 축대를 높이 쌓아서 전원주택지를 십여 군데 만들어 놓은 곳이 있다. 아름다운 야산에 만든 주택지가 길에서 많이 떨어진 산 속이라 그런지 택지를 조성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팔렸다는 소문을 듣지 못했다.

뒷산 등산로를 따라 산책을 가려면 그 택지가 못내 눈에 거슬린다. 아무리 조건을 따져 보아도 그곳에 와서 살만한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다. 젊은 사람들은 시골생활이 불편하기도 하겠지만 아이들 교육 때문이라도 들어와 살기가 어렵다. 나이든 사람은 시장과 병원이 멀고, 차가 없으면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물건을 조달하기가 어렵다.

어렸을 때는 산이 국토의 70%나 되고 농토가 적어서 우리 국민이 이렇게 힘이 없고 못사나 싶어, 산을 모두 뭉개서 논밭을 만든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야산만이라도 농지를 만든다면 가난한 사람이 다 없어질 것 같았다. 바닷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갯벌을 메워 우리나라의 지도가 좀 더 넓게 바뀌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이 들어 세상에 대한 눈이 조금은 떠지고 자연은 자연대로 보존을 해야 되는 이치를 깨달으면서 자연에 손을 대는 것에 거부감이 인다. 이제는 어렸을 때 생각하던 대로 산도 마음대로 깎아서 사람들이 편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되고, 갯벌도 마음대로 막는 재주가 생겨 좋아져야 할 텐데 생태계의 파괴가 무섭게 다가오니 그 행위가 더 잘못된 것임을 안다.

동네 주변에 생기는 골프장 때문에 넓은 면적의 산이 헐벗고, 보기 흉한 몰골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 괴롭다. 몇몇 사람의 이기심 때문에 산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 생물들에게 피해를 주고, 샘의 줄기를 막고, 바람과 구름, 햇빛까지도 노하게 하여 재앙을 가져오는지 이제야 깨닫게 된다.

골프장이 생기니 인근 농가가 음식점으로 변하고, 농사짓던 사람들이 장사하는 사람들로 바뀌면서 인심도 같이 바뀌어 가고 있다. 사람이 모이니 퇴폐적인 시설도 늘어나고 바람직하지 않은 쪽으로의 변화에 씁쓸한 생각이 든다. 깊은 산 속 아무도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인적이 없는 곳에도 커다란 펜션이 세워지고 이제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땅을 볼 수가 없을 만큼 집들이 들어서고 있다. 땅이 자꾸 덮여 가니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것 같다. 인구가 늘어 이런 상태가 끊이지 않고 지속되어 땅을 덮어 땅이 숨 쉴 틈을 모두 없애버려서 이 대로 나가다가는 지구가 폭발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는 중압감에 두려움까지 인다.

발전을 한다는 의미에서는 바람직할지는 모르지만 자연이 훼손되어 가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다. 요즘 도시인근 시골에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시야가 가려져서 산을 보기가 어렵다. 차를 타고 지나다니며 즐기던 경치를 고층아파트가 차단하여 즐거움을 잃게 되어 사는 일이 점점 재미가 없어진다. 도시가 분주하고 복잡한데도 삭막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이 들어 은퇴한 후 딱히 할 일이 없어져서 노후를 보내기가 힘들어서일 것이다. 전원생활에서는 생명이 움트는 환희를 보며, 손수 가꾸는 식물이 자라고 열매를 맺는 즐거움, 맑은 공기와 햇빛, 바람과 흙이 전해주는 신선한 메시지들을 감지하며, 자연과 벗하고 사계의 변화를 즐길 수 있는 생활이 있어 활력이 생긴다.

한편으로 누구나 꿈꾸는 전원주택이란 것이 논밭과 산을 침식해서 농토를 줄어들게 하고 동식물의 서식지를 빼앗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도시사람들은 전원주택에 사는 것에 행복하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지만, 농사를 지어도 씨앗 값도 안 나오고 힘들며 교통이나 문화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실망을 할 때도 많다.

누구나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꿈이 없다면 삭막한 사막을 걷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느 정도 일생 중에서 할 일이 끝났다고 생각되어질 때 전원생활을 생각해 보는 것이 제2의 인생을 시작해 보는 도약이라 할 수도 있으니 필요하다는 생각은 든다.

전원주택에서의 삶은 환상만 가지고는 안 된다. 깊이 생각해 보고 여러 가지 이유에서 바람직하다는 결론이 났을 때 선택을 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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