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신문=중앙신문 | 여름철 간식거리로는 복숭아, 참외, 수박 같은 과일을 빼면 옥수수 만 한 게 없다.
가난한 시골에서 도토리, 칡뿌리와 함께 여름철 양식이 되고, 지금도 일부 지역이나 북한에서는 주식으로 대접 받는 정도이다.
풋풋한 이파리를 주렁주렁 매달고 여름철 땡볕을 이겨내면서 떡하니 버티어 서 있는 옥수숫대는 마치 밭을 지키는 파수꾼 같다. 봄철 가뭄과 잡초들의 괴롭힘을 이겨내고 꿋꿋하게 반평생을 살아온 옥수수, 가난한 농부의 반려자이다.
밭둑 외진 곳이나 잡풀 사이에 아무렇게나 심어도 옥수수는 잘 자란다. 동요에 나오는 것처럼 기찻길 옆이라 시끄러워도 끄떡없다.
반듯한 외모에, 마치 군인들이 삐딱하게 멘 소총 같이 삐죽한 옥수수, 그 털은 옛날 장군들이 휘날리던 수염 같다. 사관학교 생도 같이 질서정연한 옥수수는 그 겉모습이 수려하다.
겹겹이 싸고 있는 껍질을 벗기면 드러나는 옥수수의 싱싱한 속살, 마치 하모니카 같다. 먹을 때도 하모니카를 불듯이 양쪽 손으로 잡고 한 알 한 알 맛을 느끼며 떼어 먹는다. 간혹 점잖은 자리에서 알갱이를 손으로 따서 먹기도 하지만 역시 옥수수를 먹을 때는 한 입 가득 물고 뜯어 먹어야 제 맛이다.
옥수수를 먹을 때의 미각은 달콤하고 오묘해서 첫 사랑의 맛과 견줄만하다.
입속이 달콤하고 씹히는 맛이 달콤하고 가슴이 달콤하다. 여름철 먹을거리로 옥수수가 으뜸인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된다.
한 소쿠리 쪄 놓고 식구가 둘러 앉아 몇 개씩 먹어도 물리지 않는 건 역시 옥수수뿐이다. 설익은 옥수수는 설익은 대로 달고 맛있다. 오히려 더 맛있다.
오래전 강원도 지방에 갔을 때 올갱이국수를 먹어 본 적이 있다. 한창 시장하여 허겁지겁 맛을 음미할 틈도 없이 한 그릇 해 치웠는데, 올갱이국수 원료가 옥수수라는 걸 안 건 몇 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옥수수로 빚은 탁주는 쌀이나 밀가루로 빚은 술보다 맛이 구수하고 독하면서 진하여 여운이 오래 남는다. 강원도 지방을 여행할 때 무더운 여름철 산속 개울물에 담가 두었던 옥수수막걸리를 마시던 기억은 지금도 입맛을 돋운다.
간혹 잡종이 되면 얼룩옥수수가 되는데, 점점이 박힌 검은 점은 누가 그려 놓은 것 같이 바둑판 바둑돌을 닮아 색깔의 대조를 이룬다.
겨울철이 되면 어머니는 말린 옥수수에 쌀을 섞어 튀겨 오셨다. 구수한 냄새, 고소한 맛, 엿에 묻혀 주시면 우리 형제들은 밥 먹을 생각도 없이 그것만 먹어 댔다.
옥수수는 먹을거리가 또 있다. 옥수수를 모두 따고 홀로 서 있는 옥수숫대는 아이들의 더 없는 간식거리다. 중간쯤 옥수숫대를 잘라 껍질을 벗기고 씹어 먹으면 달콤한 즙이 나와 한 없이 먹었다. 어느 때는 수숫대를 옥수수로 잘못 알고 동강이를 내어 먹다가 어른들에게 들켜 혼나는 일도 있었다. 어릴 적, 누구 옥수수가 더 큰가, 누가 빨리 먹나 동무들과 내기를 하며 저녁 한 때를 즐기던 일은 옛날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껍질을 하나하나 벗기고 드디어 옥수수 알맹이가 수줍은 얼굴을 드러낼 때, 여인의 환한 웃음을 보는 것 같다. 꾹 참았던 시련과 한을 한꺼번에 분출하고 드디어 새 세상을 만끽하는 여인의 환희, 옥수수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불평, 불만을 겹겹이 차려 입은 옷 속에 감추고 인고의 세월을 보내는 여인이 연상되어서인가.
올 여름도 밭둑에서 가뭄을 이기며 꿋꿋하게 자란 옥수수를 손녀, 손자와 둘러 앉아 할아버지 어렸을 적 이야기를 곁들여 들려주며 맛있게 먹었다.
그 녀석들, 나이가 들면, 여름방학 때 시골집에 내려와 과일이며 옥수수 먹던 걸 기억이나 할까. 하래비가 그토록 저희들 사랑한 걸 기억이나 하면 오죽 좋을까.
여름에는 옥수수가 있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