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억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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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억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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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8.28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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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수필가,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1읍, 2면 25개리 마을에 약 1만 1천명이 바글대며 사는 곳, 유치원 일곱 곳, 초등학교 5 개교, 중학교 4 개교, 한군데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바다에 나가 어업을 하고 산비탈 척박한 땅에 곡식을 일군다.

또 틈틈이 여섯 곳의 절과 38개소의 교회, 두 곳의 성당에서 불공과 예배를 드린다. 일과 생활이 비좁은 곳에서 이루어지는데, 면적은 여주시(602㎢)의 약 8분의 1인 73㎢. 이곳에 5천대나 되는 자동차가 있다니 믿기지 않는다.

급경사와 단애(斷崖)사이로 해안 절벽을 따라 꾸불꾸불 아슬아슬하게 뚫린 도로는 우리네 시골 농로만큼도 안 된다. 섬을 한 바퀴 도는 둘레 길은 지금까지 개통된 거리가 73.5km.

울릉도. 500톤급 여객선에서 처음 바라본 기암괴석, 잔잔한 물결을 받아들이는 해안선, 자연미의 극치란 이런 것이 구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신비롭기까지 하다.

지금까지 보아 온 섬들 중 이렇게 특징적이고 독보적인 곳을 본 적이 없다. 자연의 힘이 인조조각이나 마술로 만드는 어느 것보다 견줄 수 없다는 것을 웅변한다.

깎아지른 바위산은 고개를 젖히고 올려다보아야 정상이 보이고 곱게 물든 단풍은 섬 의 볼거리에 하나를 더한다.

매일 TV 일기예보에서 콩알만 하게 보았던 울릉도를 가보자고 벼른 건 벌써 몇 해. 드디어 동네 친구들이 농사일을 끝내고 조금 한가한 틈을 내어 부부동반으로 10명이 강릉항에서 배를 탄 게 11월 5일 아침 8시. 세 시간쯤 걸려 울릉도에 닿고, 한식으로 점심식사를 한 후, 곧 타고 온 배를 다시 타고 독도로 향한다. 울릉도에서 87.4km 떨어진 나라의 맨 동쪽에서 침략자 왜적들을 지키며 우뚝 솟은 바위섬 독도는 그렇게 자랑스럽다.

독도에는 주민, 경비대원, 공무원 등 40여 명이 상주한다는데, 풍랑 때문에 배를 대지 못하여 경비원들에게 수고한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먼발치에서 사진을 찍으며 아쉬움을 달랜다.

다음 날 아침, 중형버스를 타고 기사의 안내를 받으며 나리분지까지 서서히 달린다. 길이 좁고 경사가 급하니 빨리 달릴 수도 없다.

14개의 터널(육지의 산간 터널과는 개념이 영 다르다. 해변 바위 길에 길을 내다보니 원형을 살리고 굴을 뚫었다)을 지나고 3개의 다리를 건넌다.(다리도 물위에 건설한 것이 아니고, 땅위에 바위와 바위를 잇는 육교이다) 공사를 할 때, 인부들이 꾀를 부렸다. 화가 난 감독관이 “일을 ‘할랑교’ ‘말랑교’ 빨리 합시다” 라며 독려 했다. 정신을 차린 인부들이 일을 잘 끝내고 감독관을 향해 “보소 ‘우짤랑교’”하였단다. 그래서 다리 이름이 첫째는 ‘할랑교’ 둘째는 ‘말랑교’ 셋째는 ‘우짤랑교’ 라고 기사가 웃긴다.

버스기사가 자기 자랑을 한다. 울릉도에서 버스운전을 20년 넘게 하였는데, 딱지를 한 건도 안 떼었다고. 길이 좁아 빨리 달릴 수 없고 도로에 신호등이 없는데, 위반을 하려야 할 수도 없을 것이고 이 좁은 바닥에 무슨 교통경찰이 필요하냐고 되받았더니 그래도 가끔 딱지를 떼는 운전자가 있다고 우겨댄다. 신호등이 딱 두 개가 있었다.

해안도로 터널이 1차선인데 언제 반대방향에서 차가올지 몰라 적색, 청색 신호등을 달았다. 이런데 라면 나도 영구 모범운전자 반열에 오를 것 같다.

나리분지는 울릉도에서 유일한 평야지대다. 남북거리와 동서거리가 비슷하게 1.5~2.0km인데 농가도 있고 관광객을 상대하는 술집도 있다.

강원도 어느 지역에 조껍데기 막걸리가 있던데, 이곳에는 씨껍데기 막걸리가 있다. 글이 아닌 말로 부르자면 좀 망측 하달까. 천궁 씨로 빚은 술 한 되 1만 원, 더덕무침 한 접시가 2만 원인데, 더덕은커녕 도라지 냄새도 안 난다. 우스개로 무를 썰어 놓아도 이 보다는 좋겠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 한다. 좀 비싸지만 그러려니 한 대포 한다.

울릉도에서의 즐거움과 행복은 여기까지.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 6일 날 출항하려던 계획은 취소되었다.

이튿날부터 3일간 비바람이 치는데 밖에도 못 나가고 방안에서 TV로 일기예보만 기다린다. 풍랑이 2~4m면 배가 다닌다는데 터미널을 가보아도, 해양경찰서를 가보아도 기상청 핑계를 대니 1박 2일 일정이 7박 8일로 늘어났다.

갇혀있는 울릉도의 밤은 빗소리, 바람소리에 나그네 잠을 설치게 한다. 현지인들은 한 번 풍랑이 일면 일주일은 가야하니 느긋하게 울릉도 풍광을 즐기라고 달래며 5월부터 추석 전후까지가 적기라고 귀띔한다.

고대하던 관광회사 안내원의 전화가 왔다. 12일 12시 30분에 출항을 하니 준비 하라고. 일행은 전역하고 고향 가는 병장의 심정이라고 들뜬다. 여기 저기 연락을 하며, 짐을 챙기는 아낙네들의 손놀림이 번개 같다.

해안의 갖가지 명승, 태하 마을의 성하신단(聖霞神壇), 태하 모노레일과 등대, 성불사의 마당 석불, 봉래폭포,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내려다보는 안개 낀 동해바다, 집집마다 널려 있는 오징어, 뱀, 공해, 도둑이 없는 3무, 향나무, 바람, 미인, 물, 돌이 많다는 5다의 기억을 뒤로 하고 드디어 예정보다 한 시간 늦게 배가 떠난다.

울릉도. 모든 게 좋긴 한데, 그곳에 가려면 일기예보만 믿지 말고 풍랑주의보를 잘 살펴야 한다고 이야기 할 것이다. 7박 8일의 손익계산은 내 머리가 아둔하여 답이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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