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 고민해보는 생각 한 꼭지] 라일락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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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 고민해보는 생각 한 꼭지] 라일락의 눈물
  • 시인 염필택  ypt0406@hanmail.net
  • 승인 2023.01.1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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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필택 시인
시인 염필택

| 중앙신문=시인 염필택 | 수수만년 동안/ 북한산 자락에 뛰어놀던 수수꽃다리/ 코쟁이 손에 보쌈당해 끌려가서는/ 바다를 건너고 환골탈태 강요당했다네// 반세기 만에/ 화냥년이 되어 돌아온 미스 킴 라일락/ 향기 짙어진 그녀의 향내 맡으려면/ 비싼 로열 티 꼬박꼬박 내어야 한다네// 수수꽃다리는 간 곳 없고/ 라일락만 눈물 같은 향기를 흘리누나/ 미스 킴 라일락 꽃그늘 아래/ 강요하네! 주둔비를 더 내놓으라고... <미스 킴 라일락의 비애/ 염필택/ 2020>

4월이면 사람들이 그 향에 취해 대표적으로 좋아하는 꽃이 라일락일 것이다. 나 또한 라일락 향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하지만 무턱대고 좋아만 할 수 없는 께름칙하고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왜일까?

본래 라일락은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식물로서 1947년에 북한산에서 야생의 털개회나무(수수꽃다리) 종자를 채취해 미국으로 가져가 원예종으로 개량한 뒤 붙인 이름이다. 그것도 미국인의 비서였던 여성의 성을 따서 미스 킴 라일락으로 변신하였고, 이제 우리가 묘목을 사려면 우리도 모르게 사용료(로열티)가 포함된 서글픈 현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어찌 라일락뿐이겠는가!

우리가 미처 신경을 못 쓰거나 아니면 우리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무관심 속에 우리도 모르게 반출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도난(?)을 당하고는 역으로 사용료를 물어야 하는 어이없는 일을 겪어야만 하는 것이 많을 것이다미국은 일찍부터 국가적 차원에서 전 세계를 망라한 식물 종을 수집하여 방대한 물량의 표본을 스미소니언박물관에 소장하고 있고, 또한 영국 왕립식물원의 종자은행은 현재 세계 최대규모인 3만 종, 20억 개 종자를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머지 선진국들도 경쟁적으로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우리의 실정은 과연 어떠한가우리의 것이라면 깔보고 우습게 여기는 풍조 하에 효율성 및 경제성만 앞세워 스스로 도태시켜버리고 없애버리는 데 앞장서 왔던 것은 모두 잘 아는 사실이다. 우리가 잡초라고 하찮게 여기던 매듭풀은 미국으로 건너가 개량을 거듭한 결과 커먼 레스페데자(common lespedeza)’로 당당히 변신하여 가축사육에 단백질 주공급원으로써 훌륭한 목초 역할을 해내고 있지 않은가! 아마 목초로 쓰고자 다시 도입하여 재배하려고 한다면 막대한 대가(代價)를 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가 즐겨 먹고 있는 청양고추마저도 외국회사에 거금의 로열티를 물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경제성만 따져 효율성 및 생산성 기준에 맞지 않으면 토종을 모두 가져다 버린 부지기수의 예를 이루 다 어찌 이야기하겠는가?

이것은 수천 년에 걸친 외세의 위협 속에 배태된 사대주의적 사고에 물들어 자신의 것을 업신여기는 안 좋은 습성을 가지고 살아온 일면도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꽤 우리의 토종이 남아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나 요즘 토종이라고 내세우는 것들에 대해 약간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오늘날 유전공학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고 국가의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유전공학이 주목받으며 국운을 걸다시피 한 국가 간에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유전공학이 발전할 수 있는 터전이 원원종이라는 가장 순수한 토종이 있어야 함은 유전학을 조금만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수긍하게 될 것이다. ‘원원종이라고 함은 원종 중의 원종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찍이 네덜란드는 자국이 원산인 젖소품종 홀스타인의 원원종을 네덜란드 국가 가치보다 높다고 평가했다는 소식도 들은 바가 있다. 이탈리아 원산인 산란계의 대명사 레그혼종도 마찬가지이다. 즉 모든 국가가 원원종은 절대 반출을 금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에 제공하는 원종이라는 것은 1대 잡종에 불과하다.

과연 우리나라는 원원종을 몇 종류나 보유하고 있느냐 하는 질문에 대답조차 궁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다른 나라의 생물 종을 수집하기는커녕 우리의 생물 종 파악 및 통계조차 어느 정도 정리되어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2010년에 와서야 생물다양성협약인 나고야의정서가 통과되어 생물 주권을 보호받게 되었고, 그것마저도 우리나라는 2017817일에나 발효했으니 그 무관심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늦었지만, 우리나라도 생물 다양성을 풍부하게 보전하여 지속할 수 있게 이용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구현한다는 비전으로 2014년 제3차 국가생물 다양성 전략을 수립하였다.

조류 인플루엔자 치료제인 타미플루는 중국의 토착 식물인 스타 아니스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만들었다. 그런데도 타미플루를 개발한 제약회사는 천문학적 이윤을 얻었으나, 정작 중국은 단 한 푼도 얻지를 못했다는 사실에서 생물 주권 수호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매우 크다. 영국의 밀레니엄 종자은행 스미스 원장의 말을 빌리면 식물 종자에 인류의 미래 생존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작은 씨앗 하나가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라고 했듯이 이제부터라도 이름 모를 풀 한 포기에도, 작은 곤충 한 마리에도, 애정이 어린 시선과 관심을 기울여야 함을 우리는 라일락의 예에서 절실히 느꼈을 것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됨을 깨달았을 것이다.

청양고추마저 막대한 로열티를 물고 있고 현대판 환향녀가 되어 고향 땅인 우리나라에서조차 미스 킴 라일락이라는 생뚱맞은 이름을 붙이고 서 있는 수수꽃다리를 바라보아야만 하는 현실에 만감이 교차한다하찮은 작은 종자에서 인류생존이 좌우될 것이라는 엄중한 사실 앞에 우리는 어느 때보다 겸허한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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