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수와 함께 고민해보는 생각 한 꼭지] 기회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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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 수와 함께 고민해보는 생각 한 꼭지] 기회의 나라
  • 시인 염필택  ypt0406@hanmail.net
  • 승인 2022.11.1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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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필택 시인
시인 염필택

| 중앙신문=시인 염필택 | 흙수저 물고 나와 눈물로 지샌 세월

새벽에 눈을 떠서 한밤중 야자까지 삼 년간 고교생활 죄수의 수형생활 학자금 대출로 겨우 거머쥔 대학 졸업장 컵밥에 쪽잠 자며 취준생 수삼 년에 빌려온 정장 한 벌과 빛나는 검정 구두 신고서 골백번 면접시험 치르지만 들려오느니 낙방 소식 깨려고 바둥대나 깰 수 없는 유리 천장 넘으려 애를 쓰나 넘지 못할 높은 장벽 금수저 출신 신흥귀족 그들만의 철옹성 서글픈 삼류인생 비정규직 떠돌이 흙수저로 태어난 죄 서럽고 원통 코나 덧없이 흘러간 청춘 돌아보니 서럽네 높이 날아 보려 시간 쪼개 아등바등 남은 건 꺾인 날개 신용불량 굴레뿐 천 길 위 한강 다리 끝자락에 선 젊은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데 아서라, 너 죽어 저승길 재촉하여 떠날 때

너 낳고 미역국 먹은 이, 어찌 살란 말인가!

<시조/흙수저의 비애/염필택/2020>

요즘 많이 회자하고 있는 단어 중의 하나가 흙수저 금수저일 것이다. 금수저란 부모의 재력과 능력이 너무 좋아 아무런 노력과 고생을 하지 않음에도 풍족함을 즐길 수 있는 자녀들을 지칭하고, 흙수저란 그 반대의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즉 출생단계부터 신분이 정해진다는 자조적인 의미가 저변에는 깔려있음을 알 수가 있다.

과거의 신분제 사회에서는 출생과 신분이 모두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나 근대로 넘어오면서 피지배계층의 희생과 인내를 통한 투쟁의 결과로 얻어낸 가장 큰 성과물은 신분제의 타파였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초기 야경국가 단계에서 자유와 기회의 최대한 부여가 국가의 기본임무로 여기다 보니 재빠르고 능력이 있는 자들에게 부의 편중 현상이 심화하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데서 탄생한 것이 케인즈의 수정자본주의적 발상이었을 것이다.

간단히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동학혁명 시기쯤에 계층 간 갈등의 최고조기를 이루다가 일제의 침탈로 말미암아 계층 갈등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 후에 일제 말기부터 좌우익이 등장하고 이념의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며 좌익에서는 계급투쟁 사상으로 무장한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북한 정권이 탄생하였고, 남쪽에서는 미국과 이승만 정권의 야합으로 인하여 민족정신 바로 세우기 및 친일파 청산 작업은 흐지부지된 나머지 친일파들이 득세하게 되었다. 과거 일본에 협조한 대가로 얻은 기득권과 막대한 부를 이용하여 새로운 부르주아 계층을 형성한 부류와 1960년대 경제개발이 시작되면서 고도성장의 과실을 약삭빠르게 가로채고 복부인, 부동산 투기로 대변되는 일명 벼락부자가 된 또 하나의 부류가 한국의 금수저 계층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반면에 일제에 협조하지 않아서 탄압당하며 가지고 있던 부마저 빼앗기고 떠돌았던 애국 세력 및 사회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 및 변신을 못 했던 부류가 대부분 흙수저 계층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금수저 계층은 경제발전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던 과거의 정권들과 협조하며 온갖 편리와 특혜를 누린 결과 엄청난 부의 축적을 가져왔고, 그 과정에 편승 못 했다 하더라도 경제발전의 그늘을 효과적으로 이용한 약삭빠른 계층들이 벼락부자로 둔갑하게 되는 과정에서 흙수저 계층은 노동력을 수탈당하고 정당한 보수는 못 받으며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심화로 더욱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야 했고 지니계수는 점점 커지며 외화내빈의 악순환을 거듭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바로전태일 열사사건이 대한민국의 치부를 드러낸 대표적인 사건이며 그 불합리성을 웅변으로 토하고 있다 할 것이다. 그 이후에도 끊임없는 계층 간의 갈등은 계속되어왔고 날로 심해지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총체적인 경제 수준은 향상되어 세계 경제를 선도하는 국가 그룹에 합류하였으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흙수저들의 비애는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고 있다.

한때 오렌지족으로 대변되는 먹고 노는 금수저 계층이 사회문제를 일으켜 눈살을 찌푸리게 한 데 반하여 흙수저로 태어나서 비록 절대적 빈곤은 벗어났는지 모르겠으나 엥겔계수를 신경 써야 하는 처지가 되어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져만 가는 현실에서 과연 행복을 느낄 수가 있었겠는가?

나름대로 잘살아 보겠다고 열심히 노력하고 코흘리개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학원 수강 및 야간 자율학습 등 죄수의 수형생활 못지않은 고통을 감내하며 대학에 들어서니 엄청난 등록금에 신종 우골탑을 탄생시키며 학자금 융자까지 받아서 겨우겨우 졸업장을 받아드나 고학력 인플레로 대졸자는 넘쳐나고 직장은 한정되어있는 데서 취업 전쟁은 이미 예정된 길이었다. 거기다 들려오는 유명 정치인의 자녀가 특혜취업, 기득권층의 고용세습 운운하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다리의 힘이 풀릴 수밖에 없는 것이 흙수저 출신의 운명이다.

일부 기성세대는 눈높이가 높아서 그런 것이라고 몰아붙이지만 흙수저 계층일수록 계층상승에 대한 열망에 비례하여 주변에서 본인에게 쏟아지는 기대치가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쉽게 눈높이를 낮출 수 없는 진퇴양난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대여 받은 단벌 정장 걸쳐 입고 포기를 모르는 도전은 계속되나 거대한 기득권층의 높은 장벽과 유리천장은 무너지거나 깨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거듭되는 낙방통지서의 좌절감만을 맛보는 것이 흙수저들의 예정된 길인 것이다. 결국은 컵밥을 입에 물고 보내온 세월에 쫓겨 나중에는 비정규직으로 내어 몰리고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다가 꽃다운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는 슬픈 사연을 심심치 않게 대하게 되는 현실에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일까 되묻게 된다.

대한민국이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는 길은 무엇이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할 수 있다.

우선 고등학교 입시 단계부터 소질과 능력에 맞춰 철저히 기능인력 육성코스와 학문연구로 나누는 인재 양성 체제를 갖추어 미리부터 걸러내고 철저한 교육내용과 지도로 장래를 보장해주는 싱가포르식 입시제도의 도입을 우리도 생각해 봐야 한다. 어중이떠중이 대학을 향해 단거리 경주하듯 내달리는 현 체제는 태생적으로 고학력 인플레를 부추기는 문제점을 안고 시작하는 것이고 입시전쟁과 취업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또한, 학력별 임금 격차, 남녀 차별 등 갖가지 독소적 요소를 개선해 나아가고는 있지만, 더욱 개선에 박차를 가하여 고학력 인플레 현상을 근원적으로 차단해야 할 것이다.‘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 했듯이 수수방관할 것이 아니라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모두가 마음을 합쳐 개선하려 노력하면 못 이룰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청산할 것은 과감히 청산하고 개선할 것은 일관된 정책 아래 관심과 인내로써 개선하려고 노력한다면 계층으로 나뉜 슬픈 현실을 딛고 대한민국을 기회의 땅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삼포세대로 대변되는 젊은이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를 되돌려줘야 하는 것이 기성세대의 책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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