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은 장승의 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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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은 장승의 땅이었다
  • 한정규 서예가  comneti@naver.com
  • 승인 2022.10.04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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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규 서예가
한정규 서예가

판소리 중에 변강쇠타령(가루지기타령)이 있다. 변강쇠가 경상남도 함양 땅에 살면서 땔나무를 하기 귀찮으니까 길가의 장승을 뽑아 땔감으로 썼다. 함양 장승이 노들 선창에 있는 대방 장승을 찾아가 원통함을 호소하자 전국의 장승을 모이게 했다. 지지대고개에 있던 지지대 장승도 장승 회의에 참석했는데 회의에 참석한 장승의 행렬이 대방동, 신림동, 시흥 읍내, 안양 읍내, 지지대고개까지 빽빽하게 들어찼다는 사설이 나온다. 지지대 장승은 경상도 71, 전라도 56관을 총괄하는 막강한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변강쇠타령은 신재효가 사설을 정리한 것으로 송만재가 1843년에 쓴 관우희라는 작품에 판소리 12마당 중 하나로 나온다. 판소리에 등장하는 장승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일까? 아니다. 이 당시의 장승이란 오늘날의 교통표지판과 같은 역할을 했다.

태종 14(1414) 기록에 도로의 식수의 멀고 가까움을 나타내기 위해 척()으로 30()를 계산하여 대후를 설치하도록 하였고, 10리 단위로는 소후를 세웠으며, 경국대전에서는 여기에 그 이수(里數)와 지명을 새겨 넣도록 하는 한편 대후의 설치와 함께 역을 두기도 하였다고 했다.

성현의 문집인 용재총화에는 말고삐를 나란히 하여 이야기하다가 장생을 보면 반드시 하인으로 하여금 이수(里數)의 원근을 자세히 보게 하고’, 무오연행록에는 ‘30여 리를 지나 오대자에 이르니 이쯤에서부터 지계패라 하는 것이 있는데, 우리나라 장승과 같은 것이다’, ‘계산기정에 연도에 있는 읍의 정참은 언제나 장승에 적힌 것에 의거하나, 그 나머지 동리는 다 알 수가 없다’, ‘이곳에서부터 목패가 있는데 그것은 경계를 나타내는 표시로 우리나라의 장승의 경우같이 길의 원근을 표시한다’, 봉사일본시문견록에 ‘10리마다 흙으로 높이 언덕을 쌓고서 몇 그루의 나무를 심고, 곁에는 돌기둥 하나를 세워서 여기부터 동쪽은 ㅇㅇ고을의 영지라고 크게 새겼고, ··북도 이와 같이 새겼으니, 우리나라의 10리 장승과 같은 뜻이다’, ‘길가에 장승이 있으니 응당 관문에 가까움을 기뻐하리로다라는 한시도 있는 등 여러 기록을 보면 조선, 중국, 일본이 이정표로 장승을 세웠음을 알 수 있다.

판소리 적벽가에는 장승 타령이 있다.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참패한 후 길가에서 장승을 만났는데 상대방의 장수로 알고 깜짝 놀랐다는 사설이 나온다. 신하들이 화룡도까지 거리를 나타내는 리를 표시한 장승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장승 명문. (사진=한정규 서예가)
장승 명문. (사진=한정규 서예가)

장승이란 길가에 세워져 현재 위치의 지명, 이웃 마을의 지명과 그곳까지의 거리와 방향을 표시한 순수한 이정표였고 신앙의 대상이 아니었다. 장승은 대후, 소후, 후자, 장정, 단정, 장승, 장생, 장성 등으로 표현되었다. 1884년 우편제도 도입과 1895년 역참제도가 폐지되면서 자연적으로 이정표로서의 장승이 소멸해 갔는데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했던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 장승으로 돌변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은 법수, 장신으로 불렸었다. 조선 시대에 장승이 세워져 있었던 곳인 장승배기(장승백이)1200여 곳이 조사되었다. 많은 곳에서 장승축제를 하고 장승제를 지내고 있는데 길가의 도로표지판에 제사를 지내는 격이다.

정조대왕은 1789년부터 1800년까지 13차례 수원행차에 나섰다. 1794년에 시흥대로를 만들어 1795년 원행부터 이 길을 이용했다. 수원의 관문인 지지대고개부터 현륭원 입구까지 원행길의 이정표로 장승과 표석을 세웠다. 1831년 화성유수였던 박기수가 편찬한 화성지 필로(蹕路) 편에는 지지대고개부터 5리마다 일용리, 기하동, 상류천, 재간현, 만화현, 건장동, 옹봉, 유첨현, 안녕리, 능원소동구까지 11곳에 장승(長栍)을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성록에는 도로에는 5리마다 장승을 세워서 노정을 표시하고’, ‘도로의 경계를 정하고 장승을 세우며’, ‘도로를 측량하고 장승을 세우며’, ‘동구의 장승을 세운 곳부터 섬암 및 방축로까지의 길을 닦고 눈을 치우는 일은’, ‘15말은 이번에 재실 동구의 장승 뒤 대왕교 동쪽에 심었다등 장승을 언급한 내용이 나온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화성전도 6폭 병풍에는 지지대고개에 지지대 장승을 그렸다. 한글 정리의궤 권34 정사 봄 원행(1797129일부터 21) 편에 장승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1797130일 화성행궁에서 현륭원을 방문하던 정조대왕은 안녕리에 이르러 행 우승지 이익운에게 하교하기를 안녕리(安寧里)의 이름은 근래 이 마을을 통칭하니, 장승을 안녕리로 쓰도록 화성유수에게 이르라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베를린국립미술관이 소장한 장승에서 명문을 확인할 수 있다. 자인천관문십리 지명성현 서거제물포이십리 동북거경성육십리(自仁川官門十里 地名星峴 西距濟物浦二十里 東北距京城六十里, 이곳은 인천의 관문에서 10리에 위치한 성현이고 서쪽으로 20리에 제물포가 있고 동북으로 60리에 경성이 있다). 위 명문을 바탕으로 지지대고개에 있던 장승의 명문을 추정해보면, ‘이곳은 지지대고개이며 남쪽으로 15리에 화성행궁이 있고 북쪽으로 90리에 한양이 있다라는 표기가 있었을 것이다.

정조대왕 당시 수원은 장승의 땅이었다. 지지대고개부터 능원소동구까지 왕의 행차로에 11개의 장승과 19개의 표석이 있었다. 수원의 8색 길인 효행길을 따라 장승을 복원해 세우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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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옥 2022-10-05 22:56:09
고맙습니다, 좋은 역사 자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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