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부일구'를 통해서 본 조선의 과학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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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부일구'를 통해서 본 조선의 과학기술
  • 한정규 서예가  comneti@naver.com
  • 승인 2022.12.26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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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규 서예가
한정규 서예가

| 중앙신문=한정규 서예가 | 조선 초 세종대왕 때 장영실이 만든 해시계가 앙부일구이다. 앙부일구가 어느 정도 정확한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해가 중천에 있으니 대충 점심때 정도 되겠지. 그림자를 가지고 시간을 측정하는 것이니 오차가 심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앙부일구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고 조선 초의 과학기술을 너무도 우습게 여긴 것이다. 앙부일구는 오늘날의 시계와 비교해 5분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정확했다.

앙부일구는 솥뚜껑을 뒤집어 놓은 모습의 해시계라는 뜻이다. 세종대왕 때 제작해 혜정교과 종묘 남쪽에 설치한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시계이다. 백성들의 일상생활에 시간이 접목된 혁명적인 발명품인 앙부일구는 임진왜란 후 사라졌는데 당시 문화적 후진국이었던 일본이 가져간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보물로 지정된 앙부일구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에 제작된 것이다.

앙부일구는 시계 기능과 달력의 기능이 있는데 구조를 보면 오목한 부분에 해의 그림자를 맺혀주는 영침이 있고, 가로는 절기선, 세로는 시간선이 새겨져 있다. 세로선을 읽으면 현재의 시간을, 가로선을 읽으면 현재의 절기를 알 수 있다. 절기선 오른쪽에는 동지부터 하지까지 새겨져 있어 겨울철에 읽으면 되고, 왼쪽에는 하지부터 동지까지 새겨져 있어 여름철에 읽으면 된다.

태양의 고도는 계절에 따라 다르다. 서울의 위도인 37.5°를 기준으로 했을 때 태양의 남중고도는 춘분과 추분에는 52.5°이고, 하지에는 76°로 높고, 동지에는 29°로 낮다. 여름에는 그림자가 짧고 겨울에는 그림자가 긴 이유이다. 앙부일구는 그림자 길이를 통해 시간과 함께 절기를 알 수 있는 대단히 과학적인 시계이다.

이렇게 정교한 앙부일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앙부일구를 설치할 위치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즉 현재의 위도와 경도를 알아야 하고 지구의 자전 속도와 공전 속도를 알아야 한다. 1일이 정확히 몇 시간인지, 1년이 몇 시간인지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1444년 문신이면서 천문학자인 이순지와 김담이 아라비아의 역법인 회회력을 바탕으로 편찬한 역법서인 정산외편이란 책이 있다. 이 책에서는 1, 지구가 태양을 도는데 걸리는 시간을 3655시간 4845(31,556,925)로 계산했다. 현대 물리학에서 계산한 1년의 시간(31,556,926)과 정확히 1초 차이가 난다. 조선 초의 계산과 현대의 계산이 3천만분의 1초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렇게 정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탄생한 시계가 앙부일구이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날씨가 좋을 때 앙부일구에서 시간을 정확히 읽으면 약 30분 정도의 오차가 생긴다. 우리나라의 표준시가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서울을 기준으로 하는 동경 127.5도와는 8도 차이가 나는데 8도는 약 32분으로 앙부일구 시간에 32분을 더하면 현재시간이다. 세계 표준시가 정해지기 전에는 우리의 시간을 사용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표준시는 몇 번 바뀌었는데 대한제국은 190841일 서울 기준 127.5도를 표준시로 사용했다. 일제에 의해 191211일부터 동경 135도로 바뀌었다. 1954317127.5도로 환원했다가 196187일 다시 동경 135도로 바뀌었다.

서양의 천문학자인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하는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 1543년이다. 조선의 천문학자들은 서양보다 최소한 100여 년 전에 지구가 자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과학전 전통이 후대로 이어지면서 발전하지 못한 게 안타깝지만, 오늘날 첨단분야의 과학적 발전은 오랜 기간 잠자고 있던 유전자가 깨어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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