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혜순 칼럼]처음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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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혜순 칼럼]처음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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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2.07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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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혜순(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새해 첫날이 시작 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1월이 다 지나갔다. 새해가 시작되는 그 순간은 잠들기조차 아까워 깨어 있으려 애쓰면서 서로 새해를 축하하며 시작했는데 그 축하하고 축하받으며 시작한 새 날들이 한 달이나 지나고 나니 허망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처음’이 아닌 순간은 없다. 내게 다가오는 모든 시간들이 다 처음이다. 이제 1월이 다 가고 나면 다시 2월이 처음으로 시작되듯이 시간은 처음이었다가 마지막이 되는 긴 고리를 돌리고 있다. 연습하고 맞이하는 시간이 어디 그리 많던가. 그럴지도 모른다고 예감하는 순간조차도 막상 맞닥뜨리면 생소하고 서툰 것을. 그렇게 서툰 채로 또 한 번의 1월이 지나가고 다시 2월이 오는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처음’이라는 말로 남는 순간들이 있다. 겨우내 내리는 눈도 첫눈은 더 특별하고 첫사랑은 평생 가슴에서 지워지질 않고 내 아이의 첫걸음이 늘 생생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숫한 기억 속에서도 그 순간만큼은 늘 선명하여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다시 뛴다. ‘처음’이란 말 속에는 낯설면서도 설레는 무엇이 숨어있는 듯하다. 첫눈, 첫사랑, 첫걸음, 첫 만남 등.

기억속의 ‘처음’이 다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그래도 그때마다 나름의 무늬로 남아 돌아보면 선명하게 떠오른다. 잊혀진 ‘처음’도 많을 것이다. 세월의 풍파에 선명한 무늬가 사라진 순간들은 그저 아득한 망각 속에 묻혀버리기도 한다. 잊혀 질 순간이 된다 할지라도 난 ‘처음’을 축하하고 싶다. 만일 그것이 아름다운 ‘처음’ 이라면 오래 남도록 고이 담아 간직할 것이다. 한해가 다 가면 다시 새해가 오고 한 달이 지나가면 또 새로운 달이 시작되는 둥글게 돌며 춤을 추는 시간 속에 사람들은 곳곳에 ‘처음’이란 눈금을 그어놓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나는 올해의 첫날을 누구보다 밝고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고 싶었다. 그리고 힘 있게 새날을 걸어갈 생각을 했다. 스타트라인에 한발을 대고 총성이 울리면 달려 나갈 육상선수처럼 몸과 마음을 준비하고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새 한 달이 지나가고 다시 새로운 2월이 시작된다. 내가 지금 잘 뛰어가고 있는 것일까? 다시 ‘처음 그 순간’을 떠올리며 자세를 가다듬는다. 빨리 뛰어 일등 할 마음은 이미 접은 지 오래다. 단지 저 끝에 마련되었을 피니쉬 라인을 향해 나도 한번 힘껏 가보려는 각오일 뿐이다.

‘처음’이란 그렇게 무엇이 시작되는 예고이다. 새날에도 해가 뜨고 해가 진다. 달라진 것은 그 날을 인식하는 사람의 마음일 뿐이다. 그저 보이지 않는 시공간에 사람들이 그어놓은 눈금을 따라 오늘은 첫날이고 그날은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그러면 어떠랴. 그게 인위적인 새날이라 해도 다시 무엇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은가. 새롭게 살수 있다는 것은 꽃잎이 열리는 순간처럼 가슴 벅찬 일인 것을. 똑같은 해가 떠도 그것을 새날 첫 햇살로 받아들이며 새로운 희망을 품을 줄 아는 것이야 말로 그 순간 우리가 받는 가장 큰 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랑하는 이들의 ‘처음 그 순간’이 누구보다 밝고 빛나기를, 그래서 아름다운 무늬로 가슴에 새겨지길 2월을 맞으며 새해 첫날처럼 나는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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